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진 대피훈련 건성건성…9·12공포 벌써 잊었나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10-21   |  발행일 2016-10-21 제23면   |  수정 2016-10-21

제403차 ‘민방위의 날’을 맞아 19일 전국 256개 시·군·구에서 19만2천여 명이 참가한 지진 대피훈련이 실시됐다. 지난달 경주지진 이후 실시된 첫 전국 규모 대피 훈련으로 지진 발생시 초기 대처능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참여도가 낮았고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어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는 평가다. 벌써 경주 9·12지진의 공포를 잊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날 훈련은 20분간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주요시설과 건축물이 흔들리고 붕괴가 우려되는 긴급 상황을 가정해 실시됐지만 매뉴얼대로 진행된 곳은 거의 없었다. 대피 발걸음은 소걸음에 가까웠고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일부지역에서는 지진이 발생할 경우 위험장소인 고가다리 밑을 대피장소로 정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대피할 때 책이나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해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무원들도 자리에 앉아 계속 업무를 보거나 마지못해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번 훈련이 일회성 보여주기식 행사에 그쳤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이유는 경주지진 이후 갑자기 일정이 잡혀 준비와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지진 대피훈련이 있는지조차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지진상황을 제외하면 일반 민방위 훈련과 차별화된 내용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진이 일상화된 일본에서는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지진 대피훈련을 실시해 전 국민이 습관화돼 있다. 학교나 집 근처의 대피처를 숙지하고 지진이 발생하면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대피한다. 한신대지진, 동일본대지진 등 대지진 발생일에는 당시를 되돌아보는 방송과 함께 대피훈련도 실시한다. 이참에 우리도 매년 경주지진이 발생한 9월12일에 대피훈련을 실시해 경각심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과학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지진이 언제 일어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평소 유비무환의 자세만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건성건성 하는 훈련으로는 실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기적인 반복훈련으로 어릴 때부터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번 훈련을 교훈 삼아 대피 매뉴얼을 보완하고 교육도 한층 강화하기를 촉구한다. 국민들도 일상생활에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내 생명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진지하게 훈련에 적극 동참해주기를 당부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