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영의 잇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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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4   |  발행일 2016-10-14 제41면   |  수정 2016-10-14
‘질투의 화신’이 그리는 새로운 공동체, 그 공허한 환상에 대하여
[이민영의 잇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포스터

결속과 연대는 흔히 현대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공동체의 조건으로 꼽힌다. 유사성을 바탕으로 구성원이 결합하고 외부 집단과의 연대를 통해 확장되는 이 새로운 공동체는 결혼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혈연 중심의 전통적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지향을 가진다. 유방암에 걸린 마초남(조정석)과 생계형 기상캐스터(공효진)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 ‘질투의 화신’(서숙향 극본, 박신우 연출)은 결속과 연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유방암에 걸린 남자’라는 특이한 설정은 유방암이라는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남녀 구성원이 결속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유방암에 걸린 마초기자 이화신은 입원실을 함께 쓴 표나리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파란 줄 정규직 사원증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표나리는 수술 후 화장품을 싸게 사기 위해 이화신의 사원증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만큼 그와 가까워진다. 유방 수술이라는 유사한 경험을 통해 이들 사이에 놓였던 깊은 골, 남과 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와 가난 같은 사회적 계급 관계는 어느덧 소멸된다.

한편 ‘락(RAK) 빌라’라는 공간은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구체적 형태를 보여준다. 빌라에 살고 있는 표나리 남매는 아버지의 호적상 부인 조선족 홍단과 가족처럼 지내며, 빨강의 두 엄마 계성숙과 방자영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멈추고 가족이 된다. 심지어 빌라의 거주민과 관계자들은 혈연과 상관 없이 빌라를 중심으로 딸이 되고, 삼촌이 되고, 엄마가 된다. 전통적 가족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락 빌라에서 구현되고 있는데, 이때 이들을 묶어내는 것은 ‘가족은 함께 아침을 먹어야 한다’라는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가치다.

[이민영의 잇드라마]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

그런데 이 드라마 속 공동체는 양보와 사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투쟁을 통해 연대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공동체들과 그 결을 달리한다.

셰프 김락(이성재)은 자신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계성숙과 방자영에게 “사랑은 마음입니다. 서로 갖겠다고 싸우지 마시라”고 말하면서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에서 간계와 모략을 꾸미는 적대적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7시 일기예보를 차지하고 싶은 미인대회 출신 기상캐스터나 아나운서 며느리를 들이고 싶은 재벌가 사모님 등 표나리의 성공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장치가 있긴 하지만, 이들이 꾸미는 계략은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드라마 속 양보와 사랑의 연대는 대단히 거창한데,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한 표나리를 위해 재벌 3세 고정원과 정규직 이화신, 방송국 내 갑들, 퀵 배달부, 심지어 표나리를 몰아세우던 비정규직 기상캐스터들까지 계급과 계층을 넘어 모두 표나리를 응원한다. 그런데 이들의 연대에는 ‘무엇을 위한 연대인가’라는 목적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왜 그들은 모두 표나리를 아나운서로 만들고 싶어했는가. 표나리 한 명이 정규직이 되면 무엇이 해결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드라마 바깥 어디론가 슬며시 사라진다.

“남녀노소, 빈부격차, 정치에 관심이 있으나 없으나, 경제뉴스가 어려우나 쉬우나, 누구나 유일하게 관심 있어 하는 게 날씨!”라는 표나리의 말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침식사나 오늘의 날씨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라는 작가의 시각을 대변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야말로 연대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백남기씨의 죽음이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냐 병사냐’라는 정치 뉴스보다 오늘의 날씨가 더 중요한 것이라면, 그건 날씨가 더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일상이 전제되어야지만 가능하다. 과연 오늘 하루 우리의 일상이 평화로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드라마 속 표나리의 일상이 한국사회의 계급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중신(윤다훈)의 임종 장면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의 정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임종 직전 이중신은 1980년대 대표 민중가요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를 고발하고 있는 이 노래를 배경으로 즐겁게 춤을 추는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며 빙그레 웃는 이중신의 마지막 순간에서 가짜 차돌박이를 납품한 부도덕한 사업가의 반성 같은 것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라마는 결말까지 아직 꽤 남았다.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역설해온 정신적이고 일상적인 가치의 중요성이 무책임하고 공허한 환상에 불과할지 어떨지는 끝까지 가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떤 찝찝함이 이 드라마의 코믹한 이야기들 속에 끼어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myvivia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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