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들의 나라, 그리스를 가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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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1   |  발행일 2016-10-21 제33면   |  수정 2016-10-21
희거나 푸르거나…神話가 깨어나는 섬
20161021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Ia) 마을 전경. 푸른 에게해와 하얀 집들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이아 마을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진다. 그 석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것은 뭐랄까, 전혀 다른 차원의 투명함이자 푸르름이다. 물은 마치 진공 상태의 공간처럼 선명하게 맑았고, 그리고 짙은 포도주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렇다. 마치 깊은 땅 속의 틈 사이에서 대지가 빚어낸 포도주가 보글보글 솟아올라 그것이 바다를 물들이는 듯한, 눈이 아찔할 만큼의 푸르름이다. 거기에는 선명한 냉철함이 있고, 풍성함이 있고, 모든 관념적인 규정을 무너뜨릴 무서울 만큼의 깊이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늦여름 아침의 강한 햇빛이 칼날처럼 격렬하게 내리쬐다가는 다시 굴절되어 보기 좋게 산산이 흩어진다. 그것은 어쩌면 바다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매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정도로 바다는 아름다웠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우천염천’ 중)



관광지로 치자면 그리스는 세계 최고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수백 년 넘게 이어진 발굴에도 유물이 지금까지도 끝없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흔적은 기원전 8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책에서 읽고 배운 신들의 이야기는 이 나라의 역사였고, 지난 세월 목숨을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자유·평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도 이곳에서 싹텄다. 자연 환경은 또 어떤가. 단언컨대 본 적 없는 바다, 전혀 다른 차원의 투명함이자 푸르름. 그 위로 칼날처럼 격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그곳을 그저 아름답다, 라고만 할 수 있을까.

미궁에 빠진 듯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낸 도시를 찾았다. 수도 아테네에서 ‘포도주처럼 검붉은 바다 한복판에 있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 크레타를 거쳐 지중해의 가장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와 미코노스로 간다.

섬에서 가장 풍요로운 선물은 햇빛이다. 1년에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300일이나 된다. 그 햇빛은 에일 듯 화창하고 강렬하다. 척박한 땅에서 올리브 나무를 푸르게 키워내고, 탐스러운 포도를 영글게 하는 것은 이렇듯 눈부신 햇빛이다. 그런 해가 질 때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 에게해를 물들인다. 희고 푸른 섬도 함께 붉어지다 어느새 어둠 속에 묻힌다.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에게블루(aegean blue)와 그릭 화이트(greek white), 오직 희거나 푸르거나. 그리스 국기처럼, 하얗고 푸른 두 가지 색깔만이 존재하는 동화 같은 섬에서 삶을 다시 배운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 잠자고 있던 신화가 깨어나는 곳, 세상의 모든 블루를 품고 있는 지중해, 섬들의 고향이다.

글·사진=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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