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만으로 자유롭게 영업…법적 제재에 구멍, 솔깃한 “高수익 보장” 유사투자자문업체 경보

  • 노인호 김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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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4   |  발행일 2016-09-24 제11면   |  수정 2016-09-24
피해건수 작년보다 43.6% 증가
20160924
그래픽=김유종기자 dbwhd@yeongnam.com

최근 술집 웨이터와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주식투자로 거부가 됐다며 경제방송 등에서 이름을 날렸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30)가 사기혐의로 구속되면서 유사투자문업에 대한 주의보가 내려졌다. 허위정보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뒤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가 유사투자자문사 미라클인베스트먼트를 설립, 이를 통해 투자자를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유사투자자문업은 신고만으로 할 수 있어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이를 자세히 모르는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에 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검증된 업체인 것으로 현혹돼 사기행각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련 자격증 등을 갖추고 유사투자자문에 나서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유사투자자문업체수 해마다 늘어 1100여개
상당수 직원 1∼2명 소규모 사무실도 없어
금융당국은 인력부족으로 관리·감독 소홀
“규제 강화땐 음성 피해” 대안 마땅치 않아
“투자자 스스로 꼼꼼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 신기루였던 청담동 주식부자

청담동 주식부자라는 별칭을 얻은 이씨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아싸’라는 닉네임의 주식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장외주식 투자로 몇년 만에 수백억원을 벌었다는 이야기들이 퍼졌고, 여기다 주식투자 관련 방송까지 출연하면서 제대로 검증을 받은 전문가라는 인식이 쌓였다.

그가 어떻게 장외주식으로 수익을 올렸는지 정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지만, 피해자와 장외주식사이트 이용자 등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2008년 스카이라인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이씨는 주식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 5천만원을 벌었다. 이 돈을 종잣돈으로 장외주식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는 것. 이때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주식전문가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경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인터넷 유료 방송을 하며 회원을 상대로 주식 강의를 하기도 했다. 2014년 유사투자자문사인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지난해 미라클 홀딩스, 미라클 E&M, 미라클 해운을 설립한 데 이어 올해 미라클 위즈까지 세웠다.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주식투자로 벌어들인 돈으로 구입했다며 국내에 한 대밖에 없는 슈퍼카, 수영장이 딸린 강남의 호화 건물 등을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주로 장외주식시장에서 활동했다. 비상장주식은 개인 대 개인 간 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의 경우 불특정 다수와 거래가 이뤄지지만,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한 비상장 주식은 개인간 거래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다. 즉, 상장된 주식처럼 가격 결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시세를 참고해 개인들이 정해서 거래를 하는 식이다. 특히 비상장주식은 상장주식과 달리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도 내야하는 탓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은밀하게 거래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으로 구속됐을 때 “상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 20만원까지 오를 수 있다”며 추가 매수를 유도했다. 이에 이씨가 운영하는 인터넷 유료 방송 사이트 회원들은 지난해 7월 주당 17만원에 이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해당 기업 대표의 형사처벌로 상장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22일 현재 장외시장에서 이 회사 주식 가격은 3만2천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 신고만 하면 영업 가능한 유사투자자문업

이씨 외에도 검증되지 않은 유사투자자문 업자들로 인한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현재 유사투자자문업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에 등록하고 정식으로 제도권 투자자문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과 전문인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유사투자자문업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별다른 자격조건이 없는 것은 물론 금융감독당국에 신고만 하면 이렇다 할 조사나 규제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들이 현행법상 정식 금융회사에 속하지 않아 금융조사당국이 이들을 수시로 조사하거나 감독할 수 있는 법적근거도 없다. 물론 직접 수익을 올려주겠다며 투자금을 받는 행위는 유사수신 행위로 처벌을 받지만, 유료회원을 모집해 사실상의 투자자문료를 받아챙기는 것은 막지 못한다.

신고제를 도입한 것도 과거에 신고 없이 영업을 하는 소규모 사설 투자자문업체 때문에 피해자가 속출, 이들을 양성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금융당국에 신고한 업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린 이씨가 운영한 미라클인베스트먼트도 금감원에 신고된 업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감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 업체들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2일 현재 금감원에 신고된 유사투자자문 업체의 수는 1천100여개에 이른다.

금감원 홈페이지는 정식으로 등록된 투자자문사인지 여부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확인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또 등록허가를 받지 않은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이 보다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어, 알면서도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 커져가는 관련법 개정 요구

유사투자자문사 중 상당수는 직원 1~2명 정도의 소규모업체인 데다 사무실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 이런 탓에 금융당국이 이들 업체를 관리·감독하려고 해도 인력과 시간이 부족해 세밀한 모니터링이 힘든 게 현실이다.

이러는 사이 투자자를 유혹하는 손길들은 넘쳐나고 있다.

인터넷신문위원회가 203개 인터넷신문 매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상반기 광고 자율심의 결과, 자율규약을 위반한 총 4천18건의 광고 가운데 절반가량(47%)인 1천876건(47%)이 유사투자자문업이나 로또 정보 사이트 등 금융 관련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금융 관련 광고를 상품 유형별로 보면 유사투자자문업이 절반 이상(52%)인 983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혹에 흔들려 피해를 보는 이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투자정보서비스 이용 관련 피해구제 신청이 전년도 140건에 비해 43.6% 증가한 210건이었고, 올해 상반기에만 91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접수된 292건의 피해구제 신청을 분석한 결과 위약금 과다 공제나 계약해지 거절 등 계약해지 관련 피해가 77.8%(227건)로 가장 많았고, 계약불이행이 20.2%(59건)로 뒤를 이었다. 계약해지 관련 피해는 해지 시 사업자가 위약금을 과다하게 공제하는 사례가 67.8%로 가장 많았다.

주식투자정보서비스는 휴대전화(문자메시지 또는 SNS)로 제공되는 경우가 58.1%(139건)로 가장 많았고, 계약기간도 6개월 이하가 58.9%(139건)로 가장 많았다.

유사투자자문업은 자본시장법상 일대일 투자상담이나 금전대여, 중개, 비상장주식 투자중개 등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런 만큼 과장된 수익률을 제시하거나 정보이용료, 환불 기준 등을 명확하게 알리지 않는 업체는 주의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런 탓에 유사투자자문업과 관련한 감독과 규제 권한 강화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용태 국회의원은 “신고 절차만 거쳐도 영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 탓에 많은 유사투자자문업체들이 마치 정식으로 등록을 거친 것처럼 회사를 포장, 피해를 당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이런 피해가 더 늘어나지 않도록 유사투자자문업을 제대로 규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당장 규제를 강화하면, 신고조차 하지 않고 더 음성적으로 영업에 나서 피해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신고라도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실태 파악이 가능하지만, 등록이나 허가제 등으로 요건을 강화할 경우 교묘히 불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투자 전문가들은 “정치권 등에서 제도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데다 현실적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투자자 스스로가 유사투자자문업자의 경력이나 투자수익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신중히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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