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설악산 육담·비룡·토왕성 폭포와 권금성 트레킹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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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9   |  발행일 2016-08-19 제39면   |  수정 2016-08-19
‘봉인해제’ 천하의 절경이 다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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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 폭포의 신비하고 몽환적인 비경. 실낱같은 폭포수가 가뭄으로 희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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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골의 절경인 육담폭포 데크길과 출렁다리 육담교를 걷는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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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담폭포의 수려한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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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폭포의 신비와 환상적인 경치 그리고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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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금성에서 바라본 설악의 등줄기, 봉(峰)과 영(嶺)과 능선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설악은 눈의 산이다.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다음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불렀다. 우리가 타고 가는 신형버스의 냉방이 피부에 소름을 돋게 해서 그런지, 이 성하의 아침에 눈에 관한 시 하나가 떠오른다.

“이게 누구 숲인지 나는 알겠다.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사랑스럽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프로스트 ‘눈 내리는 저녁 숲에서’)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 눈 내리는 저녁 숲에서 무더운 여름 아침까지, 가야 할 먼 길이 설악산에서 성하의 잎맥처럼 푸른 그리움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 때문일까.

비룡교 지나 6개 담·폭포의 육담폭포
출렁다리 건너 바윗길 돌자 비룡폭포
전망대서 보는 320m 3단 토왕성폭포
국립공원 지정 후 45년 만에 秘境 공개

왔던 길 되돌아 나와 다시 비룡교 초입
케이블카로 오른 해발860m 石城 권금성
사방 수많은 봉우리·능선 장관에 소름

◆육담폭포 비룡폭포 탐방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통제된 지 45년 만인 2015년 12월5일 개방된 토왕성 폭포 트레킹을 위한 초입에서 나는 권금성, 노적봉, 울산바위와 무수한 침봉들이 피너클을 이루고 있는 황홀한 광경에 압도돼 시선을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권금성 케이블카 가기 전 좌측으로 비룡교를 지나 숲길, 들머리를 걷는다. 짙은 녹음 우거진 숲길은 잡념의 먼지를 털어준다. 높다란 나무 군락 녹음 사이로 떨어지는 마마 자국 같은 빛의 반점과 잎의 그림자가 살랑살랑 발자국 따라 일렁인다. 휘어지고 돌면서 열린 산길은 편안하고 유순하다. 조금만 힘들어도 데크를 깔아놓아 걷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산과 숲에 스며든 지 불과 몇 십 분, 육담폭포의 비경이 무대가 된다.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와 내려가는 물에 패어 만들어진 담이 도자기 굽는 가마처럼 꿈의 모습을 빚는다. 여섯 개의 담과 폭포는 아득한 절경이다.

출렁다리 육담교를 건넌다. 동남아계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 남녀 여럿이 다리를 흔들며 장난을 치고 있다. 이 구간은 육담폭포를 거의 조망할 수 있어, 탐방객의 찬사가 장외 홈런을 친다. “아이고 마, 이기 대체 머시고, 경치가 엄청시럽네.” 영천에서 왔다는 할머니 한 분이 탄성을 지른다. 가슴에 영천축협이라는 마크가 달려 있다. 할머니의 경상도 사투리가 괜히 콧등을 시큰거리게 한다. 바윗길을 한 굽이 다시 돌아가자 비룡폭포가 나타난다. 폭포가 품어 내는 윤슬과 희미한 물안개 속으로 날아 오르는 전설의 비룡 이야기는 신비롭다. 16m의 비룡폭포는 동해로 흘러드는 쌍천의 지류가 화채봉 북쪽에 만들어 놓은 폭포다.

폭포에 사는 용에게 처녀를 바치자 용이 하늘에 올라가 심한 가뭄을 면할 수 있었다 하여 비룡폭포다. 안내판을 읽어가던 한 젊은이가, “용이 왜 처녀를 바쳐야 하늘로 올라간다요. 용이 하늘로 올라가야 가뭄이 면해진다고 하요, 참 요상혀요” 한다. 워낙 전설은 그렇다. 요상하고 괴기스럽다. 육체에 큰 위안을 주는 물질과 과학 문명은 영혼에게 거의 아무것도 안겨주지 않는다. 영혼과의 조우 없는 단절로는 우리의 병든 삶을 치유할 수 없다. 저렇게 수려하고 아름다운 폭포도, 그 신비한 에너지도, 영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그냥 외적으로 투사되는 하나의 기록사진에 불과하다. 감각적인 경험만으로는 내면의 영성을 인식할 수 없다. 말하자면 용이 폭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비를 내리게 하는 전설이, 우리 영혼의 상징이고 형상화다.

