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전국DJ경연 ‘마성의 끼’로 좌중 압도…김광한 “서울서 함께하자” 제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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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34면   |  수정 2016-09-30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레코드판깨나 돌린’ DJ 김병규
이후 은좌 등 다운타운 최고몸값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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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음원시대’라 음반을 보기 힘들어졌다. 방송국 자료실에 꽂힌 각종 음반을 품에 안을 때 DJ는 더없이 행복하다.

1976년경 문을 연 코리아 백화점 3층 코리아 음악감상실.

인테리어는 극장식이었다. 정면 상단부에 설치된 뮤직박스는 마치 항공관제탑 같았다. 당시 DJ들은 다들 그곳에 앉고 싶어했다. 하지만 오디션이 무척 까다로웠다. 견습기간(판돌이 DJ)을 포함해 최소한 1년 정도 수업을 받아야 정식 DJ가 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나흘 정도 대타로 일하다가 단번에 정식이 됐다. 고기가 물을 만났다고 할까. 나는 유머와 개성짙은 몸짓으로 손님들을 쥐락펴락한다.

 ‘대구 DJ계 전설’ 친형 김진규 만류에도
제대 무렵 코리아음악감상실서 ‘데뷔’
나흘 ‘땜빵’서 단박 정식 꿰차는 기염
이후 은좌 등 다운타운 최고몸값 인기
열혈팬 미스경북 출신 여성 자살소동도

78년 KBS ‘오후의 음악실’서 마이크
96년까지 방송 음악프로그램 DJ 활약
음악감상실 열어 유강국 등 후진 발굴
한때 공연기획·라이브카페 사업 고배
99년 TBN 개국과 함께 다시 라디오로


◆은좌다방 시절 자살소동

코리아에서 2∼3년을 보낸 뒤 동아백화점 맞은편 미도방 옆 골목에 있던 ‘은좌’로 옮긴다. 거긴 시설도 좋지 않고 손님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하지만 내 타임만 되면 시장골목처럼 왁자지껄했다. 그때 평생 잊지 못할 해프닝도 경험한다. 은좌 시절, 나를 짝사랑했던 미스경북 출신의 한 여성팬이 있었다. 하지만 소심한 그녀는 내게 프러포즈 한번 못한 채 속만 끙끙 앓다가 음독자살을 시도한다. 어느 날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유서에 김병규란 이름이 적혀 있은 탓이다. 응급실로 달려가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짜고짜 ‘내 딸 살려내라’며 내 뺨을 때렸다. 다행히 의심도 풀렸다. 그녀는 위세척을 하고 1주일 만에 회복했다. 그녀는 나를 몰래 찾아와 사과하며 ‘추억으로 생각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은좌시절 내 몸값은 지역 다운타운가에선 최고였다. 월급도 1급 DJ가 받던 6만∼7만원보다 더 많은 30만원선이었다. 당시 황금아파트 11평형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0만원 정도 했다. 나는 이후 반도다방, 미도방 옆 둘반 레스토랑, 해오라기, 대학가 쪽의 다방까지 훑고 다닌다.

그런 어느날 KBS대구방송총국 박영규 PD로부터 연락이 온다. 방송DJ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78년 1월 오후 1시 AM ‘오후의 음악실’을 시작으로 96년 10월까지 20여년간 추억의 팝송, 팝스 팝스, 팝스 원, 7시의 데이트, KBS오픈스튜디오 등의 다양한 프로를 진행했다.

나는 방송국에 있으면서도 다운타운과도 소통했다. 81년 전국DJ콘테스트가 동아백화점 맞은편 미도방 옆 골목 안 반도다방에서 열렸다. 나도 출전하고 싶었지만 당시 KBS 프리랜서 DJ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회 규정상 참가할 수 없었다. 반도다방 사장은 장사를 위해 나를 끌어들이고 싶어했다. 즉시 심사위원인 최동호·김광한 DJ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게스트로 참가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했다. 당시 전국의 쟁쟁한 DJ 10여명이 참가했지만 객석은 은근히 내 순서만 기다리는 눈치였다.

뮤직박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데스 메탈그룹 키스의 ‘I was made for loving you’를 소개했다. 악마적 이미지를 표방한 페이스페인팅이 인상적인 키스 멤버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리듬을 파도처럼 잡아타고 서핑을 시작했다. 괴성과 함께 오른손으로 허공을 찔러댔다. 서울보다 먼저 디스코DJ의 원형을 대구에서 선보인 셈이다. 손님들도 발로 박자를 맞추며 나에게 기꺼이 매료됐다. 참가한 다른 DJ들도 넋을 잃고 나의 기괴한 진행스타일을 지켜보았다.

