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성주 ‘사드’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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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5   |  발행일 2016-08-05 제38면   |  수정 2016-08-05
‘별고을’은 지금…간절한 촛불들이 밤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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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진 성주 월항면 대산리 들녘 너머로 별헤는 밤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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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음의 문턱길처럼 갓길 없는 성주대교는 강심장 테스트 장으로 활용해도 될 아찔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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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는 곳을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한 한수헌이 있는 한개마을의 한주정사는 수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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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 발표 후 촛불집회 신풍경을 만들어낸 별고을 성주는 뿌리깊은 유향본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사드배치 논란으로 7월의 대구·경북은 성주 참외가 열받는 열대야이며 별고을의 시름이 깊어진 밤이다. 졸지에 ‘한국의 텍사스’로 점지된 성주의 고뇌를 함께하고 이 땅에 사는 국민을 외부세력으로 규정해버리는 그 엇나간 이간질에 제동을 걸기 위해 급히 여행길을 조정했다. 성주로의 안전 입성을 위해 평소와 달리 파란색 계열 자전거를 타고 오른팔엔 구 신한국당 계열의 파랑 토시를 하는 등 복장에도 신경을 썼다.

평소와 달리 파란 자전거·복장 무장
절정의 배롱나무 가로길 육신사 거쳐
성주대교 이르러 총알 같은 車에 기겁
차량흐름 끊어진 틈타 필사의 페달질

사드배치 발표후 잠 못드는 주민들
도착한 마을엔 온통 사드반대 현수막
경부선 철길도 돌렸던 일화 주인공들
어둠 내리면 군청 마당서 촛불로 뜬눈


◆생명의 신비 가르쳐 주는 하빈 묘리

장맛비가 멎고 화창한 날씨를 되찾은 토요일, 자전거 탑승이 허용된 문양행 2호선 지하철 앞칸에 오르자 기관사실 뒤로 자전거 한 대가 보였다. 그 분이 포토바이킹에 동행을 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다. 문양역에 도착해서 육신사로 가기 위해 역사를 빠져 나오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는 자전거 초보라면서 스포츠라이딩에 자유로움을 더한 포토바이킹을 몰라보고 동반 라이딩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를 빠져 나와 길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웃으면서 하나가 되어 달리기로 의기투합했다.

문양역에서 육신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30분 정도 걸렸다. 육신사 충절문 좌우로 줄지어 군락을 이뤄 핀 배롱나무는 무더위를 식혀주고도 남을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는 벗을 그리워하다’로 알려져 있고, 충절과 청렴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 주로 사찰이나 서원, 서당, 선비들의 집 뜰에서 때를 잘 만나야 볼 수 있다.

지금 육신사 진입로의 배롱나무는 절경이다. 순천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생명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한 충정공 박팽년 선생의 둘째 며느리가 관비가 되어 대구로 왔는데 생명을 잉태한 상태였다. 남아는 죽이고, 여아는 관비로 삼는 원칙에 입각해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기도 전에 바로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은 여종의 아들로 바꿔치기 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는 묘골의 순천박씨 집안 내력은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는 일화로 훈훈하다. 여종의 아들로 생명을 보전하고 자란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후일 임금인 성종에게 자초지종을 고하고 사면을 받아 뿌리를 내린 곳이 묘리였다. 삼성그룹의 안살림을 한 박두율 여사도 이 집안 출신인데, 삼성그룹의 생명사랑(3남5녀)과 유별난 여성사랑문화에는 족보가 있나 보다.

육신사는 흥선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4~75년 ‘충효위인유적정화사업’에 의해 육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현판보다 커 보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적이 육신사에 자리 잡은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육신사 주변의 삼가헌, 도곡재, 낙빈서원은 순천박씨 가문이 키운 또다른 역사이며 문화공간이다. 육신사에서 성주 선남의 도산서당을 이어주는 길목에 삼가헌이 있어, 다음 행선지는 달성삼가헌을 경유하기로 했다. 육신사 마을을 빠져 나오면 달성녹색길 표지판이 선 숲속 샛길이 보이는데, 그 길을 업힐해 내려가서 삼가헌에 잠시 들렀다. 지금도 사람이 사는 집이라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가는 게 센스 있는 여행자.

◆주행 안전성 보장 안 되는 성주대교

삼가헌에서 달성군이 여행지로 내놓은 하목정과 천주교 하산공소까지 가려면 자전거와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샛길을 따라 하빈숯굴을 찍고 하빈공단을 경유, 하산길을 통해 전진하면 성주대교 목턱에 이른다. 인근 편의점에서 동행자와 음료수 한 잔을 나누며 작별을 고했다.(자전거길이 있는 곳에서 우리는 만나리)

강을 건너기 위해 성주대교 입구에 이르니 차량 운행소리가 총알소리 같이 들렸다. 건각의 포토바이커 다리를 후덜덜 떨게 했다. 지도상에서는 달성삼가헌 인근 금남골재장에서 낙동강을 건너는 길이 보였는데, 하빈면사무소 당직자에게 문의를 하니 성주대교를 건너지 않고 낙동강을 건널 수는 없다고 했다. (낙동강자전거길 구미 포토바이킹 때 확인을 해 볼 계획이다.)

“이 긴 다리를 어떻게 건너나!” 갓길도 없이 오직 차량통행을 위해 건설된 성주대교를 자전거 타고 건널 엄두가 나질 않았다. 차량 흐름이 끊어진 틈을 타 앞만 보고 필사의 속도로 페달을 밟았다. 귓전에는 총알소리가 끊이지 않고 지나갔다. 1㎞ 넘는 고통의 거리를 넘어서니 평안감과 함께 묘한 정복감 같은 게 찾아들었다.

