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대결·칠드런 오브 맨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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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42면   |  수정 2016-09-23

대결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20160923

풍호(이주승)는 현피(SNS와 인터넷 등으로 알게 된 사람과 현실에서 만나 싸움을 벌이는 것)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어느 날, 현피에 의한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던 형 강호(이정진)가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무술 자격 도합 공인 22단을 자랑하는 그가 말이다. 현피 중독자인 게임회사 CEO 재희(오지호)의 짓이다. 이성을 잃은 풍호가 그를 찾아가 합을 겨뤄보지만 심각한 내상과 함께 현격한 실력 차이만 확인하고 돌아온다. 형의 복수는 물론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도 그를 반드시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 풍호는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황 노인(신정근)을 사사하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현피’ ‘취권’ 소재로 한 통쾌한 오락액션물
주짓수 등 한국적 재해석…클럽 결투신 압권
액션·스릴러·코미디의 유기적인 조합 눈길



‘대결’은 착한 주인공과 악한의 대결이라는 단순명료한 액션영화의 구도를 취한다. 때문에 주인공 풍호가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는 취업준비생으로 설정됐지만 이는 기능적으로만 소비될 뿐, 그를 통한 청년세대의 녹록지 않은 현실까지 반영하려는 의도는 엿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21세기로 소환된 80년대 홍콩 무술영화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영화 ‘취권’의 오마주로 봐도 무방할 ‘대결’은 그렇게 무술영화의 전통적 소재인 가족(형제)의 복수 서사를 현피와 접목시켜 그 자체가 주는 오락적 요소와 재미를 향해 달려간다.

정공법을 택한 단순한 접근방식은 주효했다. 짐작하겠지만 액션을 표방한 ‘대결’은 이야기의 완성도보다는 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개성과 그들이 빚어내는 합이 더 매력적으로 작용하는 영화다. 주먹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치기 어린 풍호는 그 점에서 과거 무술영화의 주인공(성룡) 모습과 꼭 닮았다. 현실에선 보잘것없는 ‘루저’에 가깝지만 현피 세계에선 ‘당산대형’이라는 닉네임처럼 고수로 통하는 그다.

하지만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재희도 그중 하나다. 스스로를 절대 갑(甲)이라 생각하는 그는 자신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그 역시 무협영화에 항상 등장하던 절대악으로 위치한다. ‘대결’은 그런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이쯤되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한 명있다. 바로 성룡의 스승인 소화자다. ‘대결’에선 황 노인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취권쿵푸의 저자이자 한때 액션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지금 비록 술독에 빠져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절대무공을 지녔다.

황 노인은 형의 복수를 위해 무술을 전수해 달라고 애원하는 풍호를 마지못해 거둬들인다. 이를 기점으로 ‘대결’은 본격적인 ‘취권’ 흉내내기에 들어간다. 다만 이들의 무도 수련 과정은 “막걸리에 밥을 말아 먹을 정도가 돼야 한다”식의 위트 있는 대사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적당히 버무린 엉뚱한 밀당으로 담겨진다. 미덕이라면 액션과 스릴러, 코미디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삐걱거리지 않고 나름 조화를 이뤄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중 압권은 액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풍호와 재희의 클럽 결투신이다. 러닝타임 내내 등장했던 실랏, 유도, 합기도, 태권도, 주짓수는 물론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새로운 취권의 모습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실로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화끈하고 시원한 액션 영화다.(장르:액션 등급:15세 관람가)


칠드런 오브 맨
모든 여성이 불임인 세상


20160923

인류가 임신 능력을 상실한 지 18년째 되는 2027년 영국 런던. 대부분의 국가가 무정부 상태로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군대가 존재하는 영국만이 힘들게 문명적 삶을 지탱해오고 있다. 때문에 영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불법이민자 사냥을 벌이고, 이에 맞선 저항조직은 테러와 납치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려 한다.

한때 반정부단체의 일원이었지만 아들이 죽은 후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 적당히 몸을 맡긴 채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테오(클라이브 오웬). 어느날 저항단체의 일원인 피쉬단에 납치당한 그는 전 부인이자 저항단체 리더 줄리안(줄리안 무어)을 만나고, 그녀로부터 한 이민자 흑인 여성인 키(클레어-호프 애시티)의 통행증을 부탁받는다. 놀랍게도 키가 임신 상태임을 알게 된 테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 키의 안전에 달려있다고 생각한 그는 정부와 저항조직 양쪽의 추격을 피해 그녀와 함께 국경의 바다를 향한다.


2027년 종말 앞둔 인류에 기적 안고 나타난 한 소녀
알폰소 쿠아론 감독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담은 걸작
원작 소설과 차별화…후반부 12분 롱테이크 인상적



‘칠드런 오브 맨’은 더 이상 생명이 잉태되지 않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시종 묵직하게 담는다. ‘그래비티’(2013)로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의 두 번째 합작품이다. 영국에서 2006년 9월22일에 개봉했지만 국내에서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전쟁, 혁명, 폭력, 탐욕을 아우른 흥미진진한 액션영화의 외피를 갖췄지만 영화는 날카로운 정치 의식을 에둘러 숨기지 않는다. 세계관 역시 지극히 현재적이고 국제정치에 대한 동시대적인 통찰을 담는다.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이민제한 정책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투영된 모습은 그래서 섬뜩하다. 아기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묵시록적 세상의 은유 또한 현 세대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이자 경고다.

P. D. 제임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지만 ‘칠드런 오브 맨’은 믿음을 근거로 희망을 꿈꿨던 원작과 차별을 꾀한다. 작정하듯 기존 SF영화의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미래상도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인종과 계급에 따른 차별과 폭압, 질병과 공해, 죽음과 공포 등을 배치해 이 모습이 근미래의 암울한 현실적 상황이라고 설파한다. 영화가 유일하게 희망을 거는 건 소외되고 가난한 흑인 엄마와 그녀가 출산한 아기다.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척박한 환경에 내몰린 그녀를 테오가 보호하려 애쓰지만 관객은 그 희망이 꺼질까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건 남성을 대신한 줄리안과 집시 여인 등 평범한 여성들의 활약상이다.

시종 우울하고 절망적인 미래가 그려지지만 후반부 펼쳐지는 12분가량의 롱테이크는 기적의 경이로움을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정부군, 반란군, 이민자, 노숙인들이 뒤엉켜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날아드는 지옥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과정에서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일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이 장면은 전장에 생명의 존엄성이 울려 퍼지는 장엄한 순간을 그 어떤 방법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더불어 빛을 잃어 잿빛으로 변한 바다와 희미한 불빛, 흔들리는 보트의 모습으로 불안하게 끝나는 마지막 장면 역시 깊은 잔상을 남긴다.(장르:액션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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