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 음식거리의 역사-들안길먹거리타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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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9   |  발행일 2016-08-19 제41면   |  수정 2016-08-19
26년간 ‘들안의 맛’을 꽃피우다

1990년. 그해 전국 땅부자를 식겁하게 만드는 법령 하나가 제정된다. ‘토지초과소득이익세(일명 토초세)’였다. 집도 짓지 않고 나대지 상태로 방치된 투기 의혹의 노는 땅은 세금폭탄을 맞을 운명. 80년대 부동산투기 바람을 탄 들안길 지주들은 장탄식을 하며 대책 마련에 돌입한다. 세금은 내기 싫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금 회피용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그게 들안길먹거리타운의 26년 전 풍속도였다.

한편 그 무렵 대구 도심의 유명 식당주들은 마이카붐으로 인한 주차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또한 대구도시철도 1호선 건설과 맞물려 동성로 상권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넓은 땅을 찾아 식당주도 하나둘 외곽지로 떠날 준비를 한다. 자연스럽게 들안길 지주와 도심 식당주의 욕구 사이에 교집합이 생긴다. 지주가 짓는 건물에 탈도심 식당들이 입주하면 어떨까? 그건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였다.

들안길의 ‘들’은 바로 이상화 시인의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수성들이었다. 일제강점기 거기에는 거대한 보리밭·파밭 등이 있었다. 그런데 1925년쯤 법이산 앞에 수성못이 축조된다. 일제강점기, 농사를 지으러 대구에 온 미즈사키 린타로는 3년에 걸쳐 둘레가 2.4㎞인 인공저수지를 짓는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수성관광호텔 옆에 묻힌다. 그 못은 훗날 수성유원지로 개발된다. 70년대 초에 등장한 달성공원, 앞산공원 등과 함께 시민의 대표적 위락공간이 된다. 60년대 대구의 첫 전원풍 휴게소 같은 ‘호반 레스토랑’도 그 곁에서 오픈된다.

◆ 들안길을 주름잡은 식당 이야기

들안길에 들어온 첫 업소는 ‘춘연지’란 보리밥집이었다. 현재 봉평메밀막국수 자리에 있었다. 이어 극동구이, 서민돼지갈비, 금수강산, 금산삼계탕, 고래성, 미성복어, 센도리, 베이징덕 등이 등장한다. 주당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었던 너구리, 묵돌이, 송학, 녹양 등 뭉티기 전문점도 속속 들안길로 들어온다. 금산삼계탕은 들안길을 ‘삼계탕 골목’으로 각인시킬 정도였고, 미성복어는 복어불고기의 원조로 돌풍을 일으킨다. 고래성은 지역 첫 상추샤부샤부와 전골 전문점이었다. 대륙·대어·대번은 들안길의 3대(大) 일식당 버전의 고급횟집문화를 맨 처음 세팅한다.


1980년대 보리밥집 ‘춘연지’ 첫 둥지
96년 번영회 발족 후 100여 업소 운집
대구 최강의 매머드 푸드거리로 부상
2014년엔 말레이 음식 한국 1호점도

한·일·중·양식 등 21개 업종 300여곳
업소 수 가장 많은 건 한우숯불갈비점
도심 곳곳 먹거리골목 생기며 위기론
15년前부터 함께하는 맛축제로 돌파구



그렇게 IMF외환위기를 전후해 100여개 업소가 운집하게 된다. 들안길상가번영회는 96년쯤 발족된다. IMF 때 가장 대박을 친 업소는 3인분 같은 2인분 해물칼국수의 붐을 일으킨 ‘봉창이해물칼국수’였다. 이후 서울의 등촌칼국수를 벤치마킹한 칼국수샤부샤부의 선두주자 ‘바르미’가 도전장을 낸다. 갈치 전문점 ‘정아갈치’, 장어 전문점 ‘삼수장어’, 간편 한정식의 선두주자 ‘만반’과 ‘금옥이네 돌솥밥’ 등도 폭넓은 손님층을 확보한다.

