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논산훈련소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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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14   |  발행일 2016-09-14 제31면   |  수정 2016-09-14
[박재일 칼럼] 논산훈련소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그날 아침 일찍 논산으로 향했다. 나는 설렜다. 나와 아내, 아들, 그리고 아들의 할머니. 논산 가는 길은 근 30년 만이다.

일상에서 논산 갈 일이 잘 있겠는가. 눈치채셨겠지만 아들 군대 입대하는 날이다. 파릇파릇 4월의 가로수는 내가 입대하던 초겨울의 추위와 오버랩됐다. 왜 그리 가기가 싫었던지. 사실 나는 30년쯤 뒤 내 아들이 태어나면 대한민국은 드디어 군대 안 가도 되는 나라가 될 줄 알았다. 모병제라도 도입되고 통일도 될 줄 알았다. 당시 우리는 군대가 좀 싫었다. 계엄령 속에 20대를 맞이했으니. 그래도 아들의 할머니는 할아버지 면회 갈 때가 생각난다며 논산 가는 길 내내 좋아했다.

훈련소는 입구부터 바뀐 듯하면서도 그대로다. 성당, 교회와 막사는 기억이 날 듯하면서 다르다. 29연대였던가. 확실치 않다. 주차하고 들어선 훈련소 연병장은 그때와는 딴 세상이다. 반 축제다. 신이 났다. 벽돌 깨기 시범에다 노래하는 부모까지.

나중에 먼저 군에 갔다 온 조카에게 “군대 정말 좋아졌더라, 기간병이 신병들에게 ‘이리 오세요’ ‘줄 서세요’라고 존대하더라”고 했더니 씩 웃었다. “삼촌, 거기까지예요. 가족들 안 보이는 연병장 모퉁이 도는 순간부터 욕설이 막 쏟아져요.” 나중에 아들 부대장에게 들었다. 요즘 군대 갈 만하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아버님 때보다 시설도 좋고 구타도 거의 없어졌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오히려 인터넷 스마트폰과 격리되는 고통은 더할 수 있다고 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현행 병역체계인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늘 등장하는 이슈인데 이번에는 강도가 좀 다르다. 인구 절벽에 60만 대군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테니 공무원 9급 수준의 30만 정예군으로 가자는 주장이다. 작지만 강한 군대 논리다. 인기영합 정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병제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긍정적 반응이 우위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잠재적 대권 주자인 유승민 의원이 ‘모병제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모병제를 시행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거의 군대 갈 일이 없고, 형편이 어려운 집 자식만 군대 가게 된다’고 했다. 모병제는 국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모병제는 국가가 돈을 들여 직업군인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징병제하에서 부잣집 젊은이가 돈을 주고 다른 가난한 이를 대신해 군대에 가라고 하면 이것 또한 정의로운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개인이 돈을 들여 징병을 회피하는 것이나, 국가가 예산을 들여 징병을 회피케 하는 것이나 용병이란 차원에서 뭐가 다르냐는 논리 때문이다. 유 의원이 모병제를 정의의 철학과 연계한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온다. 사실 어려운 문제다.

중화인민공화국도 이미 일부 도입했듯이 모병제는 주요 국가의 대세다. 물론 노르웨이처럼 여성도 군에 가는 역선택도 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반도 역사를 보면 무(武)를 경시할 때 나라가 우뚝 선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가적 부(富)를 축적한 다음 이에 버금가는 군대를 유지하는, 이른바 부국강병이다. 지구촌이 하나의 가족처럼 묶이지 않는다면 국경은 여전히 현실이다. 설령 통일이 된다 해도 압록강 신의주에서 두만강 저 끝까지 1천㎞를 넘는 국경선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누가 지킬 것인가. 미래의 대세는 모병제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논산훈련소에서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자 기분이 묘했다. 나는 태연한 척하고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 그런데 화장실 분위기가…. 나처럼 50대 중년들의 눈자위가 벌겋다. 엄마들은 덤덤한데 아버지들이 난리다. 세월은 빠르다. 아들은 제대했고, 복학까지 했다. 또 세월이 흘러 손자가 군대에 갈 그날이 올까.

북핵에다 지진까지 터졌다. 올 추석은 군대 간 아들이나 조카들이 휴가를 내고 집으로 선뜻 오기 어려울지 모른다. 차례나 성묘 후 남은 시간이 있다면 면회라도 한 번 다녀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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