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파악도 못한 출산정책…청년층 이탈 근본대책부터 세워야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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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7 07:30  |  수정 2016-08-27 08:06  |  발행일 2016-08-27 제3면
지자체에 떠넘긴 저출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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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출산 보완대책을 내놓은 지난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0회 베페 베이비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영남권 신공항, 한국문학관, 국립철도박물관 등 국책사업 공모제 방식으로 추진된 사업들이 지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국론 분열의 주범으로 지탄받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저출산 대책마저 공모사업, 특별교부세 등과 연계시키면서 지역을 경쟁 구도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부 정책이 철저히 중앙의 시각에서 나왔다고 보고, 지역이 주체가 된 저출산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역의 아동이 지역에 애정을 갖고 성장, 정착할 수 있도록 동기를 심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지역이 주체 되는 대책 내놔야
출산율·정책평가로 인센티브
중앙 중심의 일방통행식 정책

지자체 재정상황 배려도 없어
재정자립도 10% 미만 59곳
자체 저출산 대책 엄두 못내


◆지자체에 등급을 매긴다고?

정부는 지난 25일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국무총리 주재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저출산 대응 지방자치단체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우수 지자체에 대해 특별교부세 지원 및 중앙부처 공모사업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출산 우수 지자체 순위를 등급으로 표시하고 매년 우수지자체를 선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지자체 저출산 극복 정책 추진을 유도하기 위해 ‘공개-평가-인센티브 체계’ 확립을 골자로 한 ‘지자체 출산율 제고방안’을 내놓았다. 주요 과제는 △지자체의 출산 지도 구축 △지자체 저출산 정책 평가체계 마련 △행·재정 인센티브 확대 등이다.

행자부는 우선 전국 시·도(17개)와 시·군·구(226개)별 출산 통계와 각종 지원서비스, 저출산 정책 평가결과를 담은 지자체 출산 지도를 이르면 올해 말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출산 지도에 평가결과를 등급별로 공개해 각 지자체의 등수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출산 지도는 추후 모바일 앱 형태로도 제공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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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부 관계자는 “출산앱이 구축되면 국민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출산 지원 정책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지원서비스를 쉽게 비교해서 볼 수 있게 된다”며 “지자체별 출산율 순위와 지자체 노력, 평가결과도 공개돼 지자체의 자율경쟁을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고 지자체 간 정책 비교를 통한 벤치마킹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를 잘 낳으면 돈을 주겠다니

행자부는 또 ‘지자체 저출산 정책 평가체계’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고, 인센티브도 확대키로 했다. 즉 지자체 저출산 정책 평가결과에 따라 우수 지자체에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고, 포상 규모도 확대하겠다는 것.

이와 함께 중앙부처의 각종 공모사업 선정 시 출산율이 우수한 지자체를 우선 고려하고 지자체별로 저출산 극복에 기여한 공무원을 인사상 우대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을 두고 정부가 각 지역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역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구·경북을 비롯해 지역의 인구가 줄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층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은 내놓지 않으면서 각 지자체에 등급을 매겨 특별교부세 등의 ‘당근’을 주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중앙 정부 중심의 ‘일방 통행적’ 정책 입안이란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상황에 대한 배려도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허만형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에 따르면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재정자립도가 10%에 미치지 못하는 시·군·구는 59개에 달한다. 이는 지자체 4곳 중 1곳은 지방정부 재정활동에 필요한 자금의 10%도 자체적으로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지자체들은 자체 저출산 대책을 내놓기가 힘든 실정이다.

◆미래 지역을 짊어질 차세대 부모 길러야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일본 사례에서 △국가·지방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의 역할 분담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저출산 해법 모색 △차세대의 건강한 육성·자립을 고려한 장기적 저출산 대책 추진 등의 접근 방식을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정책을 도입해 추진했으나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 일본은 2000년대 이후 지자체와의 협력을 토대로 한 정책을 표방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극심한 구직난에도 불구하고 출생률을 1.26%에서 지난해 1.46%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는 중앙 정부의 계획 수립 전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하의상달식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저출산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의 아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주민참여를 통해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적으로 돌봄의 대상이 되는 아동이 미래 지역을 짊어질 차세대 부모가 될 것으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 확실히 지역관점의 ‘육아 철학’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아동이 지역 사회에 애정을 갖고 지역에서 사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스포츠, 예술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동시에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지역 정착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 정부의 이번 정책은 평가와 인센티브 제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부모를 육성하겠다는 근본적 접근이 아니란 비판이 거세다.

이강호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 인구아동정책관은 이에 대해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입안했다는 것은 오해다. 작년부터 지자체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 지자체의 협조는 절대적”이라며 “오는 9월 초부터 대구·경북을 비롯해 각 지자체를 직접 돌며 의견을 수렴하고 협조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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