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드와 불통(不通)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7-25   |  발행일 2016-07-25 제29면   |  수정 2016-07-25
20160725
정재형 (변호사)

성주 사람들이 뿔났다. 가야산 자락에서, 대가천 언저리에서 참외농사를 지으며 유유자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군청 주차장에 모여서 머리띠를 맨 채 촛불을 들어야 하고, 삼복더위에 서울역 앞 아스팔트 바닥에 추레하게 앉아 남사스럽게 ‘데모’를 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뜻밖에 당하는 불행이나 재난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날벼락’은 이럴 때를 위해 있는 표현이다.

매일 저녁 성주군청에서 벌어지는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오는 하소연을 들어보면, ‘북한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정부의 말을 순진하게 믿는 성주군민은 없는 것 같다. 이제껏 집권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정부가 하는 일이면 두말하지 않고 따랐던 사람들이 그 정부를 불신하면서 거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믿고 못 믿고’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 성주지역과 인근지역 사람들은 집단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격에 ‘앞으로 어찌 살까?’ ‘수백 년 터잡아 살아 온 이곳을 떠나야 할까?’ ‘어떻게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있나?’ 이런 상념에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문득 문득 ‘누구 때문에 내가, 우리 식구가 이런 혼란을 겪어야 하나?’라는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지켜보는 이들도 답답하고 억울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서울 언론들은 “사드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하다는데 왜 시끄럽게 구느냐”고 힐난하면서 정부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성주 사람들의 폭력성을 묘사해 보도하지 못해서 혈안이 되어 있고, 억울한 몸부림에 대해 보상금을 챙기기 위한 생떼로, 고을 전부를 백척간두의 위험에 떨어뜨릴 처사를 재고하라는 고을 사람들을 ‘님비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편파매체의 왜곡보도는 ‘문향(文鄕)’ 성주를 욕보이는 것이다.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못지않은 2차 피해에 대해 지역민들은 호소하고 있다. 분노한 사람들이 특정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고 취재진을 냉대한다는 소식도 인터넷에 넘쳐난다.

사실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영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근본은 ‘과연 국익이 무엇인지’ ‘국민이 국가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있다. 국가의 이익과 일부 국민의 이익이 충돌하는 사드의 배치와 같은 사안의 해결은 먼저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면밀한 계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익과 그 계량치’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의 일환인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문제에 관하여 대한민국의 손익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고 각자가 일면의 타당성을 가진다면 여러 의견이 하나로 수렴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 여러 견해를 말하고 듣고 조정하고 타협하고 이해시키는 것을 쓸데없는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고 보는 시각은 국민을 ‘아둔한 존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걸림돌’ ‘오로지 세금만 내는 통치의 객체’라고 보는 오만방자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필요한 것 같아 보이더라도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의 견해를 물어보고 그 수를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일일이 물어보기 정말 곤란한 때를 대비해 국회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소수의 행정부 공무원이 “우리가 알아서 할 터이니 국민은 그냥 ‘편히’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통치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헌법을 거스른다. 남북분단 대치 상황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방에 관한 문제는 국민의 의견을 더 넓게, 더 깊이, 더 오래 구해야 하는 사안이지 좀 배운 공무원 몇 명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이론을 두고서라도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사회는 진지하게 성찰하고 토론해야 한다. 부작용이 있는 불가피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면, 피해를 입는 국민에게 국가가 설명하고 읍소하고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무고한 희생에 관해 진지한 위로의 말씀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성주 군민에게 보여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모르쇠하고 ‘성주의 앞산을 사드 배치지로 정했다’라는 것만 말했다. 성주에 온 국방부 장관도 국무총리도 말하지 않았다. 경찰청장은 외부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증거하지도 않고 ‘외부세력’ 운운하여, 외부의 전문시위꾼에게 속절없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공연히 성주 사람들 폄훼하고 무시했을 뿐이다. 국가의 행위로는 가당치 않다. 뒷골목의 왈패들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무례한 짓이다.

성주읍 어느 위치에서도 눈길을 남쪽으로 돌리면 성산포대의 구조물이 육안으로 보인다. 성주 사람들은 답답하고 분함을 피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향한 창을 모두 막아야 할 지경이다. 국가의 태도가 변함이 없다면 “사료 드셨어요”라는 새로운 인사말을 국민끼리 주고받아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성주에 사는 분들께 정말로 죄송하다. 정재형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