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광복 71주년 대(구)경(산)청(도) 100㎞ 다크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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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38면   |  수정 2016-08-26
여전히 아픈 60여년前 비극 현장…가벼운 바퀴에 무거운 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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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티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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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코발트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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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계서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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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댐 제

광복 71돌 아침 8시15분 영대교 출발
대구경북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 서린
10월 항쟁 가창골학살지 찾아 라이딩

수습한 유골 부식 등 안타까운 소식에
경산코발트광산 나서는 마음 천근만근
184명 학살 ‘청도 킬링필드’ 곰티재선
이달말 건립 위령탑 조성지 주변 둘러봐
자계서원∼팔조령 지나 도착한 가창골
희생자에 祭 올리며 100㎞ 대장정 마감

8년 전부터 7월 마지막 날 가창댐 부근에서는 6·25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합동위령제가 열려 왔다. 합동위령제는 보통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불의의 사고로 떼죽음을 당했을 때 치르곤 하는데, 가창골의 경우 죽은 날과 시간을 알 수 없고 추정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움을 더하는 합동위령제다. 10월항쟁 70주기, 민간인 희생자 66주기 합동위령제는 대구시의회 김혜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의 대표 발의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전원 찬성으로 통과된 이후 열려, 그동안의 ‘진상규명, 명예회복운동’ 성과가 집약된 분위기였다. 몇 사람에 의해 조촐하게 시작해 10년이 되기도 전에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핏덩이 때 잃은 아비 얼굴 모습 모르지만 이 젯밥 받으시고 백발성성 이 자식들 저승 가서 뵙거들랑 두 손 잡고 반겨주소”라는 유가족 대표 채영희 회장의 축문은 가슴을 저몄다. 위령제는 ‘아버지’로 시작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식순으로 끝났다. 공식행사가 끝나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유가족들이 모이더니 수심 깊은 가창댐을 바라보며 일제히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는 아버지 삼창을 했다. 순간 보름 뒤 8월15일 광복절에는 혼자만이라도 대구·경북 민간인 학살의 아픔이 묻혀 있는 경산코발트, 청도 곰티재, 가창댐 유적지를 찾아보는 다크투어 라이딩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대구~경산~청도를, 8월15일 오전 8시15분 출발해서 81.5㎞를 달리고 싶었으나, 실제 거리는 100㎞가 조금 넘었다.

광복절 이른 아침 지하철 2호선에 자전거를 싣고 임당역에 하차해 집결장소인 영대교로 향했다. 총 12명의 참가자가 모였다. 경산 남천 영대교에서 삼성현로를 따라 평산동 코발트광산 표지판이 나오는 파티마요양병원, 인터불고 골프장 입구까지는 6㎞. 반나절 함께하게 된 일행은 행사 취지에 맞춰 경산 남천 자전거길로 해서 30분 거리 평산동 코발트광산으로 향했다.

경산 폐코발트광산 안내판은 대구한의대를 지나가는 길에 보았다. 평산동은 경산에서 자인 방면으로 대구한의대학교 입구가 나오는 어름에 자리한 마을 이름이다.

파티마 동오요양병원으로 가는 길 위로 깔린 전선은 일직선을 하고 있지만 어지러워 보였다. 일제시대에 코발트광산이었다 폐광된 뒤 1950년 7월 중순부터 8~9월까지 3천5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어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평산동 산 42-1 경산 킬링필드 코발트광산. 유적지가 될 날을 바라며 민간인 학살의 무덤지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유가족으로부터 한 말씀 듣는 것보다 더 큰 공부가 없을 것 같아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부회장께 연락을 했다. 짧은 시간 귀한 말씀을 귀담아 다 듣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는 라이딩족들에게 기꺼이 선의를 베풀어주었다.

6㎞ 라이딩에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 라이더들은 지하 갱도 입구에서 영혼까지 맑아지는 자연 냉풍 마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 이상의 산공부가 어디 있으랴. 우리는 쉽게 열리지 않던 지하 갱도 문을 열고 들어가 보는 것만으로도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이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자랑거리라면 억압당하고 누명 쓴 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연대, 사랑이었다. 오래된 집 이상의 기능을 못하면서 서있는 소백강산의 서원들은 현대적 의미로 보면 트라우마센터다.

우리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땡볕 라이딩에 나선 것도 오래된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으리. 멀리 가는 자전거에 지극한 깨달음이 함께하나니, 혼자든 여럿이든 안전하게 타면 언젠가는 득도의 길로 향하리!

코발트광산을 나서는 마음은 무거웠다. 수직 갱도에서 수습한 80여구의 유골이 컨테이너 가건물 안에서 부식되고 있고, 충북대에서 임시 보관 중이던 370구는 안치될 곳이 없어 경산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나 부회장은 행정자치부에서 공모한 518억원 규모 피학살자 추모공원 사업을 경산시가 주민반대를 내세워 공모 신청조차 않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본 코스는 평산 코발트광산에서 가보지 않은 매전면 덕산리 곰티재까지 40㎞. 곰티재는 청도읍 부야리와 매전면 덕산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해발 300m의 고개로, 청도를 산동지역과 산서지역으로 나누는 갈림길인데 로드 라이딩을 즐기는 자출족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곰티재터널이 생겨 자전거 타기 좋게 된 옛길이 민간인 학살 현장이었다는 것을 공유하는 힘은 집단지성의 발현으로 생성된다.

