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표성흠의 캄보디아 편지] 반테이 토업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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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2   |  발행일 2016-07-22 제39면   |  수정 2016-07-22
천년 세월 꼭꼭 숨어있던 사원…그 비경에 입을 다물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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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버티어 온 나무 판에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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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반테이 토업의 허물어져 내린 모습에서 역사를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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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감고 있는 나무가 오히려 천년고찰의 붕괴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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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그곳에 맞는 의상과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는 데 있지 않을까.

반테이 토업을 찾았다. 한국 사람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동안 몇 번을 찾아 헤매었지만 한 번은 오토바이가 고장 나 못 갔고, 또 한 번은 진입로를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나가버려 찾지 못했던 숲 속이다. 앙코리안에서 잠시 머물며 가이드 일을 하고 있던 신일섭씨가 며칠 전에 현지인의 도움으로 현장을 가봐서 길을 안다고 했다. 마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좋아한다는 여성 관광객 두 명이 타고 가는 봉고차에 묻어가기로 했다.

반테이 토업은 시엠립에서는 두어 시간 걸리는 반테이 민체이 주에 위치한다. 반테이 민체이 주는 내가 거주하는 시소폰의 주도(主都)로, 주도에서 여기까지는 한 시간 거리고 반테이 츠머 사원이 근처에 있어 몇 번이나 들렀던 곳이다. 하지만 진입로가 새로 포장된 69번로 옆에 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도로포장을 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놓은 것 같다. 여기서는 자고 나면 포장도로가 건설되고 주유소가 생겨날 정도로 발전 속도가 빠르다. 관광자원이 숨어있는 곳은 더욱 빠른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 이 고찰도 달러를 많이 벌어들일 수 있는 보물창고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찾기가 더 쉬워진 곳으로 도로를 신설했다. 국도에서 불과 몇 분 거리다.

수차례 찾아 나섰다 번번이 헤맸던 곳
가봤다는 韓人 지인 일행 따라 나선 길
시엠립서 두어시간 거리 국도변 위치
이젠 새 진입로·이정표 생겨 찾기 수월

허물어진 돌무더기와 나무로 덮인 탑사
12∼13세기 자야바르만 7세 때 세워져
대들보役 나무판 긴 세월 버틴 것 신기
수수께끼 같은 기하학적 문양도 신비


◆천년동안 자연의 품 속에 맡겨진 사원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연지가 보이는데 물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주차장도 조그마한 공터 정도로 아직은 본격적인 관광객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곳이다. 안내인도, 입장료를 받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천년을 고스란히 자연의 품 속에 맡겨져 있는 사원이다. 주변 풍광이 정말로 평화, 그 자체다.

허물어진 돌무더기를 밟고 중앙탑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본 반테이 토업의 첫인상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캄보디아 안에 있는 천년 고찰들을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인 만큼 다른 곳과 비교해 볼 만한 안목이 생겼는데도 왜 유독 여기서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가. 열대우림이 뒤덮고 있는 탑사의 위용 때문인가. 아니면 그 세월의 잔인함 때문인가. 그 모든 것이 아니다. 중앙탑으로 보이는 건물 입구의 ‘상인방’에 해당되는 린텔이 돌이 아닌 나무로 돼 있기 때문이다. 잘못 보았나. 어떻게 상인방을 나무로 짤 수 있단 말인가. 면밀히 따져보니 상인방이 아니라 건물 대들보 같은 존재다. 아무리 봐도 새로 맞춰 넣은 것 같지는 않다. 복원의 흔적도 없고 누군가 손을 댔다 하더라도 저렇게 큰 돌들을 다시 옮겨 쌓을 수도 없거니와 탑의 중앙 양 벽을 떠밀고 있는 들보를 다시 끼워 넣을 재주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거기 일정한 문양이 조각이 돼 있음에랴. 지붕도 없는 뾰족탑인데 들보라니. 전혀 새로운 구조물을 발견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반테이 츠머와 반테이 토업은 12~13세기 자야바르만 7세 때 건축물이다. 그렇다면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 나무판으로 된 구조물은 저기 그대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터. 도대체 무슨 나무가 천년을 간단 말인가. 신씨를 불러 물어본다.

“저거, 분명히 나무가 맞지요? 나무 상방이지요? 아니면 들보인가?”

