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사과를 주저하지 말라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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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1   |  발행일 2016-07-21 제31면   |  수정 2016-07-21
[영남타워] 사과를 주저하지 말라

#1. 지난해 10월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야당 정치권의 비난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분열이 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3시간 뒤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2.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성주 배치의 후폭풍이 몰아친 지난 14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박 대통령은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다. 정쟁으로 국가의 안위를 잃어버리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이날 오후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참석차 몽골로 떠났다. 박 대통령은 이런 식이다. 혼돈과 대치의 정국을 자초하고선 오히려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국 출장(예정됐겠지만 시점이 공교롭다). 전형적인 박근혜식 ‘정면돌파’다. 염치(廉恥)가 없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21일로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가 난 지 한달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사과는 여전히 없다. 염치에 둔감한 그에게 사과를 기대한다는 게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혹자는 “이미 다 끝난 얘긴데 부질없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영남권 신공항’은 박 대통령의 엄중한 대선공약이었다. 그걸 하루아침에 ‘김해공항 확장’으로 뒤집어 버렸다. 박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이를 ‘신공항’이라 얘기하고 있다. 누가 봐도 ‘절름발이 신공항’인데도 공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는 듯 얘기하니 실소마저 나온다. 이는 영남지역 유권자에 대한 크나큰 무례다. 공약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지키지 못했다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옹색한 변명을 해선 안된다. 혹여 최근 발표한 ‘K2·대구공항 통합이전’과 퉁쳤다고 여긴다면 더더욱 오판이다. 박 대통령은 훗날 퇴임 이후에라도 국민에게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

사드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국가안위 운운하며 ‘대한민국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국민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쯤하면 거의 설화(舌禍)급이다. 사전 주민설명회·환경영향평가 한번 없는 일방적 결정을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내가 알아서 했으니 너희들은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독선적 리더십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왜 이토록 사과에 인색할까. 박 대통령은 레임덕(lame duck·임기 말기 권력누수 현상)을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혼돈의 정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거나 사과를 할 경우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또 사과 자체를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듯하다. 여론이 사과를 해야한다고 할 때도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불통의 이미지만 굳어졌다.

물론 친구나 가족 간에도 ‘잘못’을 사과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면 오죽하겠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돼 자칫 신뢰와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금(古今)의 세계적 지도자들은 ‘사과’에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의적절한 사과를 통해 국민과 더욱 소통한다. 덤으로 개인의 ‘정치적 레벨 업’도 이룬다. 과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를 침공한 사건이 실패로 끝나자 지체없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용기있는 사과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그에 대한 지지도는 가파르게 올랐다. 우리 역대 정부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때 “죄인의 심정으로 사고수습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1년 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많은 논란속에서도 어쨌든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최근 사드 배치 예정지에서 가까운 성주군 선남면 고령박씨(박 대통령도 고령박씨) 집성촌의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박 대통령의 대형사진을 뜯어낸 게 화제가 됐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대통령은 이제 대구·경북을 ‘정치적 고향’이라고 얘기해선 안된다. 이창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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