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환자에 대한 사회 인식부터 개선해야”

  • 최지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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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31   |  발행일 2016-08-31 제14면   |  수정 2016-08-31
뇌전증 환우 모임 ‘아름다운 삶’
운전면허 제도 개선점 등 토론
다양한 사연 소개하며 의견나눠
“뇌전증 환자에 대한 사회 인식부터 개선해야”
지난 20일 뇌전증 환우 모임인 ‘아름다운 삶’ 대구 모임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지난 7월, 뜨거운 여름 날씨만큼 세상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가 있었다. 운전자의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해운대 뺑소니 사고’였다. ‘뇌전증’이라는 단어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렸던 이 사건은 결국 뺑소니 운전으로 밝혀졌지만, 뇌전증을 바라보는 대중의 따가운 시선은 뇌전증 환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뇌전증 환우 모임인 ‘아름다운 삶’ 대구 모임은 지난 20일 ‘뇌전증 환자는 무조건 운전면허 정지 vs 환자라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를 주제로 뇌전증 환우와 뇌전증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초대해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를 제안한 A씨는 “이번 일로 뇌전증 환우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크다. 때로는 전문가라는 분들까지 영화 ‘곡성’에 빗대어 ‘유체이탈’ ‘귀신 들린 병’ 등과 같은 심한 표현으로 상처를 줬다. 사건이 뺑소니 사고로 밝혀져 일말의 오해가 풀린 듯하지만, 여전히 ‘뇌전증 환자에게 면허증을 줘야 하는가’라는 논란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토론회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일반 참가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운전면허 제도에 대해 확실히 알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환자들은 면허증을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 2년 동안 발작이 일어나서는 안되고, 뇌파에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와 신경외과 전문의의 소견이 있어야만 운전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1993년에 면허증을 발급받았고, 2015년 9월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대부분은 ‘왜 뇌전증 환자에게 면허를 발급했는가’를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뇌전증 환자에게 면허증을 발급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갱신’이다. 뇌전증뿐만 아니라 신경질환을 앓는 다른 뇌질환도 마찬가지다. 적성검사 기간을 차별화하는 등의 갱신제도를 강화해 이번처럼 선의의 뇌전증인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해운대 사건의 운전자처럼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후 뇌전증 진단을 받으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토론의 여지 없이 자진 반납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사연이 소개됐다.

고등학교 때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는 B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으로 인해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학업을 중단한 뇌전증인들은 학력이 낮아서 제대로 된 취업을 하기가 어려웠고, 그러다보니 대부분 단순 노동직이나 운전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력서에 한 줄 쓸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포기하라는 건 ‘생계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B씨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로서 면허증을 포기하지 못하고 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같이 죽자는 얘긴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도 생계를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운전을 하는 거다. 물론 없어야 될 일이고 비판받을 일이지만, 면허증을 주고 말고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인식 개선과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뇌전증 장애인의 취업률이 0.1% 정도로 장애인 취업 중에서도 뇌전증이 가장 차별을 받는다. 대부분 뇌전증이라면 ‘전신발작’만을 떠올리지만, 부분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이 대부분이고, 나도 의식은 유지되면서 입꼬리가 당기는 정도”며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장애인 구직자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지만 결국 채용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맺었다.

대구에서 10년 동안 ‘아름다운 삶’을 운영해 온 P씨(36)는 “지금이 뇌전증 환우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지만 누군가가 나서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스스로가 세상에 당당하게 나서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를 희망한다”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글·사진=최지혜 시민기자 jihye79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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