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대구역 앞의 총성… 이제는 진실을 마주할 때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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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5   |  발행일 2016-10-15 제16면   |  수정 2016-10-15
미군정의 경제정책 실패로 식량난
학생·노동자·시민 “쌀 달라” 항쟁
반공이데올로기, 사건 왜곡했지만
주권탈환위해 미군정·친일에 항거
전국으로 확산된 ‘제2의 3·1운동’
70년 전 대구역 앞의 총성… 이제는 진실을 마주할 때
1946년 10월 항쟁 당시 발포 현장의 모습. 총으로 무장한 경찰의 왼쪽 뒤편에 시위군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자료, 돌베개 제공>

1946년 10월1일 정오경 대구역 광장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노동자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튿날 10월2일에 죽은 한 사람의 시신을 싣고 학생과 시민들이 대구 도심 전역에서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해방된 새 나라를 건설하자” “친일 경찰은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또다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었고, 학생과 시민들이 총을 맞고 여기저기서 쓰러졌다.

‘10·1 폭동’ ‘대구 10월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항쟁’의 서막이었다.

이 책 ‘10월 항쟁’은 1946년 대구 10월 항쟁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기간에 일어났던 대구·경북 일대의 사회운동과 학살의 역사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다. 광복 직후 일회적 사건으로 알려진 10월 항쟁이 실제로는 대구·경북 지역, 아니 미군정하의 남한 전역에서 진보세력 주도로 일어난 건국운동이자 시민 항쟁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경찰과 군인이 자행한 학살 사건으로 전개되는 과정까지 살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공백을 채워주고 있다.

저자는 ‘10월 사건’이 아닌 민중 항쟁으로서의 의의를 부여하고자 ‘10월 항쟁’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10·1 폭동’이란 명칭에는 소수의 ‘좌익 분자’들이 일으킨 소요로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정과 경찰이 ‘폭동’ 또는 ‘소요’라고 규정하고 반공이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항쟁은 오랜 시간 그렇게 인식되었다.

70년 전 대구역 앞의 총성… 이제는 진실을 마주할 때
10월 항쟁 - 김상숙 지음/ 돌베개/ 336쪽/ 1만7천원

제주도의 4·3항쟁이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공식 인정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데 비해, 대구·경북 지역의 10월 항쟁은 학계에서도 본격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다. 6·25전쟁 전후사를 연구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추수 봉기’라고 하여 미군정 경제정책의 실패로 일어난 농민 봉기로서 의미를 부여했으며, 국내에서는 80년대 후반 민주화 조류 속에서 사회과학자 정해구가 ‘인민 항쟁’으로 적극적 의미 부여를 시도한 바 있다.

10월 항쟁은 오랜 시간 한국 현대사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는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집권한 이승만 정권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고 그 의미를 폄하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선산 인민위원회 및 민전 간부)가 항쟁 중에 경찰에게 피살되었다는 사실로 더 잘 알려진 10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었다. 식민 통치와 봉건제 유산의 청산을 시도했던 미완의 시민혁명이자 미군정과 친일 경찰로부터 건국의 주권을 탈환하기 위한 숭고한 항거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된 항쟁이라는 점에서 ‘제2의 3·1운동’이라고 부를 만했다. 농민의 자발적 봉기 양상은 19세기 농민 항쟁의 역사적 계승이었다.

도시에서의 항쟁은 미군정 계엄령하에서 진압되었고,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청년들은 군경에 의해 학살되었다. 군경 토벌대는 빨치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학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과거 사회운동에 관여했다가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바로 초기 현대 국가로서 반공 우익 국가인 한국 사회가 만들어진 과정이었다. 저자는 이제 봉인된 시간 속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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