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리다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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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9   |  발행일 2016-09-29 제30면   |  수정 2016-09-29
[취재수첩]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리다

재난은 인류의 역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이 가운데 지진이나 해일, 태풍, 가뭄, 장마 등 자연현상에 의해 빚어지는 재앙은 불가항력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NHK의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대지진의 참상은 끔찍했다. 도로는 갈라지고, 건물은 무너졌다. 밀어닥친 쓰나미에 마을은 초토화됐고, 원전은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우리는 예측불가의 재앙이 평온한 일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모습을 생생히 뉴스로 지켜봤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진은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었다.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맹신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맞았을 수도 있다. 과거 기록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규모 7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현세대는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큰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학자들의 경고도 비슷한 맥락으로 무시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웃 나라에선 일상사로 받아들일 만한 규모의 진동에 온 나라가 후들거린다. 각종 지진 관련 루머와 불안감이 사회 전반을 엄습한 탓에 사람들은 ‘작은 흔들림’에도 공포에 떨고 있다.

한국이 지진에 거의 무방비 상태라서 강진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란 점도 드러났다. 경보 시스템부터 구멍이 뚫려 있다.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는 규모 5.8 지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라마를 내보냈다. 폭염이나 미세먼지 특보를 수시로 날리던 국가안전처가 재난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오려나 싶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국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진 대피요령을 공유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 사태는 지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지진에 대해 안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반도를 뒤흔든 지진이 원전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고리·월성 핵발전소의 전면 가동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원전과 그 원전의 위험에 대한 불감증을 강요하고 있다. 지진 위험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땐 ‘탈원전’의 여론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밀어붙이기 식으로 핵발전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진 공포는 한반도를 뒤덮었다.

핵발전소는 지진에 뒤따르는 위험성이 가장 큰 시설물이다. 활성화한 ‘양산단층’ 일대의 원자력발전소는 2021년 완공 목표인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하면 총 16기에 이른다. 만약 원전 내진설계 기준(규모 6.5)을 넘어서는 강진이 발생한다면 인명·재산 피해에 그치지 않고 국가 존립을 뿌리째 흔들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서다.

지금까지 지진에 무지했던 것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맹신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이제는 지진 재해 예방 안전 대책을 새로 짜야 한다. 언제까지 시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한 채 ‘생존 배낭’ ‘SNS’를 믿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할까. 천재지변이 인재지변으로 뒤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은 틀리다.손선우 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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