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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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43면   |  수정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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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정재영·김민희 주연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포스터.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표범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무려 7년 만의 한국영화계 복귀작인 ‘아가씨’ 개봉에 맞춰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에 이은 ‘소녀 3부작’(‘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토커’ ‘아가씨’)을 묶어 찬찬히 살펴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


‘홍상수-김민희 스캔들’ 온통 북새통
“정부가 실책 덮으려 유포” 음모론까지

간통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오늘날
‘불륜’이 도덕적 비난 받을 순 있지만
性的 자기결정권 가진 성인의 사적 문제
언론의 홍 감독 일기장 공개 등 지나쳐



박 감독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변영주 감독의 ‘화차’를 통해 호감을 갖게 된 배우 김민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라 더 그랬는데 그 생각을 잠시 뒤로 미뤘다. 까닭은 (아마 칼럼 제목으로도 먼저 짐작한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바로 ‘홍상수-김민희 불륜설’ 보도 때문이다.

지난 6월21일 방송 연예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 인터넷신문에 관련 기사가 처음 나왔고, 뒤이어 앞의 매체와 비슷한 성격이나 좀 더 ‘파파라치스러운’ 또 다른 인터넷신문이 홍상수 감독 부인의 심경을 친인척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통해,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제68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찍으면서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여러 불미스러운 연예계 뉴스와 함께 엮이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추가 보도가 쏟아졌다. 이런 일련의 뉴스들이 정부가 자신들의 실책을 덮기 위해 고의로 터뜨린 스캔들이라는 음모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다른 뉴스는 모르겠고 이 불륜설에 대한 설왕설래를 보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2005년 11월3일 방송된 MBC 시사 토론 프로그램 ‘100분 토론’에서 가수 신해철이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는 측의 패널로 출연해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 현실에서의 성도덕관념이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해야 하며, 배우자에 대한 애정, 신뢰 여부는 개인이 결정할 사안이지 공권력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 후 10년 뒤, 알려진 것처럼 신해철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4개월이 흐른 뒤인 2015년 2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간통 및 상간행위에 대하여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41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을 내렸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62년 만에 간통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간통을 처벌한 고조선의 8조법금(八條法禁)이 있었다. 근대 이후에도 간통 처벌은 사실상 유부녀를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3호로 공포된 형법대전에서는 “유부녀가 간통한 경우 그와 상간자를 6월 이상 2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정했다. 1912년 일제가 만든 조선형사령에서도 부인과 그 상간자를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했다. 언제나 유부남과 상간녀는 처벌대상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간통죄 논란은 계속되었다. 1953년 형법제정 논의 당시 무소속 엄상섭 의원은 “종래의 간통죄 조항을 그대로 두면 헌법의 남녀평등 원칙에 위반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사람들은 간통죄를 없애면 정조관념을 박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 보수적인 남자들이 실은 간통죄를 범하고 있는 계층입니다. 그래서 간통죄를 두자면서도 쌍벌주의로 나가자는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결국 치열한 논의 끝에 유부녀뿐 아니라 유부남도 처벌하고, 고소가 있어야 기소되는 친고죄로 만들었다. 법안 표결에 참여한 출석의원 110명 가운데 과반에서 1명이 많은 57명이 찬성했다. 1953년 제헌국회에서도 “세계적인 입법 추세를 보면 점차 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며 간통죄를 유지하는 것을 상당히 망설였다고 한다. 위헌논란을 비롯해 남녀 쌍벌규정이 되어도 경제적인 약자인 여자에게 여전히 불리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간통죄는 유부녀만을 처벌하는 경우, 유부남·유부녀를 모두 처벌하는 경우, 모두 처벌하지 않는 경우로 나뉜다. 유부녀만 처벌하는 경우는 1947년 이전 일본 형법, 1969년 이전 이탈리아 형법, 1975년 이전 프랑스 형법이 대표적이다. 일본과 프랑스는 폐지했고, 이탈리아는 쌍벌주의로 바뀌었다. 다만 이탈리아는 아내가 간통을 하면 무조건 처벌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첩을 두어야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외 대부분 국가에서는 간통죄가 없다. 덴마크는 1930년, 스웨덴은 1937년, 독일은 1969년, 스페인은 1990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폐지했다. 우리나라처럼 유부남·유부녀를 모두 처벌하는 나라는 북한·대만·필리핀, 그리고 미국의 일부 주(州)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1992년 노태우정부 형법개정 당시 간통죄를 삭제하기로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있자 징역형은 2년 이하에서 1년 이하로 낮추고 벌금형을 추가하는 걸로 바꾸었지만 이 역시 반대에 부닥쳐 폐기됐다.

영화 칼럼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형법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건 이제 그들만의 사생활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현행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아니다. 간통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오늘날 불륜은 이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진 성인들의 사적인 관계의 문제다.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길 좋아하는 도덕군자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억압적인 사회일 확률이 높다”는 정신분석학의 주장도 있더라. 물론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그들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여성지가 홍상수 감독 부인과 김민희 모친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하거나, 한 종편 프로그램이 홍상수 감독의 일기장을 공개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낸다. 그런 일이 나에게 닥친다고 생각해보라. 진짜 좀 아니지 않나.

이런 논란에도 ‘아가씨’의 흥행은 별 이상 없어 보인다(26일까지 405만6천255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했다).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 그게 전부다. 나는 홍상수가 연출하는 영화, 김민희가 출연하는 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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