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 수립 이전…북한도 태극기와 무궁화 사용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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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9   |  발행일 2016-08-19 제34면   |  수정 2016-08-19
■ 광복 71주년, 6박7일의 만주항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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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사(驛舍) 플랫폼 내 삼각형블록은 안중근 의사가 총을 쏜 지점이고 마름모블록은 이토가 쓰러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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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닝안시 발해진 흥륭사의 발해시대 6m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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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15일 개관한 침화일군 제731부대죄증진열관 신관. 옛 진열관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전시내용도 다양하다. 중국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려 하고 있다.

광복 71주년을 맞아 2016만주항일기행단은 지난달 말 중국 헤이룽장성, 지린성 등 만주지역에 흩어진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현장을 찾았다.

◆하얼빈역 안중근의사기념관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하얼빈 역사(驛舍)는 한창 개축 중이다. 하얼빈시와 철로국이 우리 돈으로 1조원 이상을 들여 2018년까지 공사를 끝낸다고 한다. 이 하얼빈 역사 전면 왼쪽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처음 하얼빈시 중앙대가 조선민족예술관에 위치했으나 2014년 1월에 하얼빈 역사로 옮겨 문을 열었다. 개관 후 30여만명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공사관계로 1~2개월 내 기념관은 다시 원위치로 옮길 예정이다. 역사가 완공되면 지금보다 두 배 규모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확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으나 한·중 관계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곳은 원래 역 VIP실이었으나 2층으로 개조해 안 의사의 유품과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내부 플랫폼쪽으로 설치된 대형 통유리를 통해 거사장소를 볼 수 있다. 플랫폼 안 삼각형블록이 안 의사가 총을 쏜 지점이고 마름모블록이 이토가 쓰러진 장소다.

하얼빈∼무단장서 용정∼연길까지
한민족 항일 독립운동 발자취 추적

안중근의사 의거 현장인 하얼빈驛舍
2018년 마무리 목표로 한창 개축중
자오린공원 청초당 유묵비 보며 만감
순국장소·유해도 못 찾는 현실이라니…|

작년 8월 신관 문을 연 ‘731진열관’
세계문화유산 등재 위한 노력 엿보여
‘주객전도’된 김좌진기념관 전시실
발해 성터 인근 6m 현무암 석등 눈길


◆자오린공원 청초당과 하얼빈 화원소학교

하얼빈시내의 자오린공원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저격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동지들과 모의한 장소로 알려진다. 이곳에 청초당(靑草塘)이란 유묵비가 있다. 청초당은 안 의사가 서거 이틀 전 뤼순감옥에서 쓴 것으로, 그는 이곳에 묻혔다 조국광복이 되면 유해가 한반도로 송환되길 바랐다. 안 의사는 거사 후 러시아헌병에 붙잡혀 일본영사관(현 화원소학교)에 11월1일까지 7일간 투옥돼 조사를 받은 뒤 뤼순으로 압송됐다. 이후 안 의사는 랴오닝성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고 우리는 그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지난 광복절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감옥에서 옥사했다는 이야기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다.

◆침화일군 제731부대죄증진열관

하얼빈시 남쪽 핑팡(平房)구에는 일명 ‘이시이시로 부대’ 또는 ‘마루타부대’라고 알려진 제731부대 현장이 남아있다. 일제는 이곳에서 생물·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인간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이곳에서 희생된 중국인, 러시아인, 조선인, 몽골인 등으로 현재까지 1천549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한다. 여기엔 조선인도 7명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3천명이 훨씬 넘고 조선인도 300명 이상 희생된 것으로 본다. 이곳에 731진열관이 건립됐다. 2006년 중국은 이곳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다. 진열관 관장은 2009년 부임한 조선족동포 3세인 김성민(金成民)씨다. 그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79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에 비하면 늦어도 한창 늦었다.

옛 진열관은 731부대 본청 건물로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돼 있다. 15개의 전시실이 있었는데 규모가 작았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731기념관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지난해 8월15일에 건립된 신관은 규모부터 웅장하다. 외벽은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각이 진 다크톤 대리석 건물 주변에 물을 가둬 흐르게 함으로써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진열관 내부도 훨씬 크고 전시내용도 다양해졌다. 일본이 패전 후 파괴했던 인체실험동을 새로 발굴하면서 땅속에서 나온 유품과 실험기구 등도 새로 전시하는 한편 보일러실과 가스실도 공개하고 있다.

