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는 왜 항상 괴물이 나타날까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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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16   |  발행일 2016-07-16 제16면   |  수정 2016-07-16
그림 동화 남자 심리 읽기
‘헨젤과 그레텔’‘북 치는 소년’ 등
남자의 내적 성장 그린 동화 네 편
프로이트·융의 심리학으로 해석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는 왜 항상 괴물이 나타날까
오이겐 드레버만 지음/ 김태희 옮김/ 교양인/ 712쪽/ 2만8천원

현명한 소년 헨젤은 왜 두 번이나 자신을 버린 부모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는 왜 항상 거인이나 불을 뿜는 용, 늙은 마녀가 등장할까. ‘영웅’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처녀’는 처음 본 남자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괴물을 무찌르고 보물을 찾은 젊은이는 모험이 끝난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이 책은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들을 수집해 엮은 ‘그림 동화’ 중에서 남자의 내적 성장을 그린 동화 네 편을 다룬다. 정신분석가이자 신학자인 저자는 비밀스러운 마법과 신화적 모티브, 암호 같은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 동화를 프로이트와 카를 융의 심층심리학, 상담실에서 얻은 수많은 실제 사례를 통해 인간 내면을 밝히는 현실의 이야기로 되살려낸다.

끈질긴 의존 욕구를 떨쳐내고 자유와 독립을 찾아가는 ‘헨젤과 그레텔’, 타인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려는 ‘두 형제’의 젊은 사냥꾼, 마법에 걸린 공주를 사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을 긍정하고 이해하게 되는 ‘수정 구슬’의 셋째 아들, 어머니와 연인 사이에서 헤매다가 마침내 사랑의 목소리를 따라 성숙한 남자로 거듭나는 ‘북 치는 소년’ 등 억압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틀린 사랑에서 벗어나 추락의 두려움과 상실의 불안을 이겨내고 자기 실현에 이르는 내면의 모험을 만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화롭고 독립된 인격으로 성장하기 위해 남자가 거쳐야 하는 정신의 모험을 보여준다. 이 동화들은 대체로 ‘사악한 용’이나 ‘마법사’로 나타나는 아버지와 ‘못난 계모’나 ‘마녀’로 그려지는 어머니 아래서 성장하는 소년이 겪는 불안을 들여다본다.

흔히 동화는 어린이나 여자들이 읽는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는 남자들이야말로 동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네 편의 남성동화는 자기 삶을 깊이 들여다보려는 남자들과 이 시대의 보편적인 남성성에 의문을 품은 여성들에게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저자 드레버만은 이 책에서 자신의 상담실을 찾아온 많은 남성들의 실제 사례를 통해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제 사회에서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여겨져 온 것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보여준다. ‘남자다운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삶. 그것은 느껴지는 것을 느끼지 말아야 하고, 느끼는 것과 정반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삶을 뜻한다. 이런 남자는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내면이 분열된 채 자기 과시와 강요와 위협으로 사랑을 흉내 낸다. 네 편의 동화는 이런 파국의 길에서 벗어나는 내면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는 왜 항상 괴물이 나타날까
귀스타브 모로 작 ‘키메라’(1867). 켄타우로스와 날개 달린 말은 인간의 본능적 추구를 상징한다. <교양인 제공>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는 왜 항상 괴물이 나타날까
귀스타브 도레 작 ‘안드로메다’(1869). 바위에 묶인 아름다운 안드로메다에게 구애하는 바다 괴물은 지성의 반대편에 있는 어둡고 둔중한 충동을 상징한다. <교양인 제공>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문학적 상상력,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삼아 쓴 인문 교양서인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그림 동화를 구성하는 여러 상징과 모티브들이 세계의 신화와 전설은 물론이고,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과 케테 콜비츠의 판화, 바그너의 오페라,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 장르를 초월해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음을 확인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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