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찍어 준 票가 아깝다” 성주 새누리당원 1천명 탈당

  • 조규덕
  • |
  • 입력 2016-07-22 07:14  |  수정 2016-07-22 07:26  |  발행일 2016-07-22 제2면
■ 주민들 사이 反與 정서 확산
“한 마디 말도 없이” 배신감 커
4명 중 1명 꼴로 적지 않은 수
“선출직도 공감…시기 저울질”
20160722
21일 오후 성주군청 앞마당에 마련된 새누리당 탈당 접수 부스에서 한 주민이 탈당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여기가 (새누리당) 탈당 접수하는 데가 맞습니꺼. 옆집 아지매가 군청에 가면 탈당계 낼 수 있다 그래서 왔어예.”

성주군민 2천여명이 서울역 광장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고 있던 21일 오후 3시쯤. 성주군청 앞마당에 마련된 새누리당 탈당 접수처에 성주읍 경산리에 사는 안윤옥씨(여·59)와 지인 등 3명이 찾아왔다. 부스에 있던 이윤호씨(44·성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가 “어무이들 잘 왔심더. 앉아서 하드(아이스크림) 한 개씩 잡수시고 하이소”라며 아이스박스에서 아이스크림 3개를 꺼내 안씨 일행에게 건넸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안씨 일행은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탈당신청서를 써내려갔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당원이었다는 안씨는 20년 가까이 활동한 골수당원이다. 그에게 새누리당은 ‘모태정당’이나 다름없다. 매달 당비도 꼬박꼬박 냈다. 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지역을 성주로 결정한 뒤부터 그는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고 한다. 안씨는 “어떻게 나랏일을 한다고 하는 양반들이 우리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여기(성주)에다 사드를 배치할 수 있냐”면서 “그동안 내가 찍어준 표가 아까울 정도”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옆에 있던 김모씨(여·64)도 함께 거들었다. 김씨는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성주에 한 번 와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고 하더라. 그 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정부를 비판했다. 나머지 일행 한 명은 준비돼 있던 탈당 신청서가 동이 나자 자원봉사자가 군청 민원실에 가서 복사해 오는 동안 한참을 기다렸다가 탈당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러던 사이 성주지역 한 농협에서 근무하는 남자 직원이 헐레벌떡 찾아왔다. 농협을 방문하는 고객 중 새누리당 탈당을 문의하는 고객이 많아 탈당신청서를 얻으러 온 것. 그 직원은 “처음에는 성주군청에 가면 탈당 신청서가 있다고 고객에게 안내했으나 갈수록 (탈당 문의 고객이) 늘어서 아예 신청서를 대량으로 복사해 농협에 비치해 두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왔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탈당 접수 부스에 머물렀던 약 한 시간 동안 새누리당을 탈당하려는 주민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성주지역에서 새누리당 탈당 신청서를 낸 주민은 약 1천명. 성주지역 새누리당 전체 당원이 4천여명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이날 오전에도 수십명의 주민이 군청을 찾아 새누리당 탈당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러한 성주 주민들의 잇단 새누리당 이탈현상은 투쟁위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에 배신감을 느낀 주민들이 스스로 새누리당을 탈당하겠다고 나섰고,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지난 17일 주민 스스로 군청 마당에 부스를 마련하고 탈당 신청서를 접수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탈당 접수 부스에는 투쟁위 관계자가 아닌 주민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교대로 부스를 지키고 있다.

자원봉사자 이혜경씨(여·47·성주읍)는 “정부와 여당은 성주 주민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와 행동하는 이유와 수십년 동안 소속돼 있던 새누리당을 떠날 수밖에 없는 지역민의 심정이 어떠한지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투쟁위는 탈당 신고서를 새누리당 고령-성주-칠곡 당원협의회나 경북도당 또는 중앙당에 낼 예정이다.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치는 입당과 달리 탈당은 신고서가 소관 기관인 경북도당에 전달되면 별다른 절차 없이 곧바로 처리된다.

주민 사이에는 새누리당 소속 군수와 군의원, 도의원도 탈당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주지역 선출직 가운데 무소속 노광희 성주군의원을 제외한 전원(군수 1명, 도의원 2명, 군의원 7명)이 새누리당 소속이다.

성주군의원 A씨는 “현재 성주지역 선출직들이 새누리당 탈당 의지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그 시기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성주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조규덕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