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해의 비경’ 서산 황금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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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2   |  발행일 2016-09-02 제39면   |  수정 2016-09-02
썰물 때 바다로 걸어간 코끼리바위…밀물 땐 코 박고 바닷물 쭉∼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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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의 명소로 알려진 황금산 코끼리바위의 신기한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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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 트레킹의 중심인 금굴의 절경과 트레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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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해안에 있는 수려한 해벽과 암벽에 살아있는 나무군락.

황금을 차지하겠다는 인간의 욕망만큼 강한 것도 없다. 대구에서 서산까지, 4시간반 동안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황금산 트레킹의 황금산이 못내 궁금하고, 황금에 관한 별의별 상상이 슴벅거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황금 때문에 인간사 희비가 얼마나 엇갈렸던가. 심지어 황금은 성경의 말씀을 타고 하늘나라까지 올라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면류관으로 사용되는 영원한 보배다. 그런 생각 속에서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들머리에 섰다.

대산반도 북쪽 끝 해발 156m 황금산
정상엔 임경업 장군을 모신 황금산사

산길 내려와 몽돌해변 병풍 같은 해벽
金 캤단 금굴과 코끼리바위 모습 감탄
바다·해벽·몽돌·황금산 숲 조화 ‘희열’


◆황금산과 금굴

인류사를 휘저은 황금에 대한 찬란한 상상과는 거리가 너무 먼 갯내가 풍기는 해안, 가리비찜과 가리비 매생이가 들어가는 해물 칼국수와 간재미 무침, 서산막걸리를 파는 상가가 너절하게 진을 친 볼품없는 바닷가 땅, 들머리 독곶리는 스산한 풍경이었다. 인간의 생존방법이 다 그렇다는 듯, 장사하는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배고픈 갈매기 울음처럼 들렸다.

황금산과 황금산 너머 몽돌해안에 있는 코끼리바위와 금굴의 환상으로 독곶리의 풍경을 지우면서 산길로 접어든다. 곰솔의 향기와 야생화의 미소를 좌우 스틱으로 삼아 편안하게 걷는다. 이마의 땀을 훔칠 때쯤 능선의 조망대, 1봉에 당도한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서해바다의 비경이 나를 사로잡아 버린다.

황금산 앞바다는 인천의 연안부두로 가는 뱃길이다. 큰 화물선이 눈에 띈다. 왼편으로는 만대항과 꾸지해수욕장이 있는 육지가 그림 같다. 다시 산길을 걸어 황금산사에 닿는다. 황금산의 본디 이름은 항금산(亢金山)이었다. 항금이 황금보다 더 고귀한 금이라서 이 지역 옛적 선비들이 그렇게 불러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해석을 해본다. 황금산 서북쪽 바다는 물이 깊고 물살이 급한 해역이다. 황금목 또는 황금항이라 부른다. 여기서 항(亢)은 목 또는 목구멍의 뜻이므로 항금산으로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황금산으로 둔갑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바다는 과거 조기가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었다. 지금은 조기 떼가 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배나 고기잡이 어선이 안전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산사는 임경업 장군과 황금산 산신을 모시고 안전과 풍어의 당제를 지내는 사당이다. 불과 해발 156m의 야산이지만, 대산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황금산은 숲과 야생화, 해안절경이 모두 아름다워 트레킹의 황금 같은 코스다.

황금산사 바로 뒤편 돌탑에 정상 빗돌을 박아놓았다. 참으로 멋진 구도다. 이제 반대편 해안으로 내려간다. 산 능선이라 해풍과 골바람이 불어오면 얼마나 시원한지, 주저앉아 냉커피 한 잔으로 땀을 식힌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애기봉 가기 전 안부에 평상이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10여 분 내려가면 금굴이 있는 몽돌해안이 나온다. 해안은 온통 돌투성이다. 비교적 잘고 몽실몽실한 몽돌이 깔린 해안에, 어디서 왔는지 많은 트레커들이 앉아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서쪽의 바다와 해벽과 몽돌, 황금산의 우거진 숲이 황금비율로 아름다워, 나는 입에 자물쇠를 물고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불과 반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황청색의 바다와 하나가 되어 가는 영성의 변화를 보고 놀라고 감탄했다.

나는 기암괴석이 깔린 해변길을 걸어 금굴에 도착한다. 과거 금을 캤다는 금굴은 자연굴이고, 안은 시원하고 신비한, 관광 지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품격을 갖춘 동굴이다. 그때 추억의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프랑스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는 밤마다 지하 창고에 가서 그곳에 가득 찬 황금을 보고 만지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죽음이 왔을 때, 지하창고의 그 많은 황금 중 한 돈의 황금도 가져갈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여 부자는 눈을 뜬 채 죽었고, 눈 안에는 어둠과 탐욕이 가득 차서 그 눈을 본 가족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황금은 사람을 눈멀게 하고, 어둠으로 끌고 간다. 어둠은 지옥이다. 그 어둠의 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지옥밖에 없다. 천국은 눈이 부셔서 갈 수 없다.

