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한가위에 보내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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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19 07:43  |  수정 2016-09-19 07:43  |  발행일 2016-09-19 제15면
[행복한 교육] 한가위에 보내는 감사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추석이다. 추석은 그해 처음으로 거둔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을 모시는 감사의례다. 물론 농사야 사람이 짓고, 내 논의 벼는 내 손으로 키웠지만 천지신명이 돕고,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것이 함께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찌 내 입에 밥이 들어오겠는가? 올해 수확한 정갈한 첫술을 ‘내 입’에 먼저 넣지 않고 ‘덕분’인 존재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명절, 한가위가 다른 명절에 비해 더 풍성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이번 추석 키워드를 아예 감사에 맞추어놓기로 했다. 추석 전날 시댁에 가서 전을 부쳤다. 시어머니가 미리 시장을 보고 정리를 해 놓으셨다. 내가 반죽해서 재료를 갖다 주면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을 둘러싼 아이들이 전을 굽고, 남편이 뒤집개를 가지고 씨름을 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10년 전쯤부터 버려야 했던 시어머니는 이제 애지중지하는 손자가 밀가루 반죽을 덮어쓰며 오징어 튀김하는 것을 안쓰럽게 지켜보신다. 말리고 싶으셨을 게다. 당신이 살아오신 것과 점점 달라지는 세태를 수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걸 묵인해주시는 시어른들이 감사하다.

추석 당일에는 큰댁에 가서 차례를 지냈다. 매년 그랬듯이 한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같이 절을 한다. 예전에는 남자들만 참여했지만 이제는 여자들도 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말로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며 큰 소리로 말하라 농담이 오가면 집집마다 묻어둔 소망들이 하나씩 올라온다. “조상님, 올해 우리 딸 꼭 인 서울해야 합니다.” “조상님, 울 아들 공익 받았는데 수성구청서 일하게 해 주이소.” 그러면 모두들 다른 집 사정도 알게 되고, 소원도 함께 빌어준다. 차례상에 앉아 ‘인 서울’ ‘수성구청’ 같은 낯선 현대어들을 기억하느라 분주하실 조상님들과 함께 서로의 소원을 빌어주는 친지에게 감사를 드렸다.

차례를 지낸 뒤 큰동서는 음식을 약간 덜어 대문 밖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행여 추석상을 받지 못한 나그네 귀신들을 위해서다. 칠곡의 어느 아파트 19층 엘리베이터 옆에 놓인 그 음식을 누가 먹는지 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몸이 안 좋은데도 차례 음식을 일일이 준비한 맏며느리 큰 동서님, 그분의 책임감과 헌신으로 온 식구들이 차례를 지내고 지나가는 귀신까지 배불렸으니 이 땅의 맏며느리들은 무조건 감사한 분들이다. 형님,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추석이 교통 체증을 동반하듯이 다른 일상들이 한꺼번에 한곳에 모여 만드는 명절의 불편함과 긴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오랜만에 온 식구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부모와 조상님들께 인사를 하고,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고, 오며가며 길가의 코스모스를 보았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참고 함께하는 법을 익히고, 누군가의 헌신이 만드는 풍요로움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맛도 있었다. 그래서 추석에도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이제 먼데서 온 사람은 먼데로 돌아가고, 잠시 비웠던 일상들이 돌아온다. 취업과 진학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떠남으로써 돌아올 수 있는 일상이 있는 것,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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