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대구는 TK도 사과도 섬유도 아닌 詩의 도시”

  • 최미애,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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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8 08:14  |  수정 2016-08-18 08:15  |  발행일 2016-08-18 제29면
■ 이어령 이사장 대구 강연
“6·25때 잠시 대신동에 살며 책 출간
가장 다정다감하고 꿈많았던 시절
아름다운 신천·히말라야시더…
막상 오래 산 분들은 모르고 살아
시민 한명한명이 시 한구절씩 적어
가로수 밑에 꽂아두면 소문이 날것”
20160818
지난 1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DAC 인문학 극장’이 처음으로 열린 가운데 이어령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이 ‘시의 도시, 대구를 꿈꾸다’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6·25때 잠시 대신동에 살며 책 출간
가장 다정다감하고 꿈많았던 시절
아름다운 신천·히말라야시더…
막상 오래 산 분들은 모르고 살아
시민 한명한명이 시 한구절씩 적어
가로수 밑에 꽂아두면 소문이 날것”

“모든 시에는 고향이 있습니다. 대구가 시의 도시라면 모든 사람의 고향이 될 것입니다.”

이어령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에게 대구는 시의 도시였다. 이 이사장은 지난 16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 ‘DAC 인문학 극장’의 첫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시의 도시, 대구를 꿈꾸다’를 주제로 2시간 가까이 강연을 펼쳤다.

이 이사장은 세 가지 기쁨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 이사장은 “강의를 하기로 하면서 건강하지 않을 때는 취소하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둘째 기쁨으로 꼽은 것은 20대, 처음 문학을 하게 됐을 때였다.

그는 대학 시절 대구·경북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이사장은 “대학 졸업반 때 문경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했다. 이때 학교에 책을 공급하는 분이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해 ‘국문학정해’라는 두꺼운 책을 냈다. 6·25전쟁 때여서 대구에서 책을 냈고 대신동에서 한두 달 살면서 교정을 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거울을 보면 젊은 시절 여드름 자국이 있다. 그 여드름 자국의 이야기 중 하나가 대구다. 가장 다정다감하고 꿈이 많았던 시절이다. 책도 처음 냈고 ‘예술집단’이라는 동인지에 글도 썼고 소설 ‘마호가니의 계절’도 발표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강의에 모인 청중이 5천원의 입장료를 자신을 보기 위해 투자했다는 것을 셋째 기쁨으로 꼽았다.

이 이사장은 대구의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그림이나 시에서 자주 나오는 히말라야시더가 가로수로 이렇게 우거진 곳은 우리나라에서 대구밖에 없다. 오늘도 오면서 신천을 지나왔는데 모든 것이 직선화된 도시에 구부러진 곡선으로 흐르는 강이 있고 사람들이 그곳에 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이렇게 대구에도 자랑할 것,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은데 막상 대구에서 오래 산 분들은 그걸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 묻혀있는 것을 발굴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그에게 대구는 정치에서의 ‘TK’, 사과, 섬유도 아닌 시의 도시였다. 이 이사장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보면 가르마, 온몸, 입술, 어깨 등 신체가 언급된다. 대구는 여러분의 신체고, 이렇듯 대구는 시의 도시가 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이사장은 시의 도시 대구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일본에서 객원교수로 있을 때 동네 주민들이 하이쿠(일본의 짧은 정형시)를 하나씩 써서 나무 밑에 꽂아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구도 시민 한 명씩 짧은 시 한 구절을 적어 나무에 꽂아보세요. ‘대구의 가로수 밑에는 시가 하나씩 적혀 있는데 한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대구 시민들이 한 거’라고 소문이 날 겁니다. 어려운 것이지만 이상화 시인과 같은 마음만 가져도 가능합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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