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부산행’ 석우役 공유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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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2   |  발행일 2016-07-22 제41면   |  수정 2016-07-22
“‘좋은 아빠’될 자신 있었는데 영화 찍으며 자신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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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있는 아빠 역할만 벌써 네번째
전작들이 부성애 감정연기엔 도움
하지만 ‘결혼·아빠 되기’ 고민 커져

남이 시도 않은 것 도전하기 즐겨
우리나라 첫 좀비 재난블록버스터
연상호 감독 개성 어우러져 시너지

'칸’ 호평이 오히려 부담도 됐는데…
이젠 ‘도가니’466만 흥행 깨길 기대”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과 함께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기 위해 부산행 KTX에 오른다. 자기 안위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온 석우는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했던 인물. 생일을 맞은 딸을 위해 내키진 않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냈다. “엄마가 떠난 게 자기밖에 모르는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수안 역시 석우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부녀의 서먹서먹한 동행. 그러나 열차는 이내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침투와 연쇄 감염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로 발화되는 재난 블록버스터다. 전작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통해 강렬한 비주얼과 사회를 관통하는 통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좀비를 소재로 한 재난 군중극이라는 점이 낯설고 주연배우라는 메리트도 상당 부분 배제된 채 출발하지만 공유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소재와 연상호 감독의 개성이 어우러져 발휘될 시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며 선뜻 이 여정에 탑승했다.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에서 성취감과 의미를 찾는다는 공유에겐 어찌 보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인 셈이다. 그의 남다른 직관과 판단력 역시 전에 없이 크게 상승했음은 물론이다.

“연극적이지 않고 힘을 뺀 자연스러운 연기”를 원했던 연상호 감독의 의도대로 공유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부산행’에서 튀지 않게 중심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동시에 피곤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석우에게 차츰 따뜻한 감정의 결을 입혀간다. 아마도 그 방점은 아비규환이 된 재난 속에서 딸 수안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사투를 벌이는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그동안 쌓아온 풍부한 연기 경험과 넓은 스펙트럼, 30대 대표 남자 배우로서의 성숙함이 바탕이 됐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성 연기를 탑재한 채 돌아온 공유. 그의 간절한 눈빛연기가 유독 돋보였다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니 칸에서 호평한 이유를 알겠다.

“사실 걱정을 좀 했다. 칸에서의 호평이 국내에서도 이어질지 말이다. 칸은 칸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분명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많은 사람이 좋게 봐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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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반응에선 어떤 차이가 있었나.

“아무래도 외국사람들은 우리나라 실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좀 더 장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즐기더라. 뮤지컬 공연도 아닌데 소리지르고 박수치며 보는 모습이 되게 신선했다. 배우 입장에서도 그런 호응은 진심이든 아니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내가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됐을 정도다. 반면 한국 관객들은 동적인 면보다 정적인 면에 동요하는 것 같다. 혹자는 그게 너무 신파적이라고도 말하는데, 누군가에게는 사족이고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정서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실사영화다. 이에 따른 우려와 걱정이 있었을 듯한데.

“오히려 흥미로웠다. 연상호 감독은 사회고발적 애니메이션을 주로 연출했던 분인데 상업적으로 기획된 영화를 한다고 하니 그럴 수 있지 않겠나. 좋은 시너지가 날 거라고 기대했다.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았다. 우리도 이런 소재를 하는구나,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더라.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하는 입장에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출연 결정을 하고 나서부터 우려와 걱정이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그래서 감독님을 만날 때마다 괴롭히듯 계속 물어봤다. CG와 특수분장은 어떻게 할 건지, 이미 관객은 할리우드 영화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는데 어떻게 풀어갈지 등을 말이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있게 말하더라. 끝까지 믿어보기로 했다.”(웃음)

▶실제로 촬영해보니 어땠나.

“특수분장은 엄청 리얼했고 촬영속도는 너무 빨라서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웬만하면 모두 오케이였다. ‘이래도 될까’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만큼 감독님의 생각과 그림은 확고하고 명확했다.”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생길 것 같다.

“나는 손익분기점을 넘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도가니’(466만명)의 기록을 깼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산행’은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영화다. 당신은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슬픈 영화다. 감염자이든 아니든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고 그 시선들은 엇갈리고 충돌한다. 친한 동료나 가족들이 한순간에 좀비가 돼 사람들을 물어뜯고 비감염자끼리도 서로를 배척하고 편을 가른다. 그 안에서 다수와 소수가 존재하고, 뭐가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에 의해 소수가 배척당하는 모습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 점에서 드라마와 좀비 스릴러가 장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좀비들이 실감나더라.

