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범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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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43면   |  수정 2016-09-23
스토리텔링의 조탁 아쉬운 ‘어설픈 한판승’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범죄의 여왕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범죄의 여왕

아들바보에 아줌마 수사반장이 등장하는 ‘범죄의 여왕’은 충무로의 저예산 영화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다.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에 이어 이요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번 영화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억척근성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여류탐정적 촉각을 신림동 고시촌의 생태학적 조감도에 버무려 스릴러와 코미디의 혼종교배를 시도한 역작이다.

지방에서 미용실을 경영하며 불법 성형시술로 사시 공부하는 아들 익수(김대현)를 뒷바라지하던 미경(박지영)이 익수의 수도요금 120만원에 얽힌 흑막을 파헤치려 상경하면서 펼쳐지는 영화의 스토리는 소시민 인간군상과 연관된 생활밀착형 플롯을 지향한다. 따라서 숱한 사연의 고시촌 인생들이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아들을 위한 일념으로 시골 미장원 주인에서 열혈 탐정 역할을 마다 않는 미경은 차치하고 우선 고시원 관리사무소 직원 개태(조복래)를 빼놓을 수 없는데, 애펄레이션(appellation; 작명)부터 심상찮은 그는 야성과 감성을 겸비한 두 얼굴의 사나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개처럼 태어났대서 스스로를 ‘개태’라 부르는 그의 야성은 관리사무소의 충복으로 기능하게 했으나 아들 또래를 모성으로 대하는 미경에게 끌린 후부턴 그녀의 훌륭한 조력자로 변신해 복마전 같은 고시원의 미스터리를 풀어헤치는 보조탐정이 되게 한다. 아줌마 탐정과 청년 보조탐정의 조합은 이 영화를 스릴러의 진중함에서 비켜나게 하는 요긴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 모든 사단(事端)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사시 2차에 열 차례나 낙방한 ‘십시’인 403호 거주자 하준(허정도), 24시간 방 안에 칩거하며 게임에만 몰두하는 공시생으로 경찰서장의 딸이기도 한 402호 거주자 진숙(이솜), 고시원의 특급레이더로 모든 주변인을 관찰하는 괴짜 고시생인 301호 거주자 덕구(백수장), 그리고 갑자기 상경해 결전(사시2차)을 앞둔 아들을 자극하는 엄마가 못내 못마땅한 404호 거주자 익수(김대현) 등 등장인물의 면면은 고시원 어느 구석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그럴듯함’(plausibility)과 함께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끽하게 하는 ‘전형성’(typicality)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처럼 고시원 인생들의 생활밀착형 서사를 통해 나름의 저력을 보여주곤 있으나 스토리텔링의 조탁엔 아쉬운 면이 없잖다. 저예산독립영화의 대부 코엔 형제의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Blood Simple)’(1984)에서 보이는 바처럼, 좀 더 치밀하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오묘한 스토리와 중첩된 플롯을 기대했던 필자에겐 어설픈 한판승 같은 떨떠름함이 전해졌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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