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사랑이야기 .6] 한 떨기 연꽃 버들상여에 실려 있는데- 심희수와 일타홍(上)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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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30   |  발행일 2016-06-30 제22면   |  수정 2016-06-30
‘크게 될 인물’ 꿰뚫어보고 헌신…기생, 파락호를 과거급제시키다
20160630
심희수 부부 묘(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청송심씨 묘역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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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작 ‘상춘야흥(賞春野興)’. 양반들이 기생과 함께 작은 야외음악회를 즐기고 있다. 명문가 자제인 심희수는 기생과 어울리는 연회에서 일타홍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한 떨기 연꽃 버들상여에 실려 있는데(一朶芙蓉載柳車)/ 향기로운 영혼은 어딜 가려고 머뭇거리나(香魂何處去躊躇)/ 금강 가을비에 붉은 명정 젖어드니(錦江秋雨丹旌濕)/ 아마도 고운 우리 임 이별 눈물인가 하노라(應是佳人別淚餘)

좌의정까지 지내고 청백리에도 오른 일송(一松) 심희수(1548~1622)가 사랑하던 기생 일타홍(一朶紅)이 죽자 그녀를 기려 지은 시다. 일타홍은 금산(錦山) 출신으로, 한양에서 활동한 기생이다. 심희수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일찍 부친을 잃고 공부는 멀리한 채 주색잡기에 빠져 노는 것만 일삼다가 일타홍을 만나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청운의 뜻을 이루게 된다.

비행 청소년 심희수
명문가 자손이지만 공부는 뒷전
봉두난발 몰골로 손가락질 받아
향연서 만난 일타홍에 마음 뺏겨

총명한 재능 일타홍
기생 접고 심희수 학업 뒷바라지
가문 망친다며 혼인까지도 거부
또 공부 멀리하자 이별 극약처방

◆비행소년 마음 사로잡은 기생 일타홍

세 살 때 부친을 잃은 심희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고, 해야 할 공부는 뒷전이었다. 청소년기가 되어서도 고관 자제나 왕손(王孫)들과 어울려 놀며 시간을 허비했다. 모습도 봉두난발(蓬頭難髮)에 폐의파립(弊衣破笠)의 몰골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미친 강아지 취급을 하기에 이르렀다. 반미치광이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그를 보면 사람들은 슬슬 피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심희수가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어느 재상 집 향연에서 어울릴 때 한 기생이 그의 눈에 확 들어왔다. 그토록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은 그때까지 없었다. 그 기생은 충남 금산에서 올라온 일타홍(一朶紅)이었다. 당시 일타홍의 나이는 17세 정도이고, 심희수는 15세쯤 되었을 때다.

일타홍은 미모에다 가무도 뛰어나 그녀의 몸놀림 하나하나, 표정과 눈짓 하나하나가 심희수의 마음을 송두리째 잡아끌었다. 당시 대부분의 기생은 심희수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피하는데, 일타홍은 심희수의 희롱을 잘 받아주었다. 그리고 일타홍은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심희수를 불러내 그의 집이 어딘지 묻고는 나중에 찾아가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심희수는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가서 그녀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그녀는 약속대로 심희수를 찾아왔다. 일타홍은 정식으로 심희수에게 인사를 올린 다음, 안방으로 건너가서 그의 모친에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았다.

“소첩은 관상 보는 법을 공부하여 대강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연한 기회에 도련님을 뵙게 되었는데 장차 크게 되실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첩이 일부러 도련님을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소첩은 비록 기생이오나 이후 힘닿는 데까지 도련님의 길잡이가 되고 싶습니다. 본격적인 학문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는 데 그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비록 한 집에 같이 살더라도 서로 가까이하지 않고 오직 도련님이 출세하도록 돕는 일에만 몰두하겠습니다.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은 소첩이 감당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심희수 모친은 일타홍의 진심이 느껴져 그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일타홍은 창루(娼樓: 기생 집)에는 발길을 끊고 심씨 집에 들어앉아, 지니고 있던 패물과 장식품을 하나둘씩 팔아가며 생계를 이어갔다.

심희수도 마음을 바로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열심히 공부하던 심희수는 간혹 반발하며 말을 듣지 않기도 했다. 그때마다 일타홍은 잘 달래고 설득하여 공부를 지속하도록 애를 썼다. 그리고 심희수가 혼인할 때가 되어 혼담이 오고 가게 되었는데, 심희수는 다른 사람과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에 일타홍은 엄중히 책하며 심희수에게 말했다.

“명문가의 자제로서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어찌 나 같은 천기와의 인연을 핑계로 대륜(大倫)을 거스르려 합니까. 저 때문에 이 집을 망치게 되었으니 첩은 이제 떠나야 하겠습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정실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정실부인은 노극신(영의정 노수신의 동생)의 딸이다. 일타홍은 정실부인을 공경하며 섬기기를 노부인에게 하듯이 했다.

◆“도련님이 분발하도록 제가 떠나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심희수는 갈수록 공부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일타홍의 간섭을 싫어하고 매사에 투덜거렸으며, 아내의 치마폭에 싸여서 놀기만 했다. 일타홍은 여러 궁리 끝에 극약 처방을 쓰기로 하고, 노부인에게 심희수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부에 매진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네가 내 집에 들어온 덕분에 우리 아이가 다행히 이만큼이라도 학업을 성취하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런 네가 우리 모자를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만류했다. 일타홍은 일어나 절하면서 다시 말했다. “첩이 목석이 아니오니 어찌 이별의 괴로움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도련님을 정신차리게 하여 과거 급제의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한 가지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도련님이 과거 급제 후 다시 만날 것을 언약한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발분하여 학업에 힘쓸 것입니다. 멀면 6~7년이고 가까우면 4~5년일 것입니다. 첩은 마땅히 몸을 지키며 등과 소식을 기다릴 것입니다. 저의 뜻을 잘 전하여 주십시오.”

집을 나온 일타홍은 머물 곳을 찾아 집안이 넉넉해 보이면서도 안주인이 없는 집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나이 많은 재상 댁에 이르렀다. 그 재상에게 집안사정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 찾아왔으니 하인으로 부려 주면 바느질과 부엌일을 하며 받들겠다고 간청했다. 재상은 그녀의 단정한 몸가짐과 총명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이를 허락했다. 그녀는 그 재상 집에 들어가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그 식성을 맞추니 재상은 그녀를 더욱 어여쁘게 여겼으며, 나중에는 딸자식처럼 대했다.

한편, 심희수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일타홍이 없어 모친에게 행방을 물어보았다. 모친은 그녀가 이별할 때 전한 말을 들려주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학문을 게을리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대하겠는가. 그 아이가 돌아오고 아니 오는 것은 오직 너의 과거 급제 여부에 달렸으니 네 뜻대로 하거라. 네가 만일 급제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는 다시 그 아이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심희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일타홍을 볼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도는 자신이 과거에 급제하는 길뿐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문밖 출입을 금하고 찾아오는 손님조차 사양하며 불철주야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 공부했다. 마침내 1570년 23세 때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2년 후인 1572년에는 문과시험에 합격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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