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엔 그저 눈감고 날새기만 기다려”

  • 손선우,김형엽 인턴,김미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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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4 07:25  |  수정 2016-08-04 07:48  |  발행일 2016-08-04 제8면
대구 비산동 쪽방촌 여름나기
20160804
폭염은 쪽방촌의 비좁은 골목 사이로 파고든다. 폭염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던 지난 1일 오후, 대구시 중구 포정동 쪽방촌의 한 노인이 힘없이 벽에 기대 앉아 있다. 그의 움푹 들어간 눈에는 아무 표정도 서리지 않았다.

눅눅하고 후텁지근한 좁은 방
선풍기 한대 더운바람 토해내
“추위보다 견디기 힘든게 더위”
홀몸노인 열사병·불면증 고통


“문을 열면 뜨거운 바람이 들어와. 닫는 게 나아.”

낮 최고기온이 34.3℃까지 오른 지난 1일 오후 3시쯤 대구 서구 비산동 인근 쪽방촌. 이곳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노춘국씨(69)에게 방문을 열지 않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쪽방촌 방 안의 공기는 눅눅하고 후텁지근했다. 그리고 지린내가 진하게 코를 찔렀다. 단열과 통풍이 잘되지 않는 낡은 집 구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씨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6.6㎡(2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구석에 놓인 작은 선풍기가 토해내는 더운 바람을 쐬며 여름을 보내고 있다.

매일 끼니를 때우는 것도 힘겹다. 당뇨를 앓고 있는 노씨는 맵고 짠 음식을 피하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빠듯한 살림 때문에 끼니를 라면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방 한 구석엔 라면 봉지와 당뇨약이 잡동사니 사이에 쌓여 있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대구시 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 근처 공영주차장 뒤편 벤치에는 어르신 8명이 앉아 있었다. 경상감영공원은 근처 쪽방촌에 사는 어르신들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다.

쪽방촌의 홀몸어르신들이 대개 그렇듯 이들도 고혈압과 기침, 가래를 달고 산다. 이들의 유일한 피서법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가며 장기를 두는 것이다.

쪽방촌 주민 박모씨(60)는 “여름철 더위가 한겨울 추위보다 견디기 힘들다. 열대야가 나타나는 날은 그저 눈을 감고 날이 새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겨울에는 전기 패널과 내복, 두꺼운 이불이 위안이 되지만 여름엔 도무지 답이 없다는 그는 5년 전부터 불면증을 앓고 있다.

폭염은 쪽방촌에 사는 홀몸어르신들에게 불편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여름철에는 열사병·열탈진·열경련·열실신 등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지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온열질환이 심해지면 의식을 잃게 된다. 탈진하게 되면 돌보는 이 없는 좁은 방에서 죽음을 맞이할 위험도 크다. 올해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구지역의 쪽방촌 홀몸어르신 2명이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찌는 더위에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쪽방촌에선 모두 고통이다.

강정우 대구쪽방상담소 사무국장은 “대구지역의 쪽방 거주자는 상담소에 등록된 수만 872명이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물품지원이나 모니터링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김형엽·김미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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