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홍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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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0 08:04  |  수정 2016-10-10 08:04  |  발행일 2016-10-10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홍옥

30∼40년 전만 해도 불로동, 지저동, 동촌, 반야월 등의 대구 인근에는 사과나무가 많았다. 그 당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던 대구 사과는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그렇게 유명하던 대구사과가 사라진 지는 오래됐고, 이제는 경산, 영천, 청도 같은 곳도 사과 농사가 안된다. 지구 온난화는 사과 재배지를 계속 북상시켰다.

사과 재배지의 이동과 사과 품종의 교체를 지켜본 사람들은 ‘홍옥’이 사라진 것에 특히 많은 아쉬움을 표한다. 홍옥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처음 재배되었고, 한국에 들어온 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품종이다. 익는 시기는 9월 말에서 10월이다. 모양은 둥글고 껍질은 빨갛다. 많이 익으면 검붉은 색을 띤다. ‘빨간 사과’란 바로 홍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홍옥은 새콤하면서도 달콤하여 사과 고유의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사과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홍옥은 사과 맛의 여왕이라고 말한다.

이런 홍옥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홍옥은 껍질에 크고 작은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병에 잘 걸리고, 수확 전에 낙과가 심하고 저장에 약하다. 골든, 국광 같은 예전의 품종도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8월 말의 ‘아오리’(쓰가루), 추석 무렵의 ‘홍로’를 거쳐 ‘부사’가 그 다음해 햇사과가 나올 때까지 대세다. 부사는 너무 밋밋하거나 지나치게 달다.

올해 7월 통계청이 밝힌 ‘2016년 5월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비경제활동 인구 중 취업준비자는 65만2천명이다. 그 중에 26만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다. 문제는 절대 다수가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만 찾는데 있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고용불안이 계속되다보니 직업의 안정성이 모든 다양성을 삼켜버렸다.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인문계 최상위권은 상경계, 자연계 최상위권은 의·치·한·수의학과에 몰린다. 상당수는 이들 학과에 목숨을 건다.

사과 농사에 비유하면 모두가 부사 농사만 짓겠다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고등학교가 일주일 내내 아침부터 밥 늦게까지 수업과 자율학습을 되풀이한다.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한다. 대한민국 대부분 학교가 부사 농사만 짓는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란 같은 품종의 사과를 두고 크기와 당도를 기준으로 물건을 고르는 것과 같다. 향후 3년만 지나면 전국 상위권 학생 대부분은 크기와 당도가 비슷해져 대학은 선발에 애를 먹을 것이다.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이 비슷하여 변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상품성 기준에 미달되는 부사처럼 나머지 학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물다양성은 인류의 생존과 생태계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시킬 것이고 궁극에는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 인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 전반에도 다양성이 보장될 때, 그 사회는 활력과 창의력이 유지되고 발전하게 된다.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겠지만 홍옥 같은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진 품종도 재배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즐겨 먹던 홍옥이 그리운 계절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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