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 또 덮칠라…“차례상 엄두도 못내”

  • 정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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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13 07:44  |  수정 2016-09-13 07:44  |  발행일 2016-09-13 제12면
■ 울릉 도동2리 산사태 현장
주민 “LH 아파트 공사가 원인”
이번 추석 육지로 역귀성 많아
태풍 므란티 소식에 걱정 더해
토사 또 덮칠라…“차례상 엄두도 못내”
울릉초등학교 뒤편 수해를 입은 주택가 골목. 골목 입구와 주택이 파손되고 침수 피해를 본 곳곳에 임대주택 건설공사를 중지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울릉] “추석이요? 주민들은 지금 웃음을 잃었어요." 추석을 나흘 앞둔 11일 울릉읍 도동2리 울릉초등학교 뒤편 산사태 피해 현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이곳은 지난달 말 집중호우로 인해 LH의 임대아파트 공사 현장 경사면이 무너지면서 대단위 토사유출로 16가구 4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늑골과 쇄골이 골절된 중상환자가 뭍으로 후송되고 100m 이상 떨어진 울릉초등 운동장에까지 흙더미가 쌓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100여명의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이 복구하느라 북적거렸던 모습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해병대원도 지난 8일 울릉도를 떠났다. 골목에는 한숨을 내쉬며 흙탕물을 뒤집어쓴 가재도구를 씻고 있는 주민만 간간이 보였다. 복구작업이 열흘 가까이 계속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쳐 명절을 보낼 힘도 시간도 없다고 했다. 15년째 이 마을에 거주하는 A씨는 아예 이번 추석에 친척들을 부르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매년 명절에 딸네 가족과 동생네 가족으로 집이 북적였는데 올해는 아무도 부르지 않을 예정”이라며 “올 추석 차례는 조촐하게 술상이나 차려 예만 갖출 생각”이라고 했다.

공사현장 인근 주택에 사는 B씨는 “집이 폐허로 변해 추석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고 기운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같이 우울한 추석을 맞게 되자 주민 C씨는 “명절이면 집에서 미리 준비한 떡과 부침개 등을 이웃과 나눠 먹었는데 올해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주민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고 말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주민들의 얼굴에는 불안과 긴장으로 그늘져 있었다. 또 언제 토사가 흘러내려 대피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차례상을 차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해를 입어 아직까지 피해복구가 덜 된 마을 입구에는 ‘주택공사는 철수하라’ ‘불안해서 못 살겠다 이주대책 마련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LH 임대아파트 건립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중순 주민들은 30~40㎜ 내린 비로 공사장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하수구가 범람해 대피하는 소동을 이미 한 차례 겪었다. 이번 폭우로 수해를 두 차례 겪은 때문인지 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주민의 얼굴에는 분노와 근심이 교차했다. 10여년 전 울릉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와 ‘나비’ 때도 이곳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수해의 원인으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을 위 임대아파트 공사현장을 지목했다. 주민들은 “좁은 계곡 사이에 72가구 아파트를 어떻게 지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사업부지 선정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부지는 가파른 계곡으로 둘러싸여 예전부터 작게나마 논농사를 짓기도 하고 미나리를 재배할 정도로 물이 땅속에서 솟아올라 늘 흐르던 곳이다. 이런 곳에 계곡의 급경사면을 깎아 흙을 매립해 물길을 막고 옹벽을 세워 아파트를 건립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비만 내리면 토사가 흘러넘쳐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참다 못한 인근 주민들이 ‘울릉 국민임대주택사업 도동지역 피해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용진 대책위원장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내고 울릉군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수차례 안전대책을 호소했지만 군은 뒷짐만 진 채 LH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쑥대밭으로 변한 임대주택 건설 현장은 쌓여있는 흙더미와 돌을 치우느라 각종 중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사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이익수 LH 대구경북본부장은 “공사 복구 및 주민피해 보상을 위해 50억~100억원 정도의 추가예산이 투입될 것”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차례 호우피해에 시달린 주민들은 14호 태풍 ‘므란티’가 북상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또 피해를 보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곳 이장 김일육씨는 “임대주택건설현장에 수해방지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일을 잘 마무리해서 앞으로 추가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사현장과 인접해 집이 파손되거나 침수피해가 심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한 집들은 지금도 비어 있었다. 수해 피해가 집중됐던 인근 지역 주민들은 자녀들이 있는 육지로 역귀성을 하거나 친척집으로 대부분 떠날 계획이어서 이 동네의 올 추석은 더욱 썰렁할 것으로 보인다.

수해 지역 주민들은 즐거워야 할 추석을 잃고 말았다.

글·사진=정용태기자 jy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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