“저도 첨 봐요. 지난번 같이 왔던 현지 안내인들도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르더라고요.”

도대체 알 수 없는 것이 캄보디아 문화유산들이다. 지식인들을 말살해 버린 탓일까. 기록을 없애버린 탓일까.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 캄보디아다. 기록이 없는 곳에서의 문화유산 감상은 멋대로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태국 국경이다. 국경 바로 너머 낭롱에 파놈 룽이 있고 코랏에 피마이 유적이 있다. 모두 자야바르만 7세 때 건립된 건축물이다. 그런데 거기 어디에도 나무 린텔을 사용한 흔적은 없다. 그런데 왜 여기만 나무를 사용한 조각 들보가 있는 것인가. 풀리지 않는 숙제다. 게다가 조각된 내용이 글자인지 그림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다. 워낙 높기도 하지만 내리쬐는 태양의 빛이 너무 강렬한 그늘을 만들어 사진을 찍어 확인할 길도 없다. 이 수수께끼를 풀자면 가까이 있는 반테이 츠머 사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반테이 츠머 사원 스토리

연재를 처음 시작한 곳이 반테이 츠머 사원이다. 나는 그곳에 있는 나가를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거길 갔었다 했다. 그리고 반테이 츠머에는 앙코르 톰에서와 같은 크메르 군사와 참족간의 해전 장면이 그려진 그림조각이 있다 했었다. 또 한 가지, 반테이 츠머의 린텔에 그려진 조각상 중에 아주 특이하게도 학과 노니는 신선들의 모습이 있다 했다. 그러면서 도교의 사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한 바 있다. 그 당시 이 신선사상이 퍼져 있었다면, 여기 이 사원의 그림도 같은 내용이 아닐 것인가.

또 한 가지, 반테이 츠머가 국가적인 재단으로 설립된 사원이라면 여기 이 반테이 토업은 민간 차원의 사원이 아닌 것인가 하는 가설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 머잖은 태국의 피마이 유적이 국가적 차원의 사원인 데 비하여 그 옆의 파놈 룽은 어느 부호의 가문을 위한 사원일 것이라는 추론을 여기서도 제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테이 츠머 사원은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일정부분 손질을 가했다. 규모면에서 반테이 토업보다는 월등하게 크고 건물도 많다. 또한 바푸온 사원에서 보았던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 조각상이 여기서도 작고 큰 탑의 중앙부를 장식하고 중앙탑 같은 경우에는 사방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면얼굴’도 있다. 게다가 사원을 두르고 있는 사방 벽에다가 참족과의 전투장면을 조각해 놓아 그 위엄을 드높이고 있다. 가까이 이런 웅장한 사원을 두고 또 다른 사원을 만들 까닭이 없질 않은가. 이는 필시 국가적 차원의 사원이 아닌, 이에 버금가는 또 다른 권력을 가진 인물이 만든 사원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사원은 뭐하는 물건이지

사원의 목적은 대개 두 가지다. 기도처가 아니면 무덤이다. 무덤과 기도를 동시에 해결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화장장이 보이질 않는다.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현재 캄보디아 전역에 산재해 있는 사원들을 찾아가보면 그 의문이 쉽게 풀린다.

현재의 사원들 안에는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이 있다. 그 유골을 수습해 안치하는 납골당과 영혼을 모셔 기리는 영가대가 있다. 영혼을 위한 기도처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전통과 습속은 누천년을 내려오며 전승되어 현재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천년 전 사원의 용도와 가람배치도 대충은 파악이 된다. 이는 우리나라 가람배치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법당이 있고 산신각이나 영산전이 있어 혼령을 모시는 형태는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돌아보고 있는 이 허물어진 사원은 어디에 해당되는 건축물이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당시 여기를 드나들던 인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 것인가. 저들을 불러 이야기하는 재미가 여행의 묘미인 것이다. 그러자면 조용히 앉아 저들과 대화를 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주최측은 이제 다 봤으니 가자고 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저들과 함께 일어난다. 여행의 주인공은 언제나 돈 내고 차를 렌트한 고객의 스케줄이 우선 아니던가. 꼽사리 끼어 다니는 필자에게는 이렇다 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오늘은 너무 즐겁다. 셀카놀이에 열중인 이 여성들의 의상이 앙코르와트에 등장하는 모델들보다 훨씬 화려하고 취하는 포즈가 시원시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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