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여름여행 줄줄이 취소…모아둔 경비는 투쟁기금에 보태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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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30 07:23  |  수정 2016-07-30 07:46  |  발행일 2016-07-30 제3면
사드 발표 후 3주차…일상 풍경이 바뀐 성주

지난 13일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발표 후 성주군의 도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밤 군청 앞마당에서 열리는 사드배치 반대 촛불문화제에는 1천명 이상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사드 영향으로 각종 문화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가 하면, 참외농사를 지으려던 사람들의 귀농상담과 부동산 거래까지 뚝 끊겼다. 얼어붙은 지역 분위기를 대변하듯 식당가, 피서지 등도 썰렁하다.

촛불문화제 매일 1천명 넘게 참석
주민 쇼핑 자제…인근 상권 타격
술집·노래방엔 손님 없어 ‘썰렁’
공무원도 휴가 반납 ‘주민과 동행’


◆점심식사는 구내식당에서 조용히

29일 오전 11시40분 성주군청 지하 1층에 있는 구내식당. 5명의 조리사가 직원들 점심식사 준비에 분주하다. 잠시 후 배식시간이 되자 군청 직원들이 ‘사드배치 결사반대’ 스티커가 붙어 있는 출입문을 통해 밀려왔다. 줄을 선 간부공무원도 쉽게 눈에 띄었다. 성주군 총무과에 따르면 평소 점심시간에 60명 정도에 머물던 구내식당 이용자 수는 사드 배치 발표 후 평균 120명으로 두 배나 늘었다. 조리반장 김모씨(여)는 “부서별 회식을 줄이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직원이 많이 늘었다. 아무래도 사드 때문에 예전처럼 밖에서 회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휴가 줄줄이 취소

성주읍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곽모씨는 요즘 예약 취소 고객들의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국내외로 여행을 계획했던 고객들이 줄줄이 예약을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참외농가들은 농사를 마무리짓는 8~9월에 여행을 가기 위해 7월말까지 예약을 마친다. 곽씨가 운영하는 여행사의 경우 지난해 7월 한 달간 여행 예약자 수는 모두 500여명이었으나, 올해는 29일 현재까지 160여명에 불과하다. 성주지역 한 중학교 동기모임 회원 14명은 1인당 18만원씩의 수수료를 물고 여행 계획을 취소했다. 또 한 참외 작목반은 여행을 가기 위해 모았던 2천만원을 통째로 사드 반대 투쟁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곽씨는 “예약을 취소하는 고객들의 사유는 하나같이 사드 때문이다. 여행 경비로 사용하려던 돈을 사드 배치 반대 투쟁기금에 보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휴가 반납

성주군청 공무원 박모씨는 올여름에 가족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갈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 후 조용히 휴가를 반납했다. 성주군에 따르면 성주군청 공무원들은 재직 기간별로 정해진 휴가일수 내에서 최대 5일간(주말 포함 7일) 여름휴가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발표에 따라 성주군청 모든 공무원은 올해 휴가를 스스로 반납했다. 한 간부공무원은 “주민들이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휴가를 떠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다행히 모든 직원이 동참했다”고 말했다.

◆인근 도시까지 타격

인근 도시들도 작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성주는 대구 달성군, 칠곡 왜관, 김천 등과 지리적으로 붙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성주 주민은 대구 등 인근 도시에 가서 외식, 쇼핑 등을 하는 일이 잦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부농을 보유하고 있는 성주의 주민들이 다른 도시에 나가서 소비하는 금액은 무시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드 사태로 인해 성주 주민들이 타 지역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인근 도시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참외 농사로 연간 1억원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주민 신모씨(41·성주읍 성산리)는 당초 외제차를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사드 발표 후 적당한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는 “온 동네가 사드 때문에 난리인데 외제차로 바꾸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 모다아울렛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남모씨(45)는 “대구 고객들과 달리 성주 고객들은 한 번 오면 통 크게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드 배치 발표 후 성주 사람들이 줄면서 매출이 급감했다”고 하소연했다.

◆노래방 술집 개점휴업

성주지역 술집과 유흥업소도 직격탄을 맞았다. 회식과 술자리가 줄면서 손님이 뚝 끊겨 일찍 문을 닫는 가게가 늘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8시 성주읍의 한 노래방. 평소 같으면 저녁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몰려올 시간이지만 노래방 안은 조용하다. 노래방 업주와 종업원은 서로 스마트폰을 만지며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자 업주가 한숨을 내쉬며 취재진에게 장부를 보여줬다. 사드 배치 발표 전까지는 하루 매상이 빼곡히 적혀있던 장부가 13일 이후에는 하루에 한두 건 정도 적혀 있는 게 전부였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성주를 찾았던 26일에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근처 술집에도 손님이 없어 주방 직원들과 식당 주인이 의자에 앉아 TV토크쇼 프로그램을 시청 하고 있었다. 업주 이모씨는 “누가 술 마시고 노래 부르러 가겠나.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체육행사도 취소·연기

성주군의 각종 문화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성주군은 1억3천만원(군비 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9월9일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경북환타지아리랑’ 공연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드 배치 결정으로 주민여론이 악화돼 결국 취소시켰다. 또 ‘2016 찾아가는 별고을 작은 음악회’ ‘빛고을 아카데미’도 취소됐고, ‘한여름밤의 축제’ ‘한개민속마을 별빛속행복동행’은 무기한 연기됐다. 오는 9월 성주공설운동장 준공기념 군민화합 행사를 비롯해 군수배 체육대회, 각종 스포츠 및 예술행사, 세미나 등도 취소 또는 연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주=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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