초밥의 경우 센도리·엔·남강·금강초밥에 이어 후발주자 민수사 등이 주목을 받게 된다.

후발주자 중 ‘용지봉’은 호남정 등과 함께 들안길을 좌지우지하는 한식당으로 자릴 잡았다. 커피숍 등 젊은 층과 함께할 수 있는 브랜드도 속속 입점한다. 지역발 체인점인 ‘핸즈커피’를 비롯해 2014년에는 말레이시아 음식인 ‘파파리치’가 한국 1호점을 들안길에서 오픈한다. 지난해는 부티크 김밥 전문 카페인 ‘M℃’가 들안길삼거리 코너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는 9월에는 ‘라라코스트’까지 오픈하게 된다.

현재 회원업소는 100여 개. 골목 안 비회원 업소까지 포함할 경우 300여 업소가 포진해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업소 종류는 단연 한우숯불갈비점이다. 안동한우, 승정원한우, 가야식육식당, 횡성한우천년우점, 하양농장한우촌, 벽우, 허대감 등 소·돼지 숯불갈비점이 모두 24개 몰려 있다. 음식점 종류만 한식·일식·중식·양식 등 21개 업종이 있다. 가게 평균 넓이는 660㎡(200평).

◆ 들안길 상권의 도전 스토리

초창기 들안길 상권은 대구에서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매머드 푸드스트리트였다. 특히 80년대까지 힘을 받았던 앞산순환도로 상권이 쇠퇴하면서 들안길은 더 파워를 갖게 된다. 초창기 식당은 토초세를 피하려고 대충 지은 건물이었다. 당시 식당주는 7년 사용하고 지주에게 넘겨주는 계약을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제대로 된 건물이 속속 들어선다. 금산삼계탕은 당시 들안길에서 가장 우람하고 화려하게 대리석 외장의 건물을 지었다. 이어 센도리, 두류해물탕, 송학구이 등이 멋지게 신축한다.

하지만 대구 도심의 중심이 동서남북 외곽으로 이동하면서 칠곡 3지구, 달서구 호림동, 달서구 성서 용산동 등 도심 곳곳에 35개의 각종 상가번영회와 먹거리골목이 생겨난다. 모두 들안길을 벤치마킹했다.

들안길 위기론이 속속 제기된다. 예전만큼 들안길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상가번영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제3의 도약을 위해 ‘축제마케팅’을 강구한다.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1억2천만원짜리 조형물을 설치한다. 지리산에서 갖고 온 3천만원짜리 바위를 포크로 지탱하는 모양이었다. 이 조형물은 들안길 주인들이 들안길을 발전시키려면 음식 맛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한 반증이다.

상가번영회는 15년 전부터 맛축제를 시작했다. 대구음식박람회가 열리기 전이었다. 들안길맛축제는 수성페스티벌의 전신이었다. 3일간 도로를 막고 행사를 진행했다. 민선 1기 김규택 수성구청장 시절이었다. 김형렬 구청장 때는 수성폭염축제의 일환으로 맛축제가 열렸다. 역대 구청장 중 스토리텔링마케팅 유전자가 가장 진했던 이진훈 구청장 때 시민과 관광객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김밥 길게(1천30m) 말기’로 기네스북 최고기록을 세운다.

그런데 또다시 복병이 등장한다. 한때 어둑했던 수성못 주변 상권이 부활한 것. 동일하이빌 아파트의 기부채납으로 대구 첫 영상분수가 수성못 내에 설치된다. 이어 50억원을 들여 수성못 생태정비사업을 진행한다. 버스커들이 몰려들고 수중 산책로까지 가설된다. 덩달아 수성못 동쪽 언저리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유명 브랜드 커피숍이 도열하게 된다. 알짜 코너는 평(3.3㎡)당 4천만원대에 육박. 들안길 재도약 프로젝트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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