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달성습지 쌍룡녹색길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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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4   |  발행일 2016-06-24 제35면   |  수정 2016-06-24
습지가 삼킨 길…둑길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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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연보호연맹에 등록된 아름다운 도심습지 ‘달성습지’(위), 기생초와 개망초가 활짝 핀 화원유원지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금호강 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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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둑길의 달성습지 표지석. 뻗어있는 둑길의 오른쪽은 달성습지, 왼쪽은 대명유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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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습지 너머로 훌쩍 뛰어오른 은빛 물고기 같은 ‘디 아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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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유수지 가에 세 줄로 서 있던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반 이상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낙동강·금호강 범람이 만든 달성습지
백사장이던 곳에 갈대·억새·잡풀 무성
습지 앞에서 몇 군데 돌계단 숨바꼭질

둑 옆 강창교∼대명유수지 쌍룡녹색길
와룡∼청룡산 잇는 총 18㎞ 중 3420m
산길·강변길·샛길·마을길 변화무쌍
맹꽁이 산란 대명유수지·디아크도 구경

습지, 라고 부르면 아주 천천히 가라앉아 가장 평평한 땅에 도착한다. 열려라 참깨, 라 외치면 깊은 동굴에 닿듯. 습지는 지구에 안착해 적응을 마친 블랙홀 같기도 하고, 아담과 이브 이전, 그보다 더 오래된 공룡 시대 이전의 세상 같기도 하다. 습지와 마주하는 동안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는 환청이고 먼 곳의 아파트는 환영이다.

◆달성습지

뻐꾹 뻐꾹, 쏴 아아아. 뻐꾸기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무작스레 흐르던 땀도 바람이 된다. 습지는 무성해 물길은 보이지 않는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 그 큰 강들도 쓱 감춰버린 달성습지다.

달성습지는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만들어진 습지다. 그래서 초기에는 절반 이상이 백사장이었다 한다. 지금은 뽕나무와 갈대, 억새와 잡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데, 보통의 눈으로 나무의 종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신비로운 안개를 머금은 듯, 아지랑이 피는 듯, 신기루인 듯, 볼 적마다 희부연 빛 속이어서일지도 모른다.

달성습지에는 맹꽁이가 산다고 한다. 맹꽁이에 대한 맹꽁이 모양의 설명판이 있고, 맹꽁이가 움직이는 저녁 7시부터 아침 10시까지는 주의를 해 달라는 당부의 안내판도 있다. 맹꽁이는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환경지표 종이다. 녀석은 밤에 이동하고 밤에 먹이를 잡는다. 1년의 대부분을 숨어 살다가 장마철이면 맹꽁 맹꽁 울며 짝짓기를 하는데 한 마리가 ‘맹’하고 울면 다른 한마리가 ‘꽁’이라 운다 한다. 장맛비 내리면 맹, 꽁 소리 대단해 지겠다.

몇 군데 습지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땅을 기어 전진하는 무성한 덩굴식물들이 점령해버린 돌계단도 있고, 길의 끝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습지 앞에 멈춰버린 곳도 있다. 어떤 계단은 습지로 도망가는 오솔길을 슬쩍 알려주기도 하고, 키 큰 나무들의 숲으로 숨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습지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길은 습지에 사는 이들의 길일까. 녀석들이 오르기엔 불가능할 것 같은데.

둑 옆은 공사장이다. 연회색의 가림막이 둑만큼 길다. 도로를 닦는 중이라 한다. 대구 외곽 순환도로다. 작은 곤충들이 둑길에서 방황하는 것을 본다. 사람의 기척에 죽은 듯 멈추는 녀석도 있다. 운동화 속으로 뛰어 들어온 녀석의 목적은 뭘까. 좁게 열린 가림막 속으로 활짝 피어난 기생초를 본다. 달성습지의 여름은 기생초 군락의 개화가 장관이라는데, 지금은 상당 부분이 공사장 안에 편입되어 있다. 여름에 찾아온다는 백로와 왜가리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쌍룡녹색길

정오를 지난 시간, 걷는 사람은 없다. 해가 뜨거나 석양 무렵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한다. 지금은 간간이, 그러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자전거 탄 사람들이 있다. 완전무장을 한 채 재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음악을 틀어 놓은 채 달리기도 하고 짧은 파이팅의 소리를 번갈아 내지르기도 한다.

이 길은 대구시가 만든 ‘쌍룡 녹색길’의 일부다. 길의 시작은 대구 서구, 달서구, 달성군의 경계에 누워있는 용의 모습을 한 와룡산이다. 이어 계명대 뒤의 궁산을 거쳐 금호강 둑길을 지나 대구수목원을 통과한 뒤 앞산과 비슬산을 연결해주는 청룡산에서 끝난다. 총 18㎞, 와룡에서 시작해 청룡에서 끝나니 쌍룡인 듯하다. 산길, 강변길, 샛길, 마을길 등 다양한 모습을 지닌 길이다.

달성습지와 함께하는 쌍룡녹색길은 강창교에서부터 대명유수지가 자리한 개상듬네거리까지 3천420m다.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570m마다 서있다. 강창교 가까운 곳에서는 물 문화 전시장인 ‘디 아크(The ARC)’가 습지 너머로 보인다. 훌쩍 뛰어오른 은빛 물고기 같은 모습이다.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성서 둑방길 혹은 달성습지 제방길로 더 친숙하다. 둑길에서 수목원 쪽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진행하면 화원유원지를 거쳐 낙동강을 건너 고령으로 간다. 길이 갈라지는 대명유수지 모서리에 달성습지 관리사무소, ‘낙금회 노인정’이란 이름 걸린 쉼터, 자전거 바퀴 공기주입기, 자전거 거치대 등이 모여 있다.

◆대명유수지와 사라진 메타세쿼이아 길

대명유수지는 둑을 사이에 두고 달성습지와 떨어져 있다. 성서산단의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1995년경에 만든 인공 저수지로 절반 이상이 도로와 근접해 있지만 아랑곳없이 청청하다. 특히 대명유수지는 물 억새 군락지로 이름 높고 국내 최대의 맹꽁이 산란처로 알려져 있다. 이곳이 맹꽁이의 주 산란지, 달성습지는 부 산란지라고 한다.

걷는 사람들에게 대명유수지는 특히 인기가 많았다. 둑에서 개상듬네거리로 이어지는 길가에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줄로 나란히 서 싱그러움을 한껏 뽐내던 그들이었다. 높이 솟아 산단으로부터 유수지를 보호하는 초록벽이었고, 먼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족한 산책길이었다.

유수지 변이 뒤엎어져 있다. 포클레인과 트럭들이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이고 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이제 단 한 줄만 남아 유수지를 보호하기 위한 마지노선처럼 서있다. “여기 도로가 생길 거라서 나무들은 다 옮겼어요. 저기 강창교 부근하고, 호산공원 같은 인근 공원으로 벌써 다 갔어요.” 나무들이 떠나간 자리가 움푹, 싱크홀 같다. 6월 안에 깨끗이 정리된다고 한다. 머지않아 도로가 생길 것이고, 또 익숙해질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쌍룡녹색길의 금호강변길 약 3㎞ 안에서 달성습지와 대명유수지, 디 아크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지하철2호선 강창역에 내려 금호강변 달성습지 쪽으로 가면 된다. 개상듬네거리의 대명유수지 쪽에서 시작해 갈 수도 있지만 주변 정리가 완료되어야 이동이 용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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