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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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7   |  발행일 2016-10-07 제43면   |  수정 2016-10-07
‘인간심리해부 리포트’…밋밋한 후반부 아쉬워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밀정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밀정

1920년대 의열단의 폭탄 국내 유입사건을 한국형 첩보물로 리모델링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화제다.

영화는 1923년 사건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 고등계 경부였던 황옥이 일제의 밀정이었는지, 혹은 의열단의 비밀요원이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당시 의열단 리더 김시현과 연계된 혐의로 기소되었던 황옥은 재판 과정에서 의열단에 잠입해 외롭게 투쟁한 자신을 오히려 반역자로 모는 일경에 강력한 불만을 토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이 실사를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 통역요원 출신의 총독부 고등 경찰 이정출(송강호), 폭탄 유입의 의열단 책임자 김우진(공유)을 비롯해 경무국 부장 히가시(쓰루미 신고), 의열단 요원 김장옥(박희순), 연계순(한지민),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일경 간부 하시모토(엄태구) 등의 인물을 창조해 한 편의 스파이 스릴러로 깜찍스럽게 재구성하고 있다.

3·1만세 운동의 실패 이후 일제의 회유적 문화정치로 항일의지가 점차 소강상태에 접어들 무렵, 의열단은 헝가리 혁명가인 폭탄 제조 전문가와 손잡고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 경성으로 들여올 계획을 세운다. 그리하여 안둥과 신의주를 거쳐 폭탄을 들여오는 과정에 한때 독립운동 진영에 속했으나 변절한 후 일제 고등 경찰인 경부로 일하며 의도적으로 의열단에 접근한 이정출을 방패막이로 활용하기로 하고 작전 책임자 김우진은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영화의 플롯은 거사의 주축인 김우진, 연계순 등 의열단 그룹과 이를 저지하려는 히가시 부장 휘하의 하시모토 등 경무국 고등경찰의 신경전을 기본 뼈대로 이 사이에서 인간적 갈등을 겪는 이정출의 심리적 저변에 근원적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밀정’은 제목 그대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진영과 일경 사이의 첩보전을 소재로 하고 있으나, 그 외형적 서사구조의 이면에선 식민시대를 살아간 식민지 인사의 복잡다단한 양심 층위에 심층적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편의 인간심리 해부 리포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바처럼 절체절명의 나락에 내몰린 인간의 극한심리를 이처럼 다양한 포즈로 나열할 수 있는 배우는 카멜레온 캐릭터의 달인 송강호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조선인의 정체성과 현실적 입지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의 오만가지 표정은 시종 영화를 견인하는 동력으로 부족함이 없다.

허나 이미 꺼진 불씨를 밋밋하게 이어가는 후반부 스토리텔링의 전개엔 아쉬움이 많다. 실사와 다르게 이정출의 민족적 양심에 무게를 둔 대단원의 작위적 각색은 관객의 리얼리티와 상충된 반응을 일으키며 지루한 잔치가 끝난 뒤의 공허감을 안겨줄 뿐이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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