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국가란 무엇인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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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4   |  발행일 2016-08-24 제31면   |  수정 2016-08-24
[박재일 칼럼] 국가란 무엇인가

지역에서 전례없이 인화성 강한 이슈가 한여름을 관통하고 있다. 바로 ‘성주 사드 배치’다.

사드를 지켜보면서, 여기다 올림픽까지 겹치면서 나는 한 가지 명제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국가란 무엇인가’란 깊은 물음이다.

한때 한국 야구의 명장으로 통하던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이 유명한 말을 했다. “국가가 있고, 야구도 있다”. 거액 연봉으로 무장한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소속 팀의 울타리를 벗어나 국가대표로서의 사명감을 촉구한 발언이다. 국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주의는 스포츠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평소 축구에 무관심하던 주부도, 펜싱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르신도 국가대항 올림픽에 열광한다. 금메달의 그 순간은 국가적 일체감으로 하나가 된다.

이쯤에서 끝나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행복한 답으로 귀결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 선발의 부당함을 항의하며 러시아로 국적을 옮겨 뛰고 있는 빙상선수도 있고, 참사에 어린 자식이 희생되자 한국을 떠난 엄마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조국을 버리는 망명과 난민은 도처에 깔려 있다. ‘헬 조선’은 그나마 투정의 탈(脫) 국가관이다.

서울에서 지인으로부터 몇 통의 전화가 왔다. 요약하면 성주군민들이 왜 그렇게 사드를 반대하느냐는 불만이다. 심지어 경북 북부 자기 고향에 사드를 갖다놓는 운동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답을 못했지만 이제 답을 하겠다. 그렇다고 여기서 플라톤의 철인정치 국가론이나,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이나, 행여 국가는 폭력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나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전체라면 늘 소수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구성원 100%가 찬성하는 순도 높은 국가는 없다. 소수의 주장을 우리는 종종 ‘내 집 앞은 안 된다는 님비’로 격하하지만, 그 님비의 대상이 내가 될 때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수백 명을 인질로 잡은 테러범을 제압하려면 소수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은 테러 현장의 정의다. 그렇지만 그 소수에 내가 포함된다면 그때도 그것이 정의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의 전투병들은 매일 죽어나갔다. 사망자만 2천명 이상 달했는데 참으로 경이로운 것은 전 미국의 유력 신문들은 사망자와 부상자 수(Toll)를 매일 게재했다. 죽은 병사의 시신이 성조기에 싸여 군공항 기지로 귀환하고, 가족들이 오열하는 사진은 줄기차게 1면을 장식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가의 부름에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명예와 예우다. 물론 금전적 보상이 뒤따른다.

나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를 놓고 국가 권력의 대행자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설득의 기억이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유감이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성주를 선택했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끝없이 되풀이한다.

제3후보지란 제안이 나온 과정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건 국가, 즉 정부가 고심 끝에 도출한 것이 아닌 성주의 아이디어였다. 정부는 그저 “성주에서 그렇게 안을 마련해 온다면 검토해보겠다”고 답한다.

급기야 국가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성주군민이 국가를 설득한다. “국가 없는 국민은 있을 수 없다. 파국은 막아야 한다”며 제3의 후보지를 호소한 이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아닌 김항곤 성주군수다.

소수는 외롭다. 희생되는 소수를 천대하면 국가가 건강할 수 없다. 국가는 그 소수의 합이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터널’에서 붕괴된 터널에 갇힌 주인공을 원작과 달리 살아남는 것으로 해피엔딩 마무리한 감독의 마음도 그런 연장일 게다.

사드를 내 집 앞에 설치하라고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성주군민들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어디서 누군가가 자신들의 영역에 사드를 받아들인다면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할 사안이다. 그것이 국가의 정의다. ‘국민의 군대’가 그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성주 사드, 분명한 점은 국가, 국방부가 좀 더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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