“좀비 역할을 한 분들의 연기 몰입이 정말 대단했다. 본인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덤비기 때문에 감독님이 컷을 해도 못 듣는 경우가 많았다.(웃음) 나는 컷인 줄 알고 그만하는데 그들은 끝까지 나한테 뭔가 해를 가하려고 덤비니까 나중에는 진짜 겁이 나더라. 도망가다가 잡힌 적도 많다.”(웃음)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아빠 역할이다. 아직 미혼이라 진짜 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기 쉽지 않았을 텐데.

“따져보니까 이번까지 딸 있는 아버지 역할이 네 번째더라. 물론 영화에 딸과 함께 나오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아버지라는 설정은 반복됐으니 아버지로 보이기 위한 연기적 노력은 계속 했던 셈이다. 그런 경험과 상상력이 합쳐져 이번 ‘부산행’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부성애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부성애는 뭔가 학습적으로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계획해서 표현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한다면 어떤 아빠가 되고 싶나.

“당연히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런데 결혼한 선배나 친구들을 보면서 그게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했는데 특히 ‘부산행’을 찍으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건 단순히 육아를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내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얘기해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설명을 해줄 자신이 없다. 차츰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과연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된다.”

▶요즘 아역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한다. 그중 김수안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김태용 감독님으로부터 수안이에 대한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감독님이 그러더라. ‘위대한 여배우를 봤다’고. 정말로 요즘 아역들은 대단한 것 같다. ‘곡성’에 나오는 김환희양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너무 프로답다. 아이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졸리면 졸리다고 할 수 있고, 그런 투정은 자연스러운 거다. 그런 면에서 수안이에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한번도 투정을 부리거나 징징대지 않더라. 노파심에 ‘네 나이 때 할 수 있는 건 웬만하면 다 하는 게 좋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 역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평소 악역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악역은 꼭 해보고 싶다. 그런데 용석은 너무 악역이더라. 한편으론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아무튼 하면 정말 못되게 할 자신은 있다.”(웃음)

▶‘부산행’은 CG작업을 기존의 블루 스크린이 아닌 LED 후면 영사기술을 시도했다. 해보니 어떤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배우들이 그것 때문에 정말 편했다. 사실 나는 블루 스크린에서 연기해본 경험도 별로 없지만 재난 영화이다 보니 분명 그런 작업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LED 후면 영사기술이란 게 있다며 우리가 처음 시도해 볼 거라고 하더라. 기차 세트에 가서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보고 모든 배우들이 ‘와’ 하고 감탄했다. 쉽게 말하면 좀비들이 외부에서 기차 유리 너머로 위협을 가하고 덤비는 장면 등을 미리 찍어놓고 양쪽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거다. 허공을 보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서 시선처리가 자연스러웠고 달리는 기차의 속도감도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에겐 정말 유익한 기술이다.”

▶차기작이 ‘밀정’과 드라마 ‘도깨비’(가제)인데.

“운 좋게도 ‘부산행’과 ‘밀정’을 연달아 찍었다. ‘밀정’은 늘 함께하고 싶었던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와의 호흡이라 기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밀정’을 찍으면서 연기가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워낙 걸출한 두 분과 함께하는 일이라 촬영하는 내내 주눅이 들었고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내 몫을 다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들에게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한편으론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과정에서 연기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도 받았다. 또 연말에 방영될 ‘도깨비’ 역시 ‘태양의 후예’ ‘상속자들’의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SF판타지물이라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의미있는 또 다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부산행’처럼 원없이 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는 반등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매번 새로운 장르로 만난다는 게 인상적이다.

“배우들에게 새로운 장르의 도전은 본능인 것 같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다들 뭔가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 그렇다고 필모를 자의적으로 다양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본능에 충실하되 중복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편이다. 물론 작품운은 좀 있는 것 같다. 다수가 좋아할 것 같은 작품을 고르면 흥행이 될 확률은 더 높겠지만 나는 내 직관이나 주관을 믿고 따른다. ‘부산행’도 그렇게 선택했다. 칸에서 오픈을 하고 나서 호평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모두가 좀비영화를 한다고 하니까 반신반의했다. 같은 맥락에서 앞으로도 그런 재밌고 참신한 기획이라면 언제든지 먼저 손을 내밀 것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매니지먼트 숲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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