코발트광산을 출발한 대오는 대구한의대 삼거리에서 자인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919번 지방도로를 따라 용성 방향으로, 69번 지방도로로 갈아 타고는 청도 운문 방향으로 향했다. 평길이라 속도를 내기 좋았다. 자인면 옥천교 고가도로를 횡단하고 서원천로가 보이는 설총로의 경리1, 2교차로를 지나, 갈지리에 있는 콩국수 전문점 ‘운문 가는 길’에 들러 자전거 단골집의 인심을 들이켰다. 오전 10시15분, 라이딩 시작 2시간을 경과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동곡네거리에서 금천로를 따라 동창천관광지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금천면 신지리의 운강고택과 만화정, 선암서원, 천년고찰 대비사 표지판만 봐도 흐뭇했다. ‘이곳에도 벼슬을 사양하고 그림 같은 집을 지어 후학을 양성한 꼿꼿한 선비가 살다 가셨네.’ 난생 처음 달리는 매전면 구간 동창천 주변 산수 경관에 매료되어 디카놀이를 하다 보니 앞서가던 일행을 놓치고 후미에 뒤처졌다.

가는 방향을 알면 잠시 길에서 헤매도 괜찮다. 선암로를 따라 아음교를 건너고, 남양리를 지나 금곡리 매전교에서 발견한 서남 방향 전경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창천 삼족대 당호숲. 탁영 김일손의 조카 김대유가 관직을 그만두고 동창천 암벽바위에 정자를 짓고 후진교육을 하며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신지리에서 금곡리까지 이어진 진경산수풍 매전 로드뷰의 꼭짓점이었다. 이 길을 달리면서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경남북으로 갈린 밀양과 청도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막역한 관계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일행은 매전교 삼거리에서 좌회전한 어느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오를 정비한 10인의 라이더는 매전파출소~동산리~기리골~하평리~감말랭이 원조마을을 차례로 지나고, 관하리 원정자길로 들어가 노거수 그늘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더위를 식혔다. 그곳은 곰티재 공략 베이스 캠프 같았다.

곰티재는 곰을 만난 대감집 부인이 치마를 뒤집어쓰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났다는 생명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현실은 밀양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구금되어 1950년 8월 중순경 184명을 집단학살한 청도 킬링필드였다. 가파르지 않은 곰티재 옛길 업힐은 20분 만에 끝이 나는 단거리였다. 곰티재 업힐은 815라이딩의 반환점을 통과한 것이었다.

청도읍 사촌2리 승학골에서 아버지를 잃은 10월 유족회 이상태 청도운영위원장과 우대원 위원이 복숭아를 준비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곰티재 휴게소에서 유족들이 들려주는 곰티재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잔치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8월말 건립 예정인 위령탑 조성 예정지 주변도 둘러보았다. 죽음을 넘어 생명의 투혼으로 되살아나 피어나소서!

곰티재 휴게소 고개를 넘어 다운힐을 시작해 가속이 붙는 지점 오른쪽 용각산-선악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진 곳에 밀양청도 국민보도연맹사건 학살 유적지(청도읍 온산리 산 50-5 일대)가 있었다. 소방관으로 일상의 위기 속에서 불꽃같은 삶을 사는 ‘이노끼 번짱’은 대열을 멈춰 세우고 불러모았다. 갈 길이 급하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자는 자세였다. 우리 지역의 아픔이 묻혀 있는 곳에서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레알 현대사 공부의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라며 다음다음 코스를 향하여 단단단 다운 바이킹.

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한달음에 청도 중심으로 진입했다. 곰티재에서 청도의 관문인 모강교차로까지는 10분 만에 주파했다. 모강교차로에서 청도대교를 건넌 우리는 송북리로 빠져나와 화양읍 눌미리(고평리) 방향 산성강변길로 합류해 자계서원으로 향했다.

자계서원에서 가창댐으로 가려니 헐티재보다 팔조령이 가까웠다. 연지로라는 길 이름을 만들어낸 유등지는 청도라이딩의 화룡점정 같은 곳이다. 찾아가는 길은 청도천을 따라가다 학산토평 들길을 거쳐 학산토평길을 만나 유등교차로에서 좌회전하면 연꽃 피어나는 유등지가 나온다. 일정 관계로 도착하기 무섭게 자리를 떠야 하는 아쉬움이 컸다.

양원리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물과 기능성 음료로 기력을 충전하고 팔조령 업힐에 나섰는데, 좋았던 날씨는 팔조령 6부 능선에서 뙤약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기진맥진 뒤처져서 꾸역꾸역 팔조령산장휴게소에 도착해 가창댐으로 내달렸다.

가창골 방문 10월항쟁민간인유족회 채영희 회장께도 미리 815라이딩 계획을 알렸다. 귀한 걸음을 부탁했더니 간단한 제사상까지 준비해 오셨다. 우리는 몇 잔의 술을 부어 바치며 큰절을 올렸다. 가창골에서는 대구형무소 수감자 2천~3천여 명과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보도연맹 관련자 5천~8천여명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죽음골이다.

8월의 불볕더위를 뚫고 100㎞ 길을 함께 달린 참가자들은 내년 8·15에는 더 짜임새 있는 준비로 더 많은 대오가 함께 타는 다크라이딩을 예고했다. 살아 있는 유족들과 억울하게 희생된 님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경청 다크 라이딩을 마치니, 김구 선생이 좋아했다는 서산대사의 ‘답설’(오늘 나의 길이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된다)이 떠올랐다. 12명의 한 걸음이 대구·경북에 다크투어 라이딩 코스를 쾌척한 것이다. 불볕더위를 사른 12명의 라이더에게 감사의 큰절을 바친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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