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인간이 지구의 해충이 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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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5 08:19  |  수정 2016-08-15 08:19  |  발행일 2016-08-15 제23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인간이 지구의 해충이 되지 않는 법

내가 지난 100년의 영국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자 왕은 무척 놀랐다. 영국의 역사는 온통 음모와 반역, 암살과 학살, 혁명과 추방으로 얼룩졌다며 비난했다. 탐욕과 파당, 위선과 배신, 잔혹함, 분노, 광기, 증오, 질시, 욕정, 간계, 야망이 낳은 최악의 산물이라고 했다.

마지막 회견에서 왕은 내가 말한 것을 꼼꼼하게 요약했고, 자신의 질문과 나의 답변을 일일이 비교했다. 그러더니 나를 친히 양 손에 올려놓고 가볍게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왕이 했던 말과 그 말투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친구 그릴드릭이여, 자네는 자네 조국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늘어놓았네. 자네는 무지와 나태, 사악함이야말로 의원이 되는데 필요한 자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네. 법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법을 왜곡하고 남용하고 회피하는 일을 능사로 여기고 있으니 말일세. 만들 당시에는 아주 좋았을 제도들이 자네의 나라에서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부패되어 완전히 희미해지거나 제멋대로 변모되었지 않은가.

자네가 말한 것을 종합해 볼 때, 어떤 자리든 완전한 인품이 요구되지 않는 것 같네. 덕행을 따져 보통 사람이 귀족이 되는 일, 경건하고 학식이 높은 사제가 승진을 하고, 모범적이고 용감한 군인이 진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사회일세. 판사들은 일관된 태도, 상원의원들은 애국심, 자문관들은 지혜가 높다고 대우 받는 일도 더더욱 없어 보이네.

자네는 생애의 대부분을 여행을 다니며 보냈다고 했지. 어쩌면 그 덕분에 조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당했을지 모를 많은 불합리한 일들을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네. 자네가 말해준 사실과 내가 자네에게 물어 얻어낸 답으로 종합해 보건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네. 나는 자네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인종이 조물주가 지금까지 지구상에 만들어낸 가장 징그럽고 추악한 해충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겠네.”

오직 진실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를 차마 감출 수 없었다. 분노를 드러내 보였지만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나의 고귀한 조국이 그렇게 치욕적으로 취급당하는데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왕이 지나치게 세세하게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어 놓아야 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가능한 한 왕이 하는 질문을 재주껏 피했고, 피치 못할 경우 가능한 한 유리하게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다.(-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중)

‘오직 진실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릴드릭(걸리버)은 거인국의 왕에게 조국의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되돌아온 답은 ‘대부분의 인종이 조물주가 지금까지 지구상에 만들어낸 가장 징그럽고 추악한 해충 아닌가’란 치욕입니다.

동화로 우리에겐 알려졌지만 1726년 아일랜드에서 신랄한 정치풍자극으로 출간되고 최근에 완역된 걸리버여행기가 마치 2016년 오늘의 뉴스를 보듯 생생합니다. 타임 워프한 약 3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는 스위프트의 경이로운 시각을 음미하고, 인간이 지구의 ‘해충’이 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것, 이 폭염을 견딜 한 방법으로 권해드립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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