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국민’을 위한 ‘국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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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43면   |  수정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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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흥행 실패 후 7년 만에 내놓은
김성훈 감독의 쿨한 영화 ‘끝까지 간다’
제목처럼 끝내주는 연출에 차기작 고대

그로부터 2년…최근 ‘터널’ 개봉 관심
‘세월호’ 떠올라 보는 내내 기시감 빠져
영화를 압도하는 현실에 경악 또 경악


2014년 5월 개봉한 ‘끝까지 간다’는 다시 생각해봐도 제목처럼 정말이지 끝내주는 영화였다. 특별한 반전에 대한 강박없이 한국영화 특유의 곁가지들을 과감히 쳐내고 인물과 사건에만 집중한 덕에 확보한 팽팽한 긴장감과 속도감이 그야말로 관객을 끝까지 몰고 간다. 당시 영화에 쏟아진 ‘할리우드 수출작으로 강력 추천함’(이용철), ‘두 주인공이 처음 직접 대면하게 될 때의 굉장한 박력’(이동진), ‘젠체하지 않고 할 일만 하고 빠져서 더 좋은 오락영화’(송경원) 같은 찬사들이 전혀 주례사 비평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개봉 무렵 주변에 볼 만한 영화가 없다고 푸념하는 이들을 볼 적마다 이 영화를 강추했던 기억이 새롭다.

궁금증은 자연스레 이런 쿨한 영화를 만든 감독은 누군지로 이어졌다. 이름이 낯설었지만 그가 곧 배우 백윤식과 봉태규가 주연을 맡아 아버지와 아들로 분한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만든 김성훈 감독이란 걸 알았다. 김 감독은 대학에서 헝가리어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배우 겸 가수 장나라가 주연한 윤학렬 감독의 ‘오! 해피데이’(2003)와 웹소설 1세대 작가 귀여니(이윤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환경 감독의 ‘그 놈은 멋있었다’(2004)의 조연출을 거쳐 2006년 전은강 작가의 동명소설로 자신의 데뷔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움과 안전함 사이에서 머뭇거린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아쉬운 흥행 성적을 거두며 둘째 영화를 만들기까지 무려 7년자을 기다리게 했다.

호평이 쏟아졌던 둘째 연출작 개봉에 즈음해 한 영화 주간지와 가진 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데뷔작 흥행 실패에 대해 “당시엔 이것밖에 안 됐나 싶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빈틈만 계속 보여서 힘들었다. 그땐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걸 먼저 의식했던 것 같다”고 자신을 진단하며 “첫 작품이 유작이 될까봐 두려웠고 혹시라도 기회가 다시 온다면 뭘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제일 먼저 한 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부터 되돌아보는 거였다”고 밝혔다. 얼마나 많은 감독이 ‘첫 작품이 유작’이 되는 안타까움을 느꼈을지. 데뷔작의 흥행 실패가 좋은 약이 된 드문 예이다.

‘끝까지 간다’를 즐겁게 본 관객이라면 김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첫 영화와 둘째 영화 사이에 놓인 7년을 생각하면 아찔했지만, 둘째 영화와 셋째 영화 사이는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끝까지 간다’에 이어 역시 쇼박스가 배급한 ‘터널’은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수 500만명을 가뿐히 넘기며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이어 2016년 여름 한국영화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터널 안에 갇힌 채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남자(하정우)와 터널 밖에서 그 남자를 구조하기 위해 애쓰는 남자(오달수)와 갇힌 남자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아내(배두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정부(김해숙)와 언론(유승목)까지. 여느 재난영화와 다르게 시작하자마자 터널을 무너뜨리며 곧장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습은 전작의 미덕을 연상케 한다. 이미 3년 전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에서 방송국 스튜디오에 갇힌 앵커를 연기하며 영화의 90% 이상 분량을 이끈 바 있는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와 연이어 관객수 천만 영화에 잇따라 출연한 탓에 ‘천만 요정’으로 불리는 오달수의 케미도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

‘터널’은 ‘끝까지 간다’와는 다르게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처럼 원작이 따로 있다. 2013년 작가 소재원이 발표한 동명소설이 그것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 GOD의 멤버에서 배우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윤계상이 주연하고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비스티보이즈’와 배우 설경구, 엄지원이 주연하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소원’에 이어 셋째로 영화화된 소재원의 작품이다. 작가가 2014년에 출간한 ‘그날’도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하니 언제 소재원의 작품을 찬찬히 일별해 보고 싶다.

‘포스트 4·16’을 사는 우리로서는 이 영화를 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영화 언론시사회에서는 기자들이 김 감독에게, jTBC ‘뉴스룸’에서는 손석희 앵커가 하정우에게 비슷한 질문을 건네기도 했다. 재난 현장에 대한 제대로 된 점검보다 ‘인증샷’부터 찍는 정부 관료들, 제대로 된 최신 한글 매뉴얼 하나 없는 구조현장, 국민의 목숨보다 구조의 손익을 따지기 바쁜 정부나 언론의 모습들은 보는 내내 관객들을 기시감에 빠지게 한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버렸다. 우리는 참사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참사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각도로 고민해봐야 한다. 상당수의 국민이 참사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빠졌다.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300명 넘는 사람이 구조되지 못하고 수장당하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숙제의 무게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사흘 앞두었던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은 투표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선거 전엔 의석 수가 모자라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야당은, 선거 후엔 아무리 의석 수가 많아도 여론의 뒷받침없인 할 수 있는 게 없단 변명으로 유가족들을 다시 절망에 빠뜨렸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특별법 개정, 특검 의결은 배제한 채 세월호 선체조사도 별도의 기구가 맡을 수 있다는 내용의 교섭단체 원내대표 간 합의에 반발해 유가족들은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끔찍하다. 영화 속 하정우가 영화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는 세상에서 아프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현실은 때론 영화를 압도한다. 저 유명한 코맥 맥카시의 소설 제목에 빗대어 말하자면, 상식이 통하는 안전한 세상을 살고 싶은 ‘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경악, 또 경악한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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