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후진국 병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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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23면   |  수정 2016-08-26
[조정래 칼럼] 후진국 병

폭염이 숙질 만하니 심화가 덮친다. 어째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올해도 여측 없다. 더위 끝 방심을 틈타 틈입한 집단 식중독 사고 말이다. 원인균은 식품안전불감증이란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다. 특히 학교급식의 결과 발생하는 식중독은 더욱 그러하다. 대구 수성구와 봉화를 비롯해 전국 9개 학교에서 개학과 동시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였다. 위생불량과 불량 식재료 외에 달리 이유가 없을 터인데, 왜 해마다 똑같은 홍역을 치르나. 심화에 울화를 더하니, 참으로 덥기 그지없다.

들리느니, 답답한 소식뿐이다. 후진국병 콜레라도 15년 만에 국내에서 발생했다. 우리 모두가 추가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느슨한 방역태세가 ‘콜레라 청정국’ 지위를 상실케 했다는 추정에 질책이 뒤따른다. 위생점검과 손씻기 생활화 등 보건교육 강화 대책이 호들갑스럽다. 더 기막힌 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C형 간염 집단감염 사태다. 병원에서 이런 위험천만한 작태가 일어나더라도 이를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병원에 가서 병을 얻는 의료성 질환에 내남없이 모두 무방비 무장해제 상태다. 어처구니 없다. 보건의료 후진국에 사는 국민의 불행이다. 더위 탓 하지 마라. 이 모두 인재(人災)고, 세계 10위 경제 대국에서 일어나선 안되는 후진국 병이다.

식중독보다 더 무서운 게 악순환을 거듭하는 학교급식 부실과 비리 문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학교급식 실태점검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땅의 모든 어른은 쥐구멍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 식판에 올라야 할 부식이 상품권과 리베이트로 빼돌려졌다. 교원과 영양사 등이 탐욕을 채운 사이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가 학생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비리 투성이 밥 제 자식에게도 먹일까’, 분노하고 질타해 보지만 그때뿐이다. 여전히 수많은 학교, 수많은 학생들의 급식 원성은 학교 울타리를 넘는다.

‘비리 식판’은 지금껏 학생들의 아우성에 귀 막은 어른들의 무감각과, 급식업자들의 몰염치가 빚은 합작품이다. 사건만 터지면 온갖 처방전이 난무하지만 백약이 무효하다. 정부와 학교의 대책은 슬슬 기고 급식업자들의 편법은 펄펄 난다. 사고를 낸 급식업자들이 영구 퇴출됐다는 소리는 들어 본 바 없다. 명의를 빌리거나 유령회사를 차리는 식으로 부활을 거듭한다. 5조6천억원(지난해 기준) 급식 예산은 줄줄 새어 나가 업자 배부터 불린다. 학교 급식판이 초라해지고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정부는 불량식품을 4대 악의 하나로 보고 척결을 외쳐 왔다. 그러나 결과는 용두사미, 공염불이다. 학교급식 불량과 집단식중독은 결코 날씨 탓이 아니다. 매사 말뿐인 정부와 학교의 무관심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다.

부실투성이인 학교급식 실태를 어떻게 손 봐야 하나. 할 수만 있다면 뭐든 아니할 것인가. 비디오 틀 듯 해 온, 정부와 학교의 탁상대책은 이제 멀찌감치 걷어치워라. 허울뿐인 제도와 법은 백날 만들어지고 발표돼 봐야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물론 위생·처벌 규정의 대폭 강화는 기본이다. 문제는 적용과 실행의 부재에 있다. 규정의 엄정 집행은 말과 문자 속에만 갇혀 있으니, 이른바 구두선이다. 비리가 적발돼도 무관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어른들의 학생 급식비 착복은 이렇게 관용을 먹고 자라난다.

정부와 학교가 부실하다면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내 아이 밥그릇은 내가 지키자는 학부모주권운동이라도 하자. 가열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냄비처럼 반짝 달아올라서는 안 하니만 못하다. 학부모들의 상시·벌떼 감시가 급식도둑의 최후 파수꾼일 게 틀림없다. 바야흐로 불량급식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학부모의 의무로 떠올랐다. ‘내 아이의 식판,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는 비장한 사명감이랄까. 집단식중독과 급식비리 등은 참으로 부끄러운 후진국병이다. 물려주지 말아야 할, 버리고 가야 할 흑역사 아닌가.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경제 국력 선진국, 의식 미개국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나. 공짜 점심은 못 주더라도 최소한, 아이 코묻을 반찬 갈취만은 끝장 내자.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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