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덕 옥계계곡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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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38면   |  수정 2016-07-01
수백만년 물방울이 일군 옥계37景…길 마루엔 정자가 매달린 듯 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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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계곡의 기암괴석. 가천을 품은 대서천이 흘러가며 조각해 놓은 풍경이다.

청송서 영덕 닿자 안겨드는 산과 계곡
촛대·향로·학소봉과 삼귀·봉관암 등
계곡 따라 줄지어선 온갖 형상의 바위
굽이 돌 때마다 검은 소와 단애 그림자

옥계1교 건너면 산 넘듯 우뚝 솟은 길
山水 주인 자처하는 최고 풍광 ‘침수정’
해발 628m 팔각산은 8개 암봉이 절벽
달 밝은 날 정상선 그림자가 동해 어른


높은 산 좁은 계곡. 백색의 암반과 푸른 계류. 윤슬 아래 선명하고 정갈한 자갈들. 물방울이 절벽에 새겨놓은 기괴한 조각들. 병풍처럼 등 세운 암벽들과 치솟은 여덟 개의 암봉. 굽이를 돌 때마다 청류는 검은 소를 이루고, 아름다운 단애가 그림자를 드리운다. 청송에서 영덕으로 접어들자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육박해온다. 이곳이 옥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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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리 입구에 ‘선경옥계’라 새겨진 바위가 서 있다. 바위 너머 보이는 것이 학소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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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돌아 나가는 가천 너머에 팔각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 108개의 철 계단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선경옥계, 옥계계곡

‘선경옥계(仙境玉溪)’라 새겨진 바윗덩어리 앞에 걸음을 멈춘다. 선경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오른쪽에는 학소대 기암절벽이, 왼쪽에는 팔각산이 솟아 있다. 이 사이를 파고들 것 같던 가천이 갑자기 크게 굽는다. 사람의 길은 직선을 지향하는데, 물의 길은 굽이지는 걸 즐기니, 그 즐거움은 무엇일까 쫓아 본다. 굽어든 곳에 서니 멀어진 학소대가 도리어 온전히 장중하고, 가까운 팔각산은 한 조각 섬세한 미혹으로 다가선다. 가천은 천천히, 팔각산 자락을 충분히 적시며 다시 돌아 나간다.

가천의 굽은 모서리에 팔각산 산행 들머리가 있다. 주변에 산촌문화휴양관이 들어서 있고 정자와 꽤 너른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팔각산은 해발 628m로 8개의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어 팔각산이라 한다. 그리 높지 않지만 만만한 산이 아니다. 연이은 8개의 암봉이 모두 절벽이고 산으로 드는 첫 길이 사다리처럼 놓인 108계단이다. 달 밝은 날 팔각산 정상에 오르면 그림자가 동해 바다에 어른거린다고 한다.

이 일대가 옥계리다. ‘옥계(玉溪)’는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란 뜻이다. 14세기 말인 정종 연간에 노(盧)씨라는 선비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곳의 자연에 반해 자신의 호를 옥계라 했고, 지명 또한 옥계가 되었다. 원래는 영일군 죽장면 하옥리에 속해 있었으나 1983년 달산면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가천은 옥계리를 통과하면서 대서천과 합수한다. 그 물길을 안은 정결한 흰 바위들과 치솟아 둘러선 단애들이 모두 옥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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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계곡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자리에 위치한 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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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자락에서부터 흘러온 옥계리의 가천. 오른쪽이 팔각산으로 멀리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산수주인’ 침수정

옥계1교를 건너면 길은 산봉우리를 하나 넘듯 급하게 상승한다. 잠시 멈추기에도 마땅치 않은 뾰족한 길 마루에 정자 하나가 매달린 듯 자리한다. 옥계계곡에서도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 높아 세상이 넓은 곳에 옛 사람은 한 평 땅을 골라 정자를 지었는데, 온전히 들어앉히지는 못하고 앞쪽에 기둥을 세워 올렸다. ‘침수정(枕漱亭)’이다.

침수정은 조선 정조 8년인 1784년에 손성을(孫星乙)이라는 선비가 여생을 보내고자 건립했다. ‘침수’란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한다’는 의미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아담한 목조 팔작 기와집으로 앞에는 마루를 내고 뒤에는 방을 두었다. 옛날에는 이웃 고을의 수령들과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아와 글을 남기고 풍류를 즐겼다 전한다. 침수정은 월성손씨 문중의 소유라 한다. 담이 둘러져 있고 문은 잠겨 있다. 문을 활짝 열어 사람의 숨과 어우러지면 좋으련만,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가고 음식물 찌꺼기나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려 할 수 없이 열쇠를 채워 둔다고 한다.

지붕 위로 병풍암이 솟아 있다. 병풍바위에는 손 선비가 문패 삼아 직접 새겼다는 ‘산수주인(山水主人)’이라는 음각 글씨가 있다고 한다. ‘여기 보이는 곳은 다 내 소유다’라는 건데, 그 배포가 호쾌하다. 수목이 울울창창해서인지, 정자마루에서나 보이는 것인지, 담벼락 가를 서성이며 발돋움해도 보이지 않는다.

◆옥계 37경

침수정 뒤편에는 새색시의 쪽 찐 머리처럼 생긴 ‘옥녀봉’이 솟아 있다. 정자의 왼쪽 아래에는 소가 깊은데, 그 위로 마치 거북이 세 마리가 금방 물 밖으로 기어 나오는 듯한 형상의 ‘삼귀암’이 있다. 침수정 정면에는 촛불을 밝히는 모양의 ‘촛대봉’이 있다. 그 외에도 봉황의 벼슬처럼 생긴 ‘봉관암’, 마고 할미가 중국에 가지고 가려다 못 가져간 ‘진주암’, 물에 떠 있는 듯한 ‘부암’, 갓끈을 씻어 세속을 초월한다는 뜻의 ‘탁영담’, 향로에 향불을 피우는 것 같은 ‘향로봉’,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봉’ 등 계곡을 따라 온갖 형상의 바위가 즐비하다.

침수정 주인 손성을은 주변의 아름다운 37가지 경치에 각각 이름을 짓고 시를 남겼는데, 이를 ‘옥계37경’, 혹은 ‘팔각산 37경’이라고 한다. 산수의 주인이라 자처했으니 그를 경영하는 데도 게으르지 않았던 셈이다.

침수정에서 미끄러지듯 하강하면 가천은 어느덧 대서천과 하나가 되어 흐르고, 잔잔한 물가는 기암과 괴석의 전시장으로 펼쳐진다. 손 선비가 명명한 37가지 경치가 각각 어느 곳, 어느 것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수백 년이 지났으니 변화도 있지 않으려나. 그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능치 못한 변화에 아는 것이 쓸데없고, 초야에서 기다림은 사람들이 보는 바 이롭더라.’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영덕 옥계계곡은 청송과 영덕의 경계에 위치한다. 포항에서 영덕으로 북향해 69번 지방도를 타고 청송 방향으로 가도 되고, 영천에서 청송으로 올라가 930번 지방도를 타고 얼음골을 지나가도 된다. 옥계계곡에 텐트촌이 있고, 계곡 아랫마을인 옥산리가 민박 시범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팔각산 8봉우리를 잇는 등산로는 약 4.5㎞다. 급경사의 암벽이기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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