[조정래 칼럼] 신공항 트라우마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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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4   |  발행일 2016-06-24 제23면   |  수정 2016-06-24
[조정래 칼럼] 신공항 트라우마

‘대국민 기만이자 사기극이다.’ 영남권 신공항이 또다시 백지화된 날,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 주민들은 폭삭 무너져 내렸다. 너무 허탈해 할 말을 잃었고, 분을 삭일 수 없어 끝내 울분의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박근혜정부의 신공항 무산 시니리오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돌린, 국토의 남단 주민 전체를 우롱한 허무 개그다. 이명박정부에 이은 박근혜정부의 판박이 쌍생아적 책임회피, 이명박근혜 정부의 공동 기획·주연의 ‘돌고돌아 다시 김해공항’이란 정치사기 드라마다. 정치에 발목잡혀 국책사업 하나 결정하지 못하는 정부와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통치할 자격이나 있나. 신공항 정국에 휘둘린 무능한 정부요, 통치 부재의 국가다.

신공항 무산의 후폭풍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다. 눈앞의 지역 간 갈등을 정치적 미봉책으로 덮으려다 화산으로 터질 분노의 마그마를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비수도권 주민들은 속았고 버림받았다. 김해공항 확장은 신공항 백지화보다 더 비겁하다. 수차례에 걸쳐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이 난 김해공항 확장을 박근혜정부는 무슨 특별히 용빼는 재주가 있어 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신공항 건설과 다름없다’는 입에 발린 찬사는 다음 정권에서 식언으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책임회피고 책임전가다. 차기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 불가란 레드 카드를 내밀어도 부담이 없다. 결국 돌고돌아 하나의 공항으로 충분하다는 수도권의 ‘인천공항 원포트 논리’의 손을 번쩍 들어준 셈이다.

국가균형발전이란 시대적 과제에 눈 감고 국가백년지대계를 위한 결정을 미봉한 박근혜정부의 신공항 백지화가 비수도권, 특히 대구·경북민에게는 근원적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를 남겼다. 바로 두고두고 밤낮으로 우리를 괴롭힐 ‘신공항 트라우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우리에게 남은 길은 꿈길의 악몽밖에 없다. 신공항을 꿈꿀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하늘을 향한 상상력마저 빼앗기고 꿈도 희망도 스스로 꾸고 가꿔 나갈 수 없게 된, 하늘길 막힌 비수도권은 진즉에 수도권의 식민지, 오염물질의 배설지에 불과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노예와 투사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이다. 원칙과 상식을 배반한 정부는 시민의 불복종을 부르게 된다.

신공항 쇼크가 남긴 또다른 교훈 하나는 비수도권의 혼수상태가 너무 길었다는 자각이다. 자립을 위한 물적 토대와 주체적 역량의 빈약함도 뼈 아프게 드러난 진실이다. 지역 국회의원 대부분은 서울에 집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대학교수를 비롯한 오피니언 리더들은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수도권으로 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지역의 토호들조차 주어진 마름 역할에 감지덕지 고개 주억거리기 바쁘다. 발은 비수도권에, 머리는 수도권에 각기 따로 두고 산다. 수도권 황국신민이길 자처하는 리더들로 인해 지역의 자립과 자치, 하늘길의 독립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철학 부재에도 불구하고 비수도권 정부는 국토균형발전 과제를 포기할 수 없다. 진즉에 찬물 마시고 속을 차려야 했다. 영남권 신공항은 비수도권 자립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인프라이자 지방분권의 랜드마크다. 비수도권 주민들의 이같은 염원을 송두리째 뿌리뽑은 이명박근혜정부는 수도권공화국 일변도의 반쪽 정부다. 신공항 무산은 나머지 반쪽 지방정부들 사이 연대의 필요성을 숙제로 남겼다.

신공항은 갔지만 우리는 신공항을 보내지 않았다. 신공항 상실의 시대적 시련은 있어도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정부가 안 된다면 우리끼리라도 하늘길을 열어야 한다. 부산을 제외한 대구·경북, 경남·울산 영남권 4개 시·도는 이미 밀양 신공항 합의라는 자산을 공유한 바 있다. 세계로 비행기를 띄우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전제된다면 하늘길을 개설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신공항이 개항하는 그날까지, 비수도권 우리 식민지 백성들 스스로, IMF 당시 금 모으기 캠페인처럼, 하늘길을 기어코 뚫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모으는 ‘새하늘 운동’(가칭)에 돌입하자, 지금 당장. 신공항 트라우마는 신공항 꿈의 성취로만 치유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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