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유튜브 클린턴, 그리고 이건희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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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3   |  발행일 2016-08-03 제31면   |  수정 2016-08-03
20160803

1998년 그해 여름 내가 처음 여행한 미국은 온통 한 가지 사안에 몰입했다. 바로 52세 현직 대통령 빌 클린턴과 22세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성(性) 스캔들이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호투와 박세리의 US오픈 동양인 첫 우승에도 미국인들은 흥미를 느꼈지만, 대통령의 스캔들은 차원이 달랐다. 몰입은 넘쳤다. 교포인 한 지인의 차를 탔는데, 함께 온 중학생 아들은 정오 뉴스에 나온 클린턴 수사 소식에 소리를 지르며 흥분했다. 지인이 민망해했다. 대통령은 그해 탄핵 위기에 몰렸다. 검사 출신 클린턴의 그 교묘하고도 유명한 ‘부적절한 관계’와 ‘(보수적 의미의) 성 관계를 하지는 않았다’는 발언도 그때 탄생했다. 98년 한국은 IMF 구제금융의 암울한 날을 보내던 시절이었지만, 미국은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다들 클린턴의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빌 클린턴은 이미 고전이 된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대통령에 올랐고, 이를 실천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머리는 은빛으로 물들었다. 지난달 29일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 마지막 날 그의 연설 동영상이다. 46년생으로 만 70세를 지나고 있는 그도 이제 예전의 그 매력적이고 단호한 목소리를 들려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45년 전인 1971년, 예일대 교정에서 ‘소녀 힐러리’를 만났다로 시작되는 그의 회고는 아내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적 성장, 그 이상을 바라는 남편의 마음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미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아내 힐러리, 딸 첼시와 포옹하며 그는 당당히 섰다.

미국인들은 르윈스키를 다 잊은 것일까. 그들의 빠른 망각은 한국인들만큼 빠른 것인가. 아니면 죽이고 싶었다던 남편을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참고 용인한 힐러리 때문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미국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면 성 스캔들쯤이야 사생활로 인정하는 관습인가.

‘이건희 성(性)매매 스캔들’이 터졌을 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일흔 넘은(만 74세다) 재벌총수가 이제 와서 성매매라니 언뜻 감정이 동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역 언론이 삼성과 무슨 광고로 도움을 받는 대단한 커넥션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저널리즘의 정도(正道)’를 짊어질 책무가 내 위치의 저널리스트에게 있지도 않다는 애써 무시감도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에는 삼성을 직업적으로 추적하는 기자와 정치인들이 있다.

며칠 전 누가 카톡으로 동영상을 보내왔다. 기왕 보내온 것, 열어보니 생각보다는 충격적이다. 클릭 수도 900만명을 넘었다. 나만 세상을 모르는가. 뉴스타파의 취재과정과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담당기자의 인터뷰도 그래서 이리저리 클릭해 섭렵했다. ‘이건희는 명백히 공인이고, 그래서 그의 사생활은 취재와 보도의 대상이 되며, 성매매는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불법으로 매수자나 공여자 심지어 장소 대여자도 형사 처벌을 받으며,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이 조직적으로 성매매 과정에 동원된 정황과 의심은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결론들이 나온다. 삼성 측이 그래서 내놓은 공식 반응, ‘회장의 사생활이라 회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는 아마 최고의 변호사들이 밤새 고민 끝에 내놓은 정답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이런저런 궁금증에다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성(性)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명백한 선을 긋고 대비해야 하는가. ‘인간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내 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부부간의 섹스 이외에는 인간성을 고양할 수 없으므로 도덕적일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을 뒤적이면서도 한편 하루에도 수십 번 여자를 볼 때마다 섹스를 생각했다는 미국 대통령의 고백, 심야에 오토바이를 타고 애인과 하룻밤을 즐긴 뒤 새벽에 관저로 돌아온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 국민은 대통령의 사생활이라고 한다는 것은 또 무언가. 글쎄, 이런저런 혼미함에도 하나 분명한 것은, 이것저것 다 가졌던 ‘이건희 옹(翁)’이 나는 같은 남자로서 ‘좀 안됐다’는 생각이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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