◆토왕성 폭포의 신비 체험

비룡폭포부터 400m 위쪽에 토왕성 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데크 계단이 약 900개다. 땀을 콩죽처럼 흘리며, 혀를 빼물고 나서야 전망대에 선다.

토왕성 폭포는 외설악 토왕골에 있으며, 화채봉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칠성봉을 끼고돌아 쏟아지는 총높이 320m의 3단 연폭을 자랑하고 있다. 토왕성 폭포의 웅장하고 신비함은 현실을 넘어서 있다. 비록 가물어 흐르는 폭포수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과 맞닿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흰 구름이 폭포수가 되어 흐르는 듯한, 그 환상의 토왕폭포는 숫제 비현실적인 경관이다. 트레커들은 사진 촬영에 분주하다. 김창흡의 ‘설악산 일기’에는 토왕성 폭포가 중국의 여산보다 낫다고 표현하고 있다. 선녀가 비단옷을 펼쳐 놓은 듯한 토왕성 폭포의 비경은 2013년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제96호로 지정됐다. 이제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명상의 숲에서 깨달음

장엄한 서사시 같았던 토왕성 폭포의 트레킹이 집중 호우의 큰 물처럼 감동으로 콸콸 흘러내리는 사이, 초입의 비룡교에 도착한다. 여기에는 근자에 조성한 명상의 길이 있다. 우거진 원시림을 맨발로 걸을 수 있게 만들어진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여름의 햇살이 숲을 통과하면서 녹색 빛이 되고, 뭇 생명을 어루만진다. 저 숲에는 자연의 목소리가 있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개울물 소리. 녹색 빛과 자연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의 영혼 깊숙이 들어와 꽃밭을 만든다. 그러다가 숲은 녹색 빛과 목소리를 어느새 감추고, 고요와 적막의 극치인 반가사유상으로 앉아 있다. 그것을 느끼자, 비로소 나는 명상의 극점에서 해방감의 희열을 맛본다.

◆권금성의 천상 지중해 경치

숲길이 끝나고 쌍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른다.

설악산 속초 외설악에 위치한 권금성은 몽고 침략 시 피란성으로, 권씨와 김씨 장수가 쌓았다는 해발 860m의 석성이다. 단애의 절벽으로 이루어진 공간 위에 장대한 반석과 기암괴석이 만든 경승지다. 땅에는 울산바위가 고고하게 석화처럼 허공에 떠 있고, 위엄 있는 산하가 펼쳐져 있다. 신흥사와 통일대불도 보이고, 꿈결의 세계처럼 공룡능선, 1275봉, 만물상, 나한봉, 마등령, 세존재봉, 장군봉, 저항령, 황철봉 등의 봉우리들이 침봉으로, 또는 덕봉으로 공제선을 만들며 장관을 이룬다. 하늘은 돔 형태로 산하를 둘러싸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며 일대 경치를 만든다.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 신비의 동해는 망막의 초점에서 파란 인어로 누워있다. 그 비경에 소름이 오싹 돋는다. 권금성에서 보면 그 황홀하던 토왕성 폭포의 상단부도 아스라이 보인다. 천지가 온통 별유천지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처럼 수목들이 쏟아내는 기도와 온 산 휘저으며 수우 떼처럼 돌아다니는 바람의 방랑벽, 모두가 설교이고 경전이겠지. 설악산 토왕성 폭포 권금성 트레킹은 그 너머, 보다 큰 신비를 경험하고 영혼을 만나고 체험한 새로운 변화의 하루였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문의: 설악동탐방지원센터(033)636-7700
▶홈페이지: http://seorak.knps.or.kr
▶소공원 내비게이션 주소: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109
▶트레킹 코스: 설악동소공원-비룡교-육담폭포-비룡폭포-토왕성 폭포 전망대-비룡교 회귀-명상의 숲 탐방-권금성 트레킹
▶주위 볼거리: 설악동 코스, 울산바위 코스, 흘림골 주전골 코스, 고성 통일전망대, 척산온천, 의상대 낙산사, 화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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