다시 한적해진 도로를 따라가니 스크럼을 짜고 진을 친 사드반대 현수막들이 낯선 풍경으로 다가왔다. 마을 어귀는 온통 사드반대 현수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성주군민 똘똘뭉쳐 사드배치 막아내자’(용신1리 주민일동), ‘사드배치 절대 결사반대’(선남면 농업경영인), ‘행정절차도 무시한 사드배치 철회하라’(선남초등 동문)

‘도산서당’은 경북도 지정 기념물이라 안내 표지판에 등장해 진행 방향을 도와주었다. 도성교차로~명인정보고~박구효자정려비~선남초등학교~성주 천년초 아로니아 농원을 차례로 지나며 “이 길이 맞나’라는 의심이 들 즈음 문방길 표지판을 보고 안심을 했다. 11㎞의 라이딩 끝에 만난 도산서당은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경북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지였다. 그 이유는 도산서당 설명문에 잘 새겨져 있다. 이 서당은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사민교육(四民敎育)을 실시하여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시켜 국가 및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이 커 경북도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었다. 도산서당은 그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기념물로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지만,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사람의 가슴에 크게 새겨진 교육성소라 애착이 가는 곳이다. 도산서당 옛터에서 새로 땅을 사서 들어온 타성바지들이 불법주차를 막기 위해 초록색 쇠울타리를 친 탓에 접근이 불가능해진 낭패를 당한 것은 애석한 일이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무궁화 한 잎을 보며 애국의 길을 재촉했다.

◆전통의 미명으로 진행된 현대화의 덫

마을 길에서 운 좋게 만난 어르신께 “한개마을로 가는 길이 있느냐”고 여쭈니 “송전탑 앞에서 문방공단 쪽으로 가면 된다”고 가르쳐줬다. 문방리(문포동+대방동)에서 한개마을까지는 4.3㎞. 문방공단길이 먼 거리에 있었을 두 마을의 간극을 좁혀 주었다. 토요일 오후 문방공단길 교통상황은 한적해서 한개마을로 인도하는 선월로에 이르기까지 자전거여행의 로망인 ‘차 없는 국도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성주는 당초 왜관을 거치지 않고 한개마을을 지나가도록 계획했던 경부선 설계도면을 이 마을 양반들이 앞장서 반대해 노선을 바꿔놓은 일화로 유명하다. 그랬던 성주 한개마을은 사드배치와 관련해 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개마을은 배산임수라는 전통마을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점, 마을 입구와 외곽으로 평민 가옥이 배치되고, 마을 안쪽과 뒷산 쪽으로 올라가면서 양반 가옥들이 들어앉는 계급형 배치도로 우리 전통마을의 원칙을 간직하고 있어 민속마을로 지정되었다. 특히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을 황토로 쌓은 돌담길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서 인물을 벼슬 순으로 매겨놓은 점은 역사적 인물보다 건물주를 떠받드는 역사학 전반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즉리설(心卽理說)을 정립해 한주학파를 이루고 조선 후기 3대 성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한주 이진상 선생(1818~86)이 응와 이원조 판서공에 비해 평가절하되어 있는 것은 가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념사업의 한계로 보인다. 그것은 이상백 선생보다 이상화 시인을 더 떠받드는 몽매와 닿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의 한개마을은 정비공사로 어수선했다.

◆민주주의를 밝히는 성주의 밤

한개마을에서 월항면소재지를 경유해서 사드반대 집회가 열리는 성주군청까지는 7㎞거리로 30여분이 걸렸다. 왜관쪽으로 해넘이 하는 노을이 지면 별고을 성주의 밤이 올 터. 사드배치 반대를 넘어 사드 자체를 반대하는 성주 촛불집회의 밤, 군 청사 마당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주 촛불집회는 ‘행정절차’와 ‘주민동의’를 외치는 민주주의를 밝히는 밤이었다.

비록 밤은 깊었으나 성주군청 옆에 있는 심산기념관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어 서성거렸다. 불현듯 2011년 3월 심산문화센터 개관식에 참석해 성주군민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에서 제공하는 점심도시락을 얻어먹고 온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서초 땅에 심산문화센터를 지었으니 기념사업이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 한 편에, 50억원 쓸 배포가 없어 심산 선생을 강남에 팔아먹었다고 생각하니 울분마저 치밀었다.

심산 선생은 1999년 전국 42개 대학교수 130명이 뽑은 ‘20세기 한국 정신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 가운데 김구, 안창호,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장준하, 함석헌, 최현배, 이광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로 선정되었고, ‘현대 유학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의 한 끝자락을 보여준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구 선생을 쩔쩔매게 했던 심산 선생의 기념사업을 성주가 주도적으로 이끌 날을 기대한다.

근현대 최고의 유학자를 낳은 성주에서 왜 혁신유림들은 당대 유학의 한계를 깨닫고 퇴계문맥에서 가지를 쳐 나온 동학 탄압에 대한 역사적 사죄를 하지 않을까. 퇴계좌파 한주도 심산도 하지 못한 유림의 역사적 과업을 이끌어 낼 온유돈후한 퇴계 후학 유림의 탄생을 기대하며 쓰레기더미로 얼룩진 갓길이 있는 대구방향 성주대교를 갈 때보단 좀 덜 불안해하며 넘었다. 그 밤 지하철 2호선 문양역은 등대 같았고, 성주대교 라이딩은 월항농협 옆 왜관식당 청국장 맛이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문양역∼육신사∼삼가헌∼하빈숯굴(하산4길)∼하빈공단 하산길∼성주대교∼문방리 도산서당∼문방공단길∼한개마을 한주종택∼월항면 소재지∼성주군청 촛불집회장~심산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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