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남자의 취미] 즐거운 글쓰기 <상>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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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2   |  발행일 2016-07-22 제40면   |  수정 2016-07-22
신사의 품격은 글쓰기에서 시작된다
20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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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사진

일기는 언제나 귀찮은 숙제였고, 글짓기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방학 때마다 몇 편씩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독후감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사촌들이 썼던 내용을 이름만 바꾸거나, 작년 제출물을 재탕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곤혹스러움을 넘어 공포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졌다. 적어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또래의 세대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글쓰기 준비가 돼 있다”
문자·SNS·댓글도 모두 글의 형태
글을 쓰겠단 건 이런 일상 글쓰기에
약간의 정성 보태겠단 마음이면 돼

어디 내밀어도 폼나고 고상한 취미
펜과 종이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능
자신 돌아보고 생각 정리에도 좋아
‘까짓 밑져야 본전’ 선택은 당신의 몫



그러니 글쓰기를 취미 삼아보라는 제안은 섣불리 할 수도, 쉽게 받아들여질 리도 없다. 뭐,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나 역시도 글 쓰는 일이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의 성역으로 쉽게 넘볼 수 없는 분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써내려간 주옥같은 문체를 읽다 보면, 몇백 개의 단어만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하는 범인으로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때도 많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며, 관점에 따라 성격이 바뀌게 마련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작가처럼 글 쓸 능력도, 생각도 없다. 그저 흰 종이 위에 꼼지락거리며 낙서하던 습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것이다, 라고 내뱉는 순간 글쓰기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결국, 글쓰기를 취미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했던 것은 딱 하나, 어떻게든 써보겠다는 결심이었던 것이다.

물론 누구나 평소에 글을 쓰고 산다. 연인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도, SNS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인터넷에 올리는 댓글도 모두 글의 형태를 지닌다. 그렇게 평소에 가지고 놀던 찰흙에 살짝 형태를 부여하고, 필요에 따라 무늬도 그려 넣어 보자는 거다. 글을 쓰겠다는 것은 거창할 것 없이 이러한 일상의 글쓰기들에 약간의 정성을 보태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어떻게 하면 성의가 담긴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모든 글을 애인에게 편지 쓰듯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백지를 앞에 두고 마냥 즐거워하다가는 정신 분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먼저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이로움을 주는가를 떠올려 보자. 글쓰기를 즐겁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 몇 가지를 짚어 본다.

첫째, 글쓰기는 어디에 내밀어도 폼 나고 고상한 취미다. “느그 아부지 취미로 뭐하시노?”라고 물었을 때, “텔레비전 채널 개수 확인 하시는데예”라거나 “약주 좀 하십니더”라는 답변이 나온다면 자식 둔 아비로서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희 아버지는 취미로 글을 쓰십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우리 아이로 키워보는 건 어떨까.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는가가 뭣이 중허냐고? 다른 취미들이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지만, 글쓰기는 예외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일기도 남을 의식해서 쓴다는 말은 결코 과장됨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읽어주고 공감할 때 글을 쓴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지속해 나갈 의지도 생겨난다. 그러니 애초부터 대놓고 품격 있어 보이는 취미로 받아들이자.

둘째, 글쓰기는 초기 투자비용이 전혀 없는 취미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연필이나 볼펜 한 자루와 직장에 넘쳐나는 이면지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 풀세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악기를 마련하기 위해 몇 달간 용돈을 모을 필요도 없다. 불 같은 의지로 시작했다가 하나둘 창고로 사라져간 취미용품이 얼마였던가. 거짓 조금 보태면 중고차 한 대 값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글쓰기는 경제적인 면에서만 놓고 보더라도 당신의 가계에 해를 끼칠 리 없는 착한 취미다.

셋째, 글쓰기는 눈앞에 성과물이 여실히 드러나는 취미다. 카드 전표처럼 쓴 만큼 눈앞에 쌓인다. 글의 질적 수준은 별개로 두고, 재미 붙여 쓴 만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더군다나 기타처럼 손끝에 물집이 터져나가는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한두 곡 연주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전문 작가들이야 피로 글을 쓴다지만, 취미 삼아 끄적거리는 아마추어 중에 사활을 거는 이는 없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도 결과물이 축적되는 신속한 피드백을 가진 취미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자기계발형 취미다. 넘쳐나는 자기계발서들에 담긴 내용들은 거의 엇비슷하다. 서너 권 읽어보면 대충 각이 나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자기 계발을 위해서는 성공한 이들의 조언과 습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부터 들여다보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함에 있어 글쓰기만큼 명쾌한 해법은 없다.

머릿속에 흩어져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일, 바로 이것이 글쓰기의 실용적인 장점이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몇 마디 말보다 정리된 한 줄의 글이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글 쓰는 취미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나를 둘러싼 문제점들도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준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쓰기가 가져다줄 긍정적 변화를 수긍한다면 까짓것 밑져야 본전이니 글쓰기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당장 오늘 저녁 술 약속을 취소하고 오랜만에 먼지 낀 책상 위에 앉아 종이와 펜을 꺼내보자. 아내는 바가지 대신 접시에 과일을 담아내올 것이며, 아이들은 아빠의 낯선 모습을 존경과 숭배의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다.

마흔을 목전에 두고 시작한 글 쓰는 취미는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주정처럼 갈피를 못 잡고 풀어놓던 개똥철학은 기준을 잡기 시작했고, 미루고만 싶던 일상의 문제점들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며 하나씩 해결점을 찾게 되었다. 살아온 발자취들을 정리하다 보니 앞으로의 살아갈 길에 이정표를 얻었고, 내가 남긴 글들로 인해 작은 희망을 얻는 이들을 보며 감사하는 마음과 책임감도 느낀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선택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글을 멋들어지게 써보자는 것도 아니고, 글 써서 부수입을 챙겨보자는 것도 아니다. 외계 행성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여기던 글쓰기라는 취미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보자는 말이다. 혹시나 이 글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라는 댓글을 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글 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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