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법을 지키면 진짜 손해일까요?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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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5 08:10  |  수정 2016-07-25 08:10  |  발행일 2016-07-25 제18면
法, 나를 안전하게 지켜줘…소중함 알고 준수해야
20160725
그래픽=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조폭영화 속 주인공이 저지르는 범죄
멋있고 의리있는 행위로 정당화 씁쓸
횡단보도 건너기 교통사고 예방하듯
법 지키면 눈에 안보이는 이익이 쌓여


“사기는 말이지, 사기를 당한 사람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모르게 하는 것이야.”

사기꾼 전우치는 옥녀와 함께 권세를 휘두르며 부를 축적한 정난정을 대상으로 금광개발 사기를 모의합니다. 전대치기 천둥 일당은 정난정 상단과 거래하는 행수의 돈을 소매치기 하고, 그 돈으로 가짜 천은을 만듭니다. 전우치는 금광개발 사업자 행세를 하며 정난정에게 천은을 뇌물로 바쳐 환심을 산 후 금광개발 투자를 제안합니다. 불법 금광개발을 단속하는 채광견차관 또한 가짜 인물로 옥녀는 정난정을 완벽하게 속인 후 투자금을 빼앗고 흉년으로 식량 배급이 끊긴 전옥서(교도소) 죄수들의 식량을 구하게 됩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옥중화’라는 사극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 조선시대 전옥서에서 태어나 자란 옥녀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이전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전옥서라는 생소한 공간과 다양한 인물을 통해 극적 재미를 더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악행을 저지르는 정난정에게 통쾌한 복수를 할 때마다 속이 시원할 정도이지요.

하지만 드라마를 함께 보던 초등 6학년 딸의 질문을 받고 매우 난처하였습니다. “아빠, 옥녀는 왜 사기를 쳐요?” “옥새는 임금 도장인데 왜 저 사람들이 가짜 도장을 만들어서 찍어요?” “진짜 돈 받고 죄수를 바꿔줄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당황하여 “정난정이가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니까 옥녀도 그렇게 한 것 같아” “옛날에는 그렇게 했나 봐”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하였지만 사기, 공문서 위조, 금품수수 등의 위법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옥녀와 주변 인물들의 위법 행위가 사리 판단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정당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친구’ ‘넘버3’ ‘달마야 놀자’ ‘신라의 달밤’ 등 조직폭력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조직폭력배인 주인공들은 멋있고 의리 있는 사람으로 미화되었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정당화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에 진로 강연을 간 현직 경찰이 조직폭력배를 우상화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였다는 신문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이처럼 위법 행위를 정당화한 드라마와 영화가 법을 어겨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줘서 일까요? 아니면 법을 어겨도 괜찮다는 우리의 인식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법질서 지수는 OECD 34개국 중 하위권인 25위에 그치고 있습니다. 또한 성인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에서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답했으며, 10명 중 4명은 ‘법을 지키면 손해 본다’라는 말에 동의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법을 어기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무단횡단, 불법주차, 무임승차, 쓰레기 불법투기, 허위 신고, 장난 전화, 금연 장소 흡연, 자연훼손 등 비교적 처벌이 가벼운 경범죄에 대해서는 법을 잘 지키지 않고, 혹 걸려서 범칙금을 내게 되면 운이 없거나 나만 걸렸다는 불만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면 왜 손해 본다고 생각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손해 보는 기준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먼 길을 돌아 횡단보도로 힘들게 가는 나와 달리 무단횡단으로 편하게 가는 사람을 볼 때 법을 지킨 나 자신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나로 돌려 보세요. 지금 잠깐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교통사고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반면 무단횡단은 잠깐의 작은 이익을 보는 것 같지만 교통사고라는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이 아닌 나만을 보면서 법을 준수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이 쌓여갈 것입니다.

지난주 일요일은 우리나라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었습니다. 법의 소중함을 알고 잘 지키자는 의미로 제헌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였음에도 올해는 일요일과 겹쳐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법 때문에 멸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서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면 좋기 때문에 법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신민식<대구학생문화센터 교육연구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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