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1> 주왕산 ‘용연폭포’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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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8   |  발행일 2016-06-28 제13면   |  수정 2021-06-17 17:38
비 온 뒤 산 깊은 곳에서 달려온 물은 ‘용의 거처’로 아찔하게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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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용연폭포. 두개의 단을 이루는 2단 폭포로 상부는 폭이 약 4m, 낙차는 6m이고 하부의 폭은 5m, 낙차는 10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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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폭포가 위치한 주왕산 계곡의 주요 암질은 응회암으로, 동굴처럼 움푹 파인 곳은 하식동이라 한다. 하식동은 북측에 3개, 남측에도 작은 규모로 발달해 있다.

 

주왕산에는 이름 난 세 개의 폭포가 있다. 용추·절구·용연 폭포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80여년간 1·2·3 폭포로 불렸다. 명칭에 ‘용(龍)’자를 쓰지 못하도록 일제가 강제로 변경한 것이었다. 이 중 제3폭포로 시나브로 익혀져 온 것이 용연폭포다. 조선시대에는 ‘내용추’ 또는 ‘쌍용추’라고도 불렀다. 제 이름을 오롯이 되찾은 것은 지난해다.



주왕산 심장부 타고 흘러내린 주방천
응회암 절리 틈으로 떨어져 폭포 돼

상부 폭포 아래는 호수같은 ‘포트홀’
폭포 양옆 단애엔 움푹 파인 ‘하식동’
하단 폭포 암반이 깎여 ‘폭호’도 형성


 

#1. 가장 깊은 골짜기의 폭포

해발 약 400m 지점. 주왕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달려온 물줄기가 장엄하게 낙하한다. 푸른 절벽을 거느리고 낭떠러지 아래 깊은 못으로 주저 없이 뛰어 내린다. 아찔하고 아름다운 추락, 그리고는 유유히 몸을 가다듬어 다시 떠나 흐른다. 주왕산의 심장부를 타고 흐르는 주방천의 상류에 이처럼 처연히 고운 용연(龍淵)폭포가 있다. 주왕산의 폭포 가운데 가장 깊숙한 계곡에 자리한 폭포다. 용연폭포에는 용이 살았다고 하고, 폭포의 깊은 곳은 바다와 통해 있다고도 전해진다.

폭포들이 위치하는 주왕산 계곡의 주 암질은 모두 응회암이다. 응회암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뿜어져 나온 분출물 중 입자의 크기가 2㎜이하인 것이 굳어 만들어진 것이다. 주왕산 응회암은 대부분 높은 온도에서 굳어진 용결응회암으로 굳은 정도에 따라 비 용결, 부분용결, 치밀 용결로 구분한다. 그 중 치밀하게 용결된 응회암이 주왕산의 중간 부분을 두껍게 차지하고 있는데, 용연폭포는 치밀 용결대에서 비 용결대로 변하는 부분에 위치한다.

뜨거운 화산 분출물이 급격히 식으면 수축으로 인해 절리가 생긴다. 그 틈을 타고 계속 물이 흐르면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나와 절벽이 만들어진다. 굼실굼실 흐르던 물은 이제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리며 폭포가 된다. 용연폭포는 두 번 뛰어내려 두 개의 단을 이룬다. 상부는 폭이 약 4m, 낙차는 6m. 하부의 폭은 5m, 낙차는 10m에 이른다. 보통 하부 폭포는 두 줄기로 떨어지지만 수량이 증가하면 한 줄기로 합쳐진다. 물이 흐를수록 절벽은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반복된다. 이러한 연속적인 침식과정 속에서 폭포는 조금씩, 조금씩 뒤로 물러나게 된다.

#2. 폭포의 후퇴를 보여주는 하식동

폭포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조망대와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용연폭포의 상부는 등산로에서 보면 암벽과 수풀에 가려져 있어 조망대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그 모습을 아는 이가 적었다 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간다. 대기를 준동시키는 폭포 소리에 기린초가 파르르 몸을 떤다.

상부 폭포 아래에 물이 맑다. 윤슬로 빛나는 물속에 넙데데한 암반과 자글자글한 자갈들이 한 눈에 보인다. 폭과 길이가 10m 정도에 이르는 이 작은 호수는 ‘포트홀’이라 한다. 처음에는 물이 타고 흐르는 바위였을 게다. 긴 시간 동안 떨어져 내린 물이 바위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아 지금과 같은 커다란 수반(水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폭포의 양 옆 단애에는 공 맞은 반죽처럼 움푹 파인 동굴들이 있다. 북측에 3개, 남측에도 작은 규모로 발달해 있는데 수면보다 약간 높은 자리에 위치하며 3m 정도 크기의 둥근 모양새다. 이를 ‘하식동’이라 한다. 폭포 아래로 떨어진 물이 소용돌이 칠 때 튀어 오른 물이 측면에 부딪히고, 오랜 시간 물방울을 맞은 벽은 어느덧 동그랗게 닳아 굴 모양으로 파였다.

