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의 잇드라마]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vs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41면   |  수정 2016-09-23
역사를 소비하는 로맨스 드라마의 두 가지 태도
[이민영의 잇드라마]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vs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구르미 그린 달빛’ 포스터
[이민영의 잇드라마]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vs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포스터
[이민영의 잇드라마]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vs SBS 월화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제작 당시부터 사극풍 로맨스의 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과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는 시청률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압도적 승리로 결론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뒤집힐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 드라마가 역사를 소비하는 태도와 방식의 차이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김규태 연출, 조윤영 극본)는 중국 작가 동화의 로맨스 판타지 소설 ‘보보경심’을 각색한 드라마이다. 환생, 타임 슬립을 비롯해 여주인공을 둘러싼 여러 남성의 로맨스라는 역(逆) 하렘(주인공 남자가 있고, 그 남자를 둘러싸고 수많은 여성 캐릭터가 존재하는 형태)적 구성은 여성 취향 로맨스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설정이다. 더구나 원작과 동명의 중국드라마가 누렸던 인기 덕분에 이 드라마는 제작 당시부터 국내외 로맨스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는 로맨스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호평받았던 중국드라마와 달리 실패한 드라마가 되었다. 고려의 역사를 원작에 대입해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 것이 실책 중 하나다. 원작은 황위 계승을 위한 황자들의 권력다툼이라는 청나라 역사에 기반을 두고,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여주인공 마이태약희의 활약을 로맨스의 주요 동력으로 이용한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는 이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배경만 고려로 바꾼다.

문제는 제작진이 이 드라마가 고려사를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 강조한 데 있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 왜곡이나 역사의식의 부재까지 갈 것도 없이 그저 역사상 실존 인물만 등장하면 역사라고 판단하는 제작진의 무지를 드러낸다. 4황자 왕소(광종)의 잔인한 성격에 대한 제작진의 안배는 그러한 무지를 드러내 준 극단적 사례다. 권력 지향적이고 계산적이며 잔인한 원작 속 윤진(옹정제)의 성격을 그대로 옮겨오기 위해 설정된 왕소의 비극, 어머니로부터 학대받고 버림받은 그의 과거는 형제들을 죽이고 제위에 오를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역사 속 광종을 설명하기에 턱도 없이 미흡하다. 윤진의 잔인성을 복제했으나 설득력을 잃어버린 왕소의 성격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미친 듯이 빛나야 할 그를 부모의 사랑과 인정욕, 흉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광종을 피에 굶주린 미친 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노비개혁을 시행하고 호족제를 철폐한 개혁적인 왕으로 그릴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이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무엇을 바라느냐고 하겠지만 이 점이야말로 역사를 기반으로 창작했다고 우기고 있는 이 드라마가 지켜야 했을 최소한의 미덕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 아닌 픽션임을 강조하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김성윤, 백상훈 연출, 김민정, 임예진 극본)은 훨씬 양심적이다. 네이버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윤이수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역사와는 관계 없는 픽션임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많은 부분이 역사의 기록과 다르며 각색 과정에서 여러 부분이 변경되었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워진 역사의 빈틈은 드라마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여주인공 홍라온이 남장을 하고 내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효명세자 이영의 고뇌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대결하면서 설득력을 획득한다. 물론 당대 세도정치의 대표격인 김조순과 조만영은 김헌과 조만형이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대체되면서 논란에서 슬쩍 비껴간다. 그렇지만 홍경래의 난, 정약용의 사상, 효명세자의 개혁정치라는 역사 속 중요한 사건과 가치는 주인공들의 삶에 깊이 개입된다. 남녀의 로맨스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역사의 거대한 급류 속에서 어떻게 휩쓸리고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로맨스 드라마가 역사를 소비할 때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태도를 보여준다.

대중의 취향에 기댄 로맨스물에서 역사가 실제 사실과 완벽히 일치하거나 부합될 필요는 없다. 시청자들은 로맨스 드라마를 통해 남녀주인공이 만들어내는 뜨거운 ‘케미’만을 즐길 것이고, 주인공을 둘러싼 배경은 로맨스 진행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역경으로만 소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저 시대와 장소만 과거로 설정한 고전 멜로물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간편히 소비하는 일부의 태도는 분명 문제다.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며, 소설이나 드라마야 어차피 픽션이다. 역사를 소재로 했다고 해서 역사 그 자체의 재연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역사라는 말을 끌어들이는 것이 결코 단순하고 만만한 문제로 치부되어서도 안 된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현대물과 다른 것은 이 시점에 왜 이러한 이야기가 다루어지는지에 대한 필연적 이유가 이야기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역사를 통해 풍자하지는 못하더라도 역사를 운운하는 드라마라면 기억해야 할 최소한의 미덕이다.

역사의 진정한 주체를 발굴하려는 자세만 놓고 본다면, 홍경래의 난을 민중의 봉기로 형상화하면서 백성이 만들어가는 군주의 상을 그려내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고려 초기의 개혁정치를 로맨스의 부산물로만 취급해버린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 비해서 훨씬 더 긍정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myvivian97@daum.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