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6] 청송 국가지질공원 Geo-tourism <17> 병암 화강암 단애와 나실 마그마 혼합대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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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09   |  발행일 2016-08-09 제13면   |  수정 2021-06-17 18:15
범이 떨어져 죽었다는 140m 높이 화강암 절벽…여름에도 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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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 위치한 병암 화강암 단애 전경. 매봉산의 남쪽, 노부천이 용전천에 합류되기 직전 지그재그로 곡류하는 천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최고 140m 높이의 수직 절벽이 넓고 곧게 펼쳐져 있다.

 

태아와 같은 심성암.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굳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키는 얼마나 큰지, 체중은 어느 정도인지, 땅 속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길고 긴 지질시대를 거쳐 땅 속의 심성암이 지상에 서게 되면 조금은 알 수 있다. 땅 속에서의 삶과 지상에서의 삶까지. 청송의 부남면, 그 중심부에 커다란 심성암이 뿌리 박혀 있다. 그것은 약 6천500만 년 전 그가 겪은 지하의 삶과 이후 지상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 부남 암주

부남면의 중심부에 매봉산이 솟아있고 노부천이 용전천과 합류해 북서쪽으로 향한다. 그 일대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이 9.4㎞, 북동~남서 방향으로 너비 4.8㎞ 크기의 심성암체가 드러나 있다. 학계에서는 평면상의 노출 면적이 100㎢ 이상 되는 거대한 심성암체를 저반, 그보다 작은 것을 암주(岩株)라고 한다. 하여 이곳의 심성암체를 ‘부남 암주’라 부른다.


부남면 노부천 일대 거대한 심성암체
땅속 마그마가 치솟아 굳어 만들어져

사발모양 분지 나실마을 둥근 능선엔
마그마 혼합돼 생성 화강섬록암 분포

노부·용전천 합류前 지점 천변에 병암
절리는 떨어지던 범이 할퀸 자국인 듯



신생대 제3기 즈음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흐르던 화강암질의 마그마가 백악기 퇴적암의 약한 부분을 뚫고 관입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화강암질의 마그마가 고화되기도 전에 그 속으로 섬록암질의 마그마가 관입했다. 같은 액체 상태였지만 서로의 성격은 달랐다. 쫀쫀하고 끈끈한 화강암질 마그마 속에서 보다 유했던 섬록암질 마그마는 섞이지 못한 채 여러 갈래로 분기되고 파열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화강섬록암’이다.

화강섬록암에는 멍처럼 검은 응어리가 생성되어 있다. 마치 섬록암질 마그마의 외상처럼 보이는 이것을 학계 용어로는 고철질의 미립상 내포체라 한다. 동시에 서로 다른 두 마그마의 경계부에는 피부와 피부가 닿아 서로의 열을 나누어 가지듯 점진적인 평형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는 화해처럼 응어리가 없다. 관입과 혼합에 의해 화강섬록암이 만들어진 이후 또다시 화강암질 마그마가 관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세립질 화강암이다.

부남 암주는 여러 차례의 마그마 관입과 그에 따른 혼합 등 복잡한 사건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래서 하나의 암체 내에 섬록암, 화강섬록암, 조립질 화강암, 세립질 화강암 등 암석의 조성과 조직, 빛깔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조립질 화강암은 암주 전체에서 주로 평지에 분포해 있다. 섬록암이나 화강섬록암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대전3리인 ‘나실 마을’이고, 세립질 화강암을 볼 수 있는 곳은 ‘구천리 병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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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나실마을 전경. 마을은 사발 모양처럼 오목한 분지 지형이다. 사발의 안쪽에 해당하는 분지에는 섬록암, 사발의 입술격인 둥근 능선에는 마그마가 혼합되어 생성된 화강섬록암이 분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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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실마을에서 관찰되는 화강섬록암. 멍처럼 생긴 검은 응어리는 ‘고철질 미립상 내포체’라고 한다.
 

◆ 나실마을의 마그마 혼합대 

부남면의 북쪽 용전천의 서쪽에 나실마을이 자리한다. 용전천 변에는 다소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주로 심성암류가 풍화되어 쌓인 모래 충적층이라 한다. 마을 초입의 천변에 군락을 이룬 작은 시무나무 숲을 지나면 마을 입구가 병목처럼 좁게 그늘져 있다. 좁장한 길 옆으로는 좁장한 물줄기가 흐르고, 작은 물레방아가 순박하게 장식되어 있다. 물줄기 너머 숲에는 제법 너른 터가 있는데 웅장한 당산나무가 세상의 모든 그늘을 삼킨 기세로 서있다. 짧은 입구를 지나면 긴 터널을 지난 듯 갑자기 눈부시다.