◆무단장시 빈강공원 팔녀투강비

백두산에서 발원한 쑹화강의 가장 큰 지류인 무단장(牧丹江). 무단장시는 만주어로 ‘구불구불 흐르는 강’이란 뜻의 ‘무단우라’에서 나왔다. 강 이름이 도시의 이름이 됐으며 경상도 출신 조선족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 이 무단장의 지류인 에스훈강 옆에 빈강공원이 있다.

이 공원 초입에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8명의 여성이 한 덩어리로 돼 있는 이 동상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동북항일연군 소속 여성대원들이다. 이들은 1938년 일본군과 싸우다 탄약이 떨어지자 포로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무단장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써 저항했다. 이 중에는 조선인 여전사(안순복·이봉선)가 두 명 포함돼 있다.

◆하이린시 김좌진장군기념관 및 산쓰진 김좌진 장군 유허지

헤이룽장성 하이린(海林)시에는 한·중우의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의 기념관이 있는데, 2005년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공원 부지를 제공함으로써 하이린시가 이곳에 기념관을 건립하도록 했다. 기념관 내부 전시실에는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지사들의 발자취와 그 일대기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각종 사료와 사진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흠이라면 김을동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기념관 설립에 힘을 보탠 이들의 사진과 이름 등이 전시관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 청산리전투를 이끈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을 통솔한 서일 총재 같은 지도자의 사료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전 서훈 전 국회의원이 서일 총재의 뜻을 기리는 사업을 하기 위해 팔방으로 뛰어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좌진 장군은 하이린시 산쓰(山市)진 도남촌에서 순국했다. 장군은 1928년 9월 이곳으로 와 이듬해 7월 한족(韓族)총연합회를 조직한 뒤 주석에 취임, 항일세력을 통합하는 노력을 하던 중 그가 경영하던 금성정미소에서 30년 1월 암살됐다. 산쓰진은 하이린시에서 서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다. 길이 험한 비포장도로라 애를 먹었다. 장군의 생거지는 99년에 처음 복원됐으며 매년 정비를 해 깨끗하게 보존돼 있다. 총 4동의 초가 중간 광장에 장군의 흉상이 있으며 초가는 각각 옛 주거지, 팔로회의실, 금성정미소, 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행단은 장군의 흉상 앞에서 향을 사르고 참배를 했다.

◆발해 상경용천부 유적 및 흥륭사 석등

헤이룽장성 닝안시 둥징청(東京城)은 발해의 옛 수도인 상경용천부가 있는 곳이다. 발해는 794년 이곳에 도읍을 옮겼다. 이후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132년간 도성의 역할을 했다.

11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변한 게 별로 없다. 규모가 작고 초라한 발해박물관도 그대로이고, 발해가 ‘당나라 시기 말갈족이 세운 지방민족정권의 하나’라는 안내판 내용도 바뀌지 않았다. 옛 궁궐터에 기와나 도자기 파편도 예나 지금이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황혼 무렵에 이곳을 찾아서인지 스산하고 허허롭다.

이곳에선 대조영이란 이름도 찾아볼 수 없으며 더구나 ‘신라가 남국이라면 발해는 북국이었다’란 언급은 더더욱 없다.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대제국 발해는 10세기 백두산폭발로 멸망이 앞당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성벽 사이 사이 현무암과 화산석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황성옛터란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발해 옛 성터에서 약 4㎞지점 발해진이란 마을엔 청나라 때 세운 흥륭사란 절이 있다. 이곳 대웅전 앞에서 발해시대 석등과 석불을 볼 수 있다. 석등은 높이가 무려 6m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모두 놀란다. 대웅전 뒤에는 1천년 넘은 비술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1천여년을 버틴 이 나무는 민족의 역사를 알고 있을까.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취재후기:만주기행단은 상경용천부를 거쳐 연변조선족자치주 도문에 들렀다. 하지만 도문~용정간 두만강변 조·중국경도로는 이유없이 출입을 봉쇄했다. 도문 교두국문 위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것도 금지했다. 중국인 가이드는 “최근 한반도 사드배치논란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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