75년부터 시작된 ‘2시의 데이트’ 진행자인 김기덕은 당시로선 튀는 DJ였다. 김기덕도 미국 최고의 DJ 울프맨 잭을 카피했다는 게 DJ계의 정설이다. 그날 나의 유별난 끼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김광한이 날 서울로 데려가려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당시 KBS FM 오후 2∼4시 ‘팝스다이얼’을 진행하면서 김기덕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던 김광한은 신라호텔 밑에 디스코텍을 만들고 그곳에 나를 전격 기용할 생각까지 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갓 결혼한 터라 고향을 떠날 계제가 아니었다.

85년쯤 옛 런던제과 바로 옆에 ‘김병규의 음악감상실’을 오픈한다. 형이 한일극장 맞은편에서 ‘스카브로’란 음악다방을 직접 경영한 이래 DJ가 직접 다방을 경영한 둘째 케이스였다. 김병규 음악감상실은 당시 지역 다운타운 DJ들의 견습코스였다. 실제 손님으로 와서 김병규풍을 배워 다른 곳에서 그대로 흉내내는 DJ들도 적잖았다. 빅토리아 음악감상실 시절(70년대 후반∼80년대 중반)도 결코 못잊는다. 주말 장기자랑 시간이 돌아오면 나는 미쳐버린다. 마이크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내가 진행하던 장기자랑 코너를 통해 뜬 사람도 있었다. 대구MBC 푸른신호등과 TBN대구교통방송 진행자인 연극인 유강국이다. 당시 영남대 미대 학생이었던 그는 특히 성룡의 취권 흉내를 잘내 DJ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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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 오전 9~11시 대구교통방송 인기 코너 ‘더 라디오’를 진행중인 김병규.

◆사업 좌절…낭만 DJ로 제2의 삶

일제강점기를 강타했던 SP 음반이 사라져가고 LP시대가 화려하게 개막되던 어느 날 나는 DJ가 됐다. 그리고 KBS 방송DJ를 거쳐 대구교통방송(103.9㎒) 심야프로인 ‘낭만이 있는 곳에’의 ‘낭만 DJ’가 되기까지 적잖은 부침의 세월을 보낸다. 나와 인연이 되지 않은 적잖은 일을 벌였지만 모두 허사였다.

96년 KBS 오픈스튜디오를 끝으로 방송DJ 시절을 마감한다. 돌아가신 연극인 이필동 선배가 신문사 창간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나더러 문화부 기자가 될 것을 권유했다. 우습기도 했다. 내가 무슨 기자! 그 신문이 제대로 창간됐더라면 팔자에도 없는 신문기자 생활도 해볼 뻔 했다.

난 공연기획에 관심이 있어 ‘탑이벤트’란 공연기획사를 차린다. 시내 킹덤오피스텔 내에 사무실을 두고 일을 추진한다. 당시 상당수 이벤트회사는 영세한 규모였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방송 대행 기획사’로 치고나갔다. 주로 대구경북 KBS 관련 각종 공개방송을 도맡아 진행했다. 지역 첫 외주제작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최백호, 해바라기 등 유명 가수 섭외는 물론 기획·연출·진행까지 감당했다.

당시 방송국 자체 제작 여건은 너무나 열악했다. PD가 극소수라서 어차피 외부 지원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난 그걸 사업적으로 역이용해 나름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울산 프로축구팀 오픈 행사도 진행했다. 이때 룰라, 스페이스A, 박상민 등을 불렀다. 요즘 돈으로 2억원짜리 공연을 수시로 처리했다. 회사 내에 수천명을 감당할 수 있는 20㎾짜리 대형 스피커도 있었다. 10여명의 직원을 데리고 3년간 100여회 행사를 쳐냈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벤트 회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나는 너무 빨랐다. 그동안 DJ를 통해 벌어두었던 돈을 다 탕진한다.

사업을 접고 음악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있는 참에 하상훈 사장이 경영하던 달서구 월성동 라이브카페 ‘솟대마을’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로는 DJ박스까지 갖춘 통기타 라이브카페였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팔공산 송림사 옆 ‘시인과 농부’, 달서구 상인동 ‘새들의 고향’ 등 숱한 통기타 라이브카페 붐이 일어난다. 당시 DJ는 추락하고 통기타는 급부상하고 있었다. 나와 대구MBC 별밤 DJ 유진혁 등 3명의 DJ가 솟대마을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식어가던 대구 DJ문화를 다시 불붙여 보려고 노력했다. 박강성, 이광조, 김범룡 등을 불러 월 1회 초대가수 무대를 올렸다. 대한민국 7080붐의 전조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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