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송강호와 공유가 경성행 열차서 만났을 때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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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43면   |  수정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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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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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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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극장가 점령한 김지운 감독 ‘밀정’
충무로 대표 스타일리스트 감독作으로
개봉 12일 만에 600만…거침없는 질주

배우 송강호와 데뷔작 이후 네번째 호흡
의열단 役 ‘천만 배우’ 공유 합류로 탄력
두 배우의 열차신 기시감 못내 아쉬워


전통적으로 설과 추석 연휴 기간은 여름 시즌과 더불어 극장가의 대목이다. ‘천만 영화’가 나오는 게 대단한 뉴스가 되지 않을 만큼 한국 영화계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분명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여름 시즌이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전쟁터라면 명절 극장가는 가족들이 모여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들이 대세를 이룬다. 전체 관람가나 15세 관람가 영화를 아무래도 극장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추석 극장가의 화제작은 단연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와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었다. 같은 날(7일) 개봉한 것도 그렇고, 두 감독 모두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가진 중견 감독이면서 한국 장편상업영화로는 상당히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관객수만으로 평가하자면 김지운 감독이 강우석 감독을 압도했다. 19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밀정’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며 누적 관객수 604만8천740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개봉 12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인데, 이는 천만 영화 ‘변호인’(14일)과 ‘국제시장’(16일)이 세운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하며 누적 관객수 85만2천292명을 기록했다.

김지운 감독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를 중퇴하고 연극 무대와 CF 아트디렉터 작업을 하던 그는 1993년 이성수 감독의 ‘어린 연인’ 연출부를 거쳐 1997년 제1회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조용한 가족’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코믹 잔혹극을 표방한 하이브리드 장르물인 이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해 “10년 백수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1998년 개봉한 ‘조용한 가족’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역대급 캐스팅(송강호, 최민식, 박인환, 나문희)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냈다. 또 당시 관성적인 한국 영화계에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김 감독의 이름을 평단과 관객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이후 김 감독은 다시 송강호와 함께 2000년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슬픈 코미디 ‘반칙왕’을 만들어 호평을 이어갔다(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과 ‘꼭짓점댄스’로 유명해지기 전 김수로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다). 2003년엔 ‘장화, 홍련’으로 호러영화로는 기록적인 관객수를 동원하며 주연을 맡은 배우 문근영과 임수정을 스타덤에 올리기도 한다. 특히 이 영화가 2009년 미국에서 리메이크되면서 김 감독은 국제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배우 이병헌과의 첫 작업으로 2005년 누아르 ‘달콤한 인생’을 만들어 스타일리스트로서 인장을 굳히기도 했다. 이미 작업한 바 있는 송강호, 이병헌에 이어 2008년 배우 정우성과 함께 만든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으로 블록버스터급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고, 2010년엔 ‘신세계’와 ‘대호’를 만든 박훈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하드코어 스릴러 ‘악마를 보았다’를 최민식, 이병헌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2013년 (무려)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B급 코드의 영화적 재미를 서부극에 버무린 ‘라스트 스탠드’를 연출해 영화 ‘스토커’를 만든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밀정은 ‘조용한 가족’ ‘반칙왕’ ‘놈놈놈’에 이어 김 감독이 송강호와 함께 하는 네 번째 작업이다. 새롭게 배우 공유가 합류했고, 김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이병헌이 특별출연했다.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인 출신으로 조선총독부의 경무국 경부가 된 이정출(송강호 분)은 상부로부터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을 받아 고미술상을 위장 운영하는 의열단 김우진(공유 분)에게 접근한다. 식민지 시대의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와 의도를 알면서도 속내를 감춘 채 가까워진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쌍방 간에 새어나가고 누가 밀정(스파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의열단은 폭탄을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반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일본 경찰은 그들을 쫓는다.

영화는 당시 실재했던 ‘황옥 경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22년 3월, 의열단 김시현은 경기도(경성) 경찰부 고등경찰계 소속의 황옥 경부의 도움을 받아 상하이에서 운반된 폭탄과 유인물을 경성으로 옮기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일본은 곧 황옥을 포함한 폭탄 운송 관련자 18명을 체포했고, 달아난 김시현도 경찰에 붙잡혔다. 법정에서 황옥은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 경찰 당국에 분개했다고 한다. 폭탄이 경성에 들어오길 기다려 경성에서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고 폭탄을 압수해 공을 세우기 위한 계책으로 의열단에 거짓으로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황옥의 이 발언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아직도 학계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황옥 경부가 느꼈을 다양한 감정들을 훌륭히 표현한 송강호의 표정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의열단 단원으로 분한 공유, 한지민, 신성록 같은 배우들의 호연뿐 아니라 특별출연한 이병헌 역시 10분이라는 짧은 출연시간에도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불과 두 달도 전에 ‘부산행’으로 천만명 넘는 관객들에게 연기를 노출한 공유와 2013년부터 ‘변호인’ ‘설국열차’ ‘관상’ ‘사도’로 숨가쁘게 달려온 송강호가 함께 나오는 열차신에서 내내 느껴지는 기시감을 어쩌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와 대립하는 일본 경찰 하시모토로 분해 송강호에 밀리지 않는 인상적인 악역연기를 보인 배우 엄태구가 송강호 못지않게 돋보였다. 엄태구는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10년차 배우다. 친형이 영화 ‘잉투기’를 연출한 엄태화 감독으로 충무로에선 ‘제2의 류승완, 류승범’으로 진작부터 불렸다. 천만 영화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배우들을 만나고 싶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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