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한국식물생태보감 2권 출간’ 계명대 김종원 교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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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8 08:16  |  수정 2016-09-28 15:37  |  발행일 2016-09-28 제29면
“日에 왜곡·각색된 고유의 식물이름 되찾기 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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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식물생태보감을 출간한 김종원 계명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우리주변 식물의 생태와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식물도 자연 속 상호의존적인 삶
식물-식물, 식물-인간 관계 연구
2년4개월 만에 시리즈 2권 발간
‘나물문화’ 민족…풀밭식물 소개
각 식물 생태 10년간 10권 계획


“가시박이 생태계 교란 식물이라며 제거작업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사실 가시박은 인간이 저지른 난개발 지대 하천이나 제방, 황무지 등지에 사는 식물입니다. 인간들이 할퀴고 파헤치고 상처 낸 땅에 딱지 같은 역할을 하는 귀화식물이죠. 외래종인 돼지풀과 미국자리공도 이미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식물은 죄가 없어요. 이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사실 가시박보다 더 지독한 식물은 칡입니다.”

김종원 계명대 생명과학과 교수(60)는 식물과 식물, 식물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식물사회학자다.

“식물은 자신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조건에서 동료식물과 어울려 삽니다. 그게 바로 생태예요.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물에도 삶의 역사가 있고 삶의 꼴이 있습니다. 예컨대 야고(담배대더부살이)는 전형적인 기생식물인데 숙주식물에서 기생을 받아 줄 어떤 화학적인 신호가 있어야만 기생이 가능합니다. 기생을 결코 나쁘다고 할 순 없는 거예요. 자연은 절대 상호의존적입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국식물생태보감 제2권(풀밭에 사는 식물)을 출간했다.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 제1권(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식물의 삶꼴과 사회를 서식처별로 톺아보는 한국식물생태보감 시리즈를 내기 위해 10년간 10권을 발행하기로 작심하고 2년4개월 전에 1권을 출간 한 바 있다.

“제2권은 땡볕 아래 형성된 풀밭에 사는 식물 501종을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풀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나물문화’ 때문입니다. 나물의 역사가 오롯이 풀밭에 남아있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자연초원식생은 절멸위기 상태입니다. 그나마 무덤의 봉분이 주요 식물자원의 거처이고 피난처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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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물생태보감 제2권 ‘풀밭에 사는 식물’.

그는 기자에게 제2권에 나오는 도라지, 참산부추, 복주머니란, 자란, 타래난초 부분만은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에는 각 식물의 형태·생태별 분류에다 이름사전과 에코노트를 집어넣었다. 식물에 사회학, 언어학, 역사, 문화사, 유전·진화학 등의 정보가 들어있어 이들 학문에 대한 기초가 없으면 쓰지 못할 내용이다. 그가 식물학자이면서도 인문학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감이 아닌 ‘보감(寶鑑)’으로 명명한 것도 형태가 아닌 생태, 식물 생명의 얼개를 삽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의보감(東醫寶鑑)’도 ‘도감’이 아니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김 교수는 오랜 세월 식물의 생태를 연구하고 식물과 민족의 관계를 추적해 왔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저서만도 20권이 넘는다. 그는 하지만 식물이 과학적 소품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학술적으로 일제유산을 지금껏 베낀 사실에 대해 성찰한다. 학문적 진실과 사실을 따지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식물의 우리말 이름이다.

“식물의 우리 이름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식물 이름의 한자 표기 역사가 길었고 근대 일본 분류학자에 의해 왜곡되고 각색되면서 고유의 이름이 전승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이젠 영어와 뒤범벅이 된 상태죠.”

김 교수는 후학들에게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길 원하는 마음에 수많은 문헌을 뒤지며 본래 우리 식물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턴 삭발을 하고, 직접 머리를 깎는다. 공부에 맛을 들여 머리 깎을 시간도 아깝단다. 식사도 채식으로 바꿨다. 수도승같이 ‘셀프왕따’가 되기로 한 것. 그는 학교, 조사 현장, 집 이외에 다른 곳은 가급적 출입을 자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8권(바닷가에 사는 식물, 암벽·바위에 사는 식물, 습한 땅에 사는 식물, 개척 땅에 사는 식물, 낙엽활엽수림에 사는 식물, 상록활엽수림에 사는 식물, 아고산·고산지대에 사는 식물, 분포특이식물)을 더 출간하기 위해선 1분1초를 허투루 쓸 수 없다.

김 교수는 경북대 생물학과(77학번)를 졸업하고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에서 석사,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요코하마대 시절 스승 미야와키 아키라 박사를 만난 뒤 인생의 좌표를 결정했다.

“스승이 일본식생지 전 10권을 완간했습니다. 그야말로 일본 식물학의 보물창고인데, 일본 전역의 식물을 지방별로 역사적 문화적으로 분류한 책입니다. 자연역사서라고 할 만하죠. 관동해양식생부문엔 저도 공동으로 참여했습니다. 한국식물생태보감시리즈를 완간하고 난 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한반도의 지역별 식생지를 쓰고 싶습니다. 선진국에선 이미 다 해 놓은 것들입니다. 개발할 지역과 보존할 지역의 잣대가 될 연구인데 우린 그런 게 없습니다. 그저 희귀종이 있다 없다고만 할 뿐이에요.”

김 교수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작업을 홀로 하는 셈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가나 관의 도움 없이 오히려 핍박 속에 작업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전 연구비 신청 한번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학계는 SCI논문게재 같은 것만으로 교수를 평가하고 있어요. 잘못된 관행이지요. 앞으로 역사가 이 시대 대학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합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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