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진주 문산읍 문산리 문산성당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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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37면   |  수정 2016-08-26
본당 아치형 나무문 앞에 드리운 줄 하나…그 끝은 첨탑 종에 닿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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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성당. 왼쪽 기와 건물이 옛 성당, 정면의 고딕식 건물은 1937년에 지어진 것이다. 모두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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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성당의 중앙 문. 위엄 있는 문 앞으로 종 줄이 다소곳이 내려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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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성당의 아름다운 내부. 6·25전쟁 때는 인민군의 내부서로 징발되어 이후 총탄에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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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으로 쓰이고 있는 한옥의 내부. 정면에 제단이 있었던 옛 성당의 자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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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오른쪽에 위치한 성모동굴. 1932년에 설립되었다.


2∼3층 정도의 건물들이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번다한 분위기에 사람과 차가 없는 소읍의 모습이다. 진주성의 동쪽 외곽에 자리한 문산읍. 문산 나들목이 따로 나 있는 걸 보면 교통에 있어 중요한 위치일 것이다. 차가 들어설 수 있을까 싶은 작은 골목 앞에 ‘문산성당’ 이름표가 보일 듯 말 듯 붙어 있다. 담벼락에 빨래가 내걸린 골목길. 그러나 그리 좁지 않다. 작은 포클레인이 길 한가운데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고, 주변에는 인부와 동네 어르신들이 저마다 진두지휘 중이다. 슬며시 미소가 인다.

1905년 소촌공소→본당 ‘진주 최초 승격’
1937년 지어진 고딕식 본당 건물과 함께
바로 앞 ‘옛 본당’ 기와지붕의 한옥 조화

천주교 박해 때 신자 색출하던 찰방 자리
광복 이전까지 서부 경남 천주교의 거점
1932년 만든 성모동굴 작고 오래된 멋


◆본당 역사 100년, 문산성당

샛길로 물러나주는 포클레인을 피해 잠시 느슨하게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고, 크고 무성한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당 구역으로 들어선다. 왼쪽에는 잔디밭 너머 단층의 작은 유치원이 남도의 나무들과 함께 자리한다. 오른쪽에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주차장과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정면에는 뾰족한 종탑을 가진 연 하늘색의 성당 건물이 어여쁘게 서있고, 그 앞 양쪽으로 팔작지붕의 한식 건물과 사무실 겸 사제관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의 아담한 이층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유치원에 아이들이 몇몇 보인다. 태양빛과 새파란 잔디밭이 투명한 방음벽처럼 소리를 지우고 있다. 연회색 옷의 수녀님이 저 모퉁이로 사라지신다.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어쩐지 개울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성당 전체가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고 맑다. 공소, 라고 말해본다. ‘소’는 언제나 낮게 말해지고 입 안에 오래 머문다. 문산성당은 본당 이전에 소촌 공소였다.

1899년 진주 최초의 성당인 진주본당이 세워졌을 당시 진주에는 24개의 공소가 있었다. 그 중에서 신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이 소촌공소다.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지역 교우였던 정찬문 안토니오는 진주지방의 첫 순교자였다고 전해진다. 소촌공소는 1905년 5월 소촌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뒤에 지금의 문산성당이 되었다. 본당 역사 100년이 넘은 셈이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것으로는 진주에서 최초였고, 이후 광복 이전까지 진주를 포함한 서부 경남 일대 천주교의 거점이었다 한다.

◆지금도 가끔 들려오는 말 달리는 소리

성당이 자리한 땅은 조선시대 문산 찰방(察訪)이 있던 곳이라 한다. 찰방은 국가 도로망의 주요 지점에 위치하면서 관리들에게 말(馬)을 제공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는 한편 정보 수집과 검문검색을 수행하던 기관이다. 문산 찰방은 경남지역 15개 역을 관할하던 곳으로 찰방관사를 중심으로 역촌이 형성되어 있던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천주교인을 색출하던 근거지이기도 했다. 찰방 제도는 1885년 폐지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가끔 성당 쪽에서 말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문산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는 프랑스인 권유랑 줄리앙 신부였다. 그는 1907년 찰방 관아였던 건물 10여 동과 부지를 사들여 성당으로 사용했다. 이후 1923년에 기와집 성당을 신축했는데, 그것이 지금 남아있는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일설에 의하면 경남 고성의 어느 사찰 건물 한 동을 그대로 옮겨와 지었다고 한다. 몇 년 전 건물을 보수할 때 지붕 용마루에서 강희(康熙) 24년이라 새겨진 글귀를 발견했다고 한다. 즉 건물은 조선시대 숙종 11년인 1685년에 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당은 정면 6칸, 우측면 4칸, 좌측면 3칸 규모로 동쪽에 출입구, 서쪽에 제단을 두었었다. 현재 건물은 강당으로 쓰인다. 내부에는 13개의 굵직한 기둥이 버티고 서 있고 탁자가 빼곡하다. 천장에 매달린 초롱꽃 모양의 샹들리에가 묘하게 친밀하다. 벽에는 신부님과 수사님들의 사진으로 빼곡하고 공소시절과 본당 초기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걸려 있다. 주일에는 미사 후 모든 교우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식구란, 함께 밥을 먹는 사이라 했다.

◆작고 오래된 새로운 성당

중앙의 고딕식 성당 건물은 1931년 한국인 김영제 신부가 부임하면서 성당신축을 진행해 1937년에 완공되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철근 콘크리트로 시공한 건물이다. 얼마나 고이 보듬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성당 정면에는 예수성심상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1932년에 설립된 성모 동굴, 왼쪽에는 수녀원이 자리한다.

입구 한가운데 아치형 나무문이 인상적이다. 아주 육중하고 견고해 보이며 별 장식 없이 단순하다. 규모가 큰 것도 아닌데 선뜻 손대기 어려운 위엄이 있다. 문 앞 천장으로부터 종 줄이 내려와 있다. 종탑에는 프랑스제 종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번 성모동굴 뒤 언덕에 묻혔다 한다.

옆문으로 들어선다. 조그만 것을 여는데 제법 힘을 쓰게 한다. 내부는 너무 소박하고, 너무 아름답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빛 조각들이 공간을 물들이고 있다. 한옥성당에 비하면 새롭고 큰 성당이지만, 또한 작고 오래된 성당이다. 작은 성당, 작은 절집, 작은 교회를 편애한다.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너무 큰 것들이 너무 큰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단순한 저항일지 모른다. 옛 성당 창가에 동네 어르신이 앉아 계신다. 아이들이 종알대던 유치원을 바라보고 계신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영원히 편애하기로 마음먹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남해고속도로 문산IC로 나간다. 문산읍 사무소 쪽으로 가다 문산초등학교에서 좌회전해 소문길로 계속 직진하다 보면 왼쪽 골목길 안에 문산성당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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