나실마을은 최고 540m의 낮은 능선으로 둘러싸인 사발처럼 오목한 분지 지형이다. 사발의 안쪽에 해당하는 분지에는 섬록암, 사발의 입술격인 둥근 능선에는 마그마가 혼합되어 생성된 화강섬록암이 분포해 있다. 녹색 빛이 슬쩍 감도는 회색 혹은 암회색의 얼룩덜룩한 암석은 섬록암이다. 멍든 모양새로 고철질 미립상 내포체를 품고 있는 암석은 화강섬록암이다. 내포체의 크기는 보통 5~20㎝인데, 수 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암석들은 매우 점이적으로 분포해 있어 나실마을에서 이들을 찾아내는 일은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하는 보물찾기다.

◆ 병암 화강암 단애

아주 쉽게,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은 세립질 화강암이다. 부남 암주를 구성하는 세립질 화강암은 다른 암석과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며 오직 한곳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매봉산의 남쪽, 노부천이 용전천에 합류되기 직전 지그재그로 곡류하는 천변에 최고 140m 높이의 수직 절벽이 우뚝 서있다. 병암(屛岩)이다. 단단한 것이 넓고 곧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병암을 이루는 암석이 바로 세립질의 화강암이다.

벼랑은 높아 그늘이 짙고,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름에도 한기를 품고 있다. 병암은 오래전 범이 떨어져 죽은 벼랑이라 하여 ‘범덤’ 또는 ‘범디미’라 불려왔고 천변의 숲은 ‘범덤숲’이라 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이 범덤 모퉁이에 굴을 파고 피란했다 하여 여헌대(旅軒臺)라 부르기도 한다. 한때는 초등학교의 소풍 장소로 애용되기도 했고 어린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서로의 담력을 겨루기도 했던 곳이라 한다. 숲은 대부분 개간되어 밭과 과수원이 되었지만 한 조각의 범덤숲은 그 이름과 함께 여전히 남아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병암 외에도 노부천의 곡류에 따라 여러 방향의 단애가 형성되어 있다. 병암의 서쪽에는 섬록암질의 단애가, 동쪽에는 화강섬록암질의 단애가 있다. 이들은 모두 부남 암주의 조각들이다. 지하의 커다란 심성암체가 이처럼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오래고 오랜 시간이 있었다. 두꺼운 지표 물질들이 끊임없는 침식과 삭박에 깎여 나가면서 심성암체는 조금씩 지표와 가까워졌다. 그렇게 마침내 지상에 노출된 것이 암주다.

부남 암주를 구성하고 있는 화강섬록암이나 화강암 등과 같은 암석은 그 조성과 조직을 통해 지하에서의 삶을 설명한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병암이 보여주는 것은 물과 바람과 햇빛과 심지어 식물의 뿌리까지 합세해 만든 치열한 지상에서의 삶이다. 수만 개의 생채기를 지닌 채 묵묵히 우뚝 서 있는 크고 단단한 병암. 저 사선의 긴 절리는 떨어지던 범의 발톱이 할퀸 것일지도 모른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공동 기획:청송군

▨ 참고= △청송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청송문화원 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송의 향기 △김종선 외, 남한의 백악기-제3기초 화강암과 마그마 혼합:시공간적 변화와 지구조적 의미, 암석학회지, 2012.


■부남면 구천리 병암서원…이이·김장생 위패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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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와 김장생을 배향하고 있는 병암서원.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 병암의 동쪽에는 병암서원(屛岩書院)이 자리한다. 서인과 노론의 종장으로 꼽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김장생(金長生)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서원이다. 퇴계학파가 주류였던 청송은 서인의 정치이념을 계승해 온 자생 노론도 일정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숙종 28년인 1702년에 지역 유림에서 건립하여 사액을 받은 병암서원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2년에 복원되었다. 이후 몇 번의 이전을 거쳐 1993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본채와 동재, 서재 등 3동이 아담하게 구성되어 있다. 봄이면 도화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 병암서원에서 동쪽으로 3㎞ 정도 거리에 있는 화장저수지도 장쾌한 볼거리다.

 

☞ 여행정보
청송읍에서 31번 국도 포항방향으로 가다 부남면사무소에서 68번 지방도를 타고 1.7㎞ 정도 남하하면 대전3리 나실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68번 지방도로 조금 더 남하해 구천리에서 얼음골 가는 길로 들어서면 곧 병암을 만난다. 

매봉산 아래 홍원리에 있는 세 그루 개오동나무도 볼 만하고, 나실마을 초입의 시무나무 숲도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군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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