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마릴린 먼로와 대구국제공항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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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13   |  발행일 2016-07-13 제31면   |  수정 2016-07-13
[박재일 칼럼] 마릴린 먼로와 대구국제공항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섹스 심벌로 불리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던 J.F.K.(존 F. 케네디)와의 염문은 아직도 회자된다. 1954년 전성기의 먼로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스타 조 디마지오와 결혼한 뒤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한국전쟁의 피로에 지친 주한(駐韓) 미군의 열화 같은 요청으로 한국을 전격 방문한다. 그녀는 미(美)군용기를 타고 서울이 아닌 대구 동촌비행장(현 대구국제공항)에 내렸다. 세계적 스타를 보기 위해 동촌 일대가 인파로 대소동이 벌어졌다.

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머리를 좀 식히자는 의도다. 하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문제가 있어서다. ‘대구국제공항 정책’이다. 정리 정돈이 안된 책상 서류를 보는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K2군사공항과 대구국제공항’을 한 세트로 묶어 이전하는 방안을 그저께(11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지시했다. 신공항 무산과 사드 경북 배치로 들끓는 민심을 잠재워 보자는 통치 차원에서 나온 것이란 지적이 있다. 실제로 사드는 경북 성주로 결정 났다.

K2 문제만 놓고 보면 어쨌든 대통령이 지역의 현안을 놓고 고심해 발언한 것인 만큼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문제는 정책의 목표와 방향에 관해 과연 청와대와 정부가 정치(精緻)한 자료 속에 합당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대구국제공항은 K2공군기지와 함께 쓰는 민·군 복합공항이다. 이곳의 핵심 민원은 전투기 소음이다. 고질 민원이 됐다. 이 대목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큰 착각을 해 왔다. K2 전투비행단의 이전만 이뤄지면 사안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데, 대구국제공항 폐쇄까지 염두에 뒀다. 정책의 목표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온 K2 이전 방식이 ‘기부 대(對) 양여’인데, 이것이 사안을 꼬이게 하고 있다. 대구시가 나서 6.71㎢(200여만평)에 이르는 K2와 대구국제공항 부지를 팔아 개발하고, 그 비용(7조5천억원)으로 외곽으로 빠지는 공군기지를 지어준다는 방안이다.

K2의 전투기 소음 문제는 대법원의 판결로 한 차례 총 2천600억원의 배상이 이뤄졌다. 그런데 배상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언젠가 K2이전 비용을 초과할 것이다. 그래서 답답한 쪽은 국방부이지 대구시가 아니다. 왜 대구시가 정부, 그러니까 국방부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또 다른 정책 목표의 실수는 대구국제공항의 수요와 존립 근거에 관한 부분이다. 대구는 내륙도시다. 250만 대구는 공항이 없으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대구공항은 근년 들어 명실상부한 국제공항으로의 이륙을 시도하고 있다. 이용객이 2배 가까이 늘어 200만명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도시 공항을 폐쇄하고 무슨 ‘시티’로 명명해 아파트를 짓겠다는 복안은 진짜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정답은 K2만을 빼낸 뒤 기존 대구국제공항의 적절한 확장이다. 2천745m 안팎인 두 개 활주로를 대형 여객기가 타고 내릴 3천200m 정도로 늘리고, 군 부대가 이전한 자리에 계류장 등을 대대적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도시 내 멀쩡한 공항 인프라를 폐쇄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K2와 대구국제공항’ 이전을 놓고 일각에서는 선물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칫 재앙이 될 수 있다. 21세기 이 시점에서 앞으로 100년을 이용할지도 모를 대구국제공항을 군사기지까지 끼워 넣어 다시 건설한다는 발상이 도대체 타당한가. 대통령도 대구시민의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K2이전은 정부가 책임지고, 기존의 대구국제공항을 다듬는 것이 최선책이다.

대구공항을 종종 이용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마릴린 먼로의 동촌비행장 도착 장면 사진이라도 걸어놓으면 좋을 것이라고. 대구국제공항은 존속하는 것이 마땅하다.
박재일기자 park1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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