◆코끼리바위와 부활의 믿음

긴장을 풀어주고 안정감을 주는 애기봉과 황금산 사이에 있는 안부를 다시 넘어 몽돌해안에 도착한다.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황청색의 바다를 보면서, 다시 데크 계단을 넘어 또 다른 풍광 속에 들어간다. 기암괴석과 간혹 푸른 나무를 등줄기에 지고 있는, 병풍처럼 펼쳐진 해벽을 보면서 감탄한다. 물때가 맞아 접근이 되는, 서해의 랜드마크 코끼리바위를 탐방한다. 어떻게 그토록 코끼리와 흡사한지, 밀물 때면 바닷물을 마시는 모습으로, 썰물 때는 바닷물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으로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코끼리는 신성하게 나의 의식에 우리를 짓고 들어앉는다. 마야 부인은 흰 코끼리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를 잉태했다. 자비의 상징인 보현보살은 어금니가 6개 있는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코끼리는 자비와 덕을 상징한다. 저 코끼리바위가 서해의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는 여인이 나타나면 좋겠다. 그리고 저 황금산에서 솔향이 짙은 곰솔의 나뭇가지를 잡고, 구세 대비자를 낳아주면 좋겠다. 그래서 칼과 힘으로 만든 황금관을 쓴 왕이 아닌, 자비와 사랑으로 만든 빛의 황금관을 쓴 왕 중의 왕을 낳아주는 황금산 여인이 나타나면 좋겠다. 우리는 개벽과 부활을 믿고 있다.

◆서해의 숨은 비경 황금산 트레킹

이곳은 서해의 숨은 비경이다. 리아스식 해안에 심한 조수간만의 차가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게다가 해식애와 파식애가 발달하여 장관을 이룬다. 또한 해안 침식으로 예술작품에 가까운 시 아치(Sea Arch)와 시 스택(Sea Stack)도 발견된다. 돌아 나오는 길은 해안의 돌길을 따라 독곶리로 나오는 길이 있지만, 햇빛이 강렬하고 잘못 디디면 다칠 우려가 있어,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간다. ‘몽돌 밀반출 금지’라는 입간판의 붉은 글씨가 자극적이다.

길목에 선 돌탑의 리본이 마치 인디오의 허리옷처럼 원시의 질감으로 보인다. 그 애기봉 안부를 지나고, 서해의 걸작품인 붉은 주상절리와 닮은 중년 여인의 간이 커피점을 지나고, 우리는 황금산 정상을 비켜가는 임도길로 돌아간다. 그 가로림만에 조성한 대산임해화학공단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다시금 놀란다. 과거에 어민들이 조기를 잡으며 오순도순 살았던 마을들, 큰 들, 작은 들, 논골, 벚꽃네, 수둑말, 샘말, 목벗, 안질 등은 사라지고, 여기에 들어선 공단의 우람한 굴뚝에서 흰 연기만 포말처럼, 환영처럼 피어오른다. 그 어촌 어민들과 희비를 나누던 갈매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떡갈나무 숲을 지나고, 서해의 황룡이 청룡과 싸울 때 청룡에게 활을 쏘아 도와준 궁사의 꿈에 나타나 ‘황금산이 세 번 푸르러지면 조기가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는 전설은, 아직도 약발이 남아있는 이 지역의 신화다. 어촌 사람들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황금산이 두 번 푸르러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 번째 황금산이 푸르러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날 과연 조기는 돌아올까. 황금산은 온통 은청색이다. 황금산에서 관찰한 나무와 꽃의 이름을 불러본다. 굴참, 떡갈, 팥배, 해송, 소사, 염부목, 누리장 등 나무와 등골나물, 원추리 등 꽃 이름을 나직이 부른다. 이것은 숲의 기도문이다. 거기서 빠져나오자, 뜨거운 햇살을 받아 단김이 물씬물씬 풍기는 삶의 경쟁이 귀를 따갑게 한다. 이 더운데 색소폰으로 호객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여기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아 떠돌아다니던 황금 같은 길의 한곳이라는 걸 깊이 느꼈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독곶리 주차장~왼편 등산로

~황금산 정상~제2쉼터~금굴~몽돌해안~

제2쉼터~코끼리바위 몽돌해안(지나온 길

회귀)~제1쉼터에서 임도~주차장

▶문의: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041)660-3

211, 서산관광 (041)662-6500

▶내비게이션 주소 :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주위 볼거리: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

상, 해미읍성, 일락사, 삼길포항, 팔봉산,

안견기념관, 서산한우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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