하식동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는데, 물이 낙하하는 지점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이 가장 먼저 형성된 것이라 한다. 폭포는 떨어져 내리면서 절벽을 깎아 조금씩 후퇴한다. 최초의 하식동을 만든 폭포는 그동안 조금 후퇴하고, 다시 하식동을 만들고, 또 후퇴한다. 그렇게 하식동은 먼 것에서부터 가까운 것으로 순차적으로 형성되었다.

하식동의 위치로 미루어 볼 때 용연폭포의 상부폭포는 폭포의 형성 이후 최소 20m 이상 후퇴되었음을 알 수 있고, 폭포수는 좀 더 북측으로 치우쳐져 흘러내렸으리라 짐작된다. 하식동의 침식방향도 조금씩 다르다. 폭포는 물러나 앉으며 약간씩 자리를 옮긴 듯하다.

#3. 폭호와 피아메

용연폭포의 하단 폭포는 상부의 포트홀에서부터 두 줄기로 떨어진다. 그 아래에는 폭 48m, 길이 37m, 수심이 약 4m에 이르는 용추라는 ‘폭호(瀑壺)’가 형성되어 있다. 폭호는 암반 상에 둥글게 파인 웅덩이를 말하는데, 포트홀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구멍에 자갈과 모래 등이 들어가 소용돌이치며 맷돌처럼 암석 바닥을 깎는다. 이러한 작용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자갈은 구멍 안에 갇힌다. 갇힌 자갈은 구멍 속에서 계속 회전하면서 넓고 깊은 폭호를 만들었다.

폭호는 청초하다. 언뜻 얕아 보이는 폭호는 갑자기 절벽처럼 깊어진다. 4m라는 수심이 가뭇없다. 안전 울타리도 출입금지도 없던 옛날에는 사고도 잦았고, 한 겨울 폭포가 꽁꽁 얼어붙으면 산 아래 살던 아이들이 얼음을 지치며 놀았다 한다. 가장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서있는 나무들이 싱그럽다. 가지고 싶다는 탄식이 절로 터지는 풍경이다.

폭포 주변에서는 평평한 접시 모양의 큰 피아메를 쉽게 볼 수 있다. 길이가 40㎝에 달하는 피아메도 있다. 피아메는 매우 가벼운 화산 분출물인 부석이 퇴적, 압착된 것이다. 흐르거나 날아와 쌓이기 때문에 그 방향성은 피아메마다 다르다. 그러나 이곳의 피아메들은 전체적으로 긴 축이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어 흐름의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방향을 쫓아 보면 화산재가 흘러온 곳은 남동동. 남동 능선을 타고 가면 산들과 동해가 보인다. 주왕산을 만든 폭발은 그 길에서 보이는 어느 곳일 터.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 참고= △자연지리학사전 △주왕산지 △청송지질공원 홈페이지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청송의 향기
공동기획:청송군

 

■사창골 계곡길 끝 절구폭포


용연폭포로 가는 등산로 중간에 절구폭포로 향하는 샛길이 있다. 가메봉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흐르는 사창골 계곡길이다. 사창골은 옛날 대전사의 창고가 있던 골짜기로 일제 때는 참나무로 목탄을 생산하던 곳이라 한다. 사방이 벼랑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에 잘게 부서진 돌들이 자그락자그락 밟힌다. 멀지 않지만 깊은 골의 막다른 곳에 제2폭포라 불렸던 절구폭포가 있다. 계곡물이 처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 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낮은 바위를 타고 쏟아져 절구폭포다. 조선시대 때는 중용추라고도 했다.

절구폭포 역시 주왕산 응회암의 절리에 의해 생긴 폭포로 치밀 용결대에 속한다. 폭포는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부 폭포 아래에는 선녀탕 포트홀이 있고 하부 폭포 아래에는 폭호가 발달해 있다. 절구폭포는 협곡 안에 위치해 있어 습도가 높다. 바위에는 이끼가 많이 보인다. 폭포 부근의 피아메는 풍화에 의해 제거되어 대부분 빈 공간만 남아있다. 이곳의 습도 또한 피아메의 풍화 속도를 증가시켰다고 한다. 절구폭포에는 사람들이 많다. 주왕산에서 유일하게 물에 손 담글 수 있는 폭포이기 때문이다. 수심도 얕다.


■용연폭포 물길 거슬러 오르면 전기없는 마을 ‘내원동’ 흔적

용연폭포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더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져 왔던 내원동이다. ‘주왕산지’에 ‘시내를 따라 십리 길이 굽이마다 밝고 환하다’며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기이한 승경이 있는 줄 알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곳이다. 고려 중기부터 사람이 살았고 일제시대에는 100여 가구가 넘게 모여 살았으며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분교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살았다. 지금은 휑한 집터와 낮은 돌담, 그리고 그 과거를 전하는 이야기만 남아 있다. 

 

 

☞여행정보
주왕산 주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용추협곡 지나 1㎞ 정도 오르면 절구폭포 분기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200m 정도 들어가면 절구폭포다. 

분기점에서 왼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용연폭포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등산로 입구인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는 3.4㎞ 정도다. 

용연폭포 조금 위에 가메봉과 금은광이 삼거리 갈림길이 있다. 

가메봉 방향으로 1㎞ 쯤 가면 